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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태평성시도에 길거리 원숭이 공연가인 농후가가 있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4. 8. 03:05
별안간 꼭두각시가 무대에 올라오자 / 동방에 온 사신은 손뼉을 친다
원숭이는 아녀자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 사람이 시키는 대로 절하고 굶어앉네 - 박제가 < 성시전도시 >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공연 문화가 꽃폈다. 원숭이 공연도 그중 하나다.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는 공연을 후회, 길들이고 조련하는 사람은 농후자라고 불렀다. 농후자는 유랑 공연단의 일원이거나 시장을 떠돌며 홀로 원숭이 재주를 팔았다
본디 원숭이는 한반도에 서식하지 않지만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원숭이를 키웠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원숭이를 놀려 나무에 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차돈이 순교한 뒤 원숭이가 떼어 지어 울었다고 한다. 고려 문인 이인로는 파한집에 지팡이를 짚고 청학동 찾아 나서는데 첩첩 산중에 원숭이 울음소리뿐이라는 시구를 남겼다. 송정은의 악헌집에는 조선 전기 문인 최수성이 원숭이를 길러 편지를 전하는데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원숭이는 외교선물로 이땅에 들어왔다. 동물은 국가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수단이었다. 조선은 명나라에 매와 사냥개를 보냈다.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은 매번 사냥개를 달라고 하였고 그들은 본국에서 팔아 큰 이문을 남겼다. 태종은 친선을 위해 세자를 시켜 명나라 사신에게 사냥개를 한 마리씩 보냈고 다음날 만찬 자리에서 직접 두 마리씩 줬다. 반대로 조선은 명나라와 일본에서 원숭이를 받았다. 원숭이는 사복시 관원이 키웠다. 태종떄 원숭이 수가 늘어 궁 밖으로 분양했다. 분양한 원숭이가 탈출해 도로 야생화하기도 했다 세종실록에서는 제주 목사가 원숭이 6마리를 길러서 후임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종떄 사복시 관원은 혹한에 원숭이가 죽을까 봐 흙집을 지어 주고 사슴 가죽을 입히자고 청했다. 사슴 가죽을 옷으로 잘못 들은 조정 신료가 백성의 삶을 먼저 살펴야 한다며 원숭이 옷을 문제 삼기도 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궁궐만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도 농후자가 공연을 벌였다. 조선 말기 무인 도한기는 관헌집에서 청나라 사람이 한양에 와서 연행하는 원숭이 공연을 봤다고 썼다. 당시 공연은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것과 조련을 통해 익힌 기예를 선보이는 것 부류였다. 두 부류를 함꼐 공연하기도 했다. 습성을 이용한 공연은 원숭이가 높은 곳을 잘 오르는 점을 활용했다. 까마득히 높은 솟대를 세우고 그 끝에 먹이를 둔 다음 원숭이를 뛰어오르도록 했다
19세기 제작된 태평성시도를 보면 목줄을 맨 원숭이 두 마리를 높은 솟대에 오르게 하는 공연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갓을 쓴 농후자는 염소를 곁에 두고 있다. 사람이 말을 타듯 원숭이가 염소를 타는 공연도 연행했을 터다. 박제가가 쓴 성시전도시 속 원숭이는 사람처럼 절하고 꿇어앉아 보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본래 습성과 상관없이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조련한 공연이었다. 중국 사신에게 선보일 만큼 진귀한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수삼의 추재가이의 농후개자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원숭이를 회롱하여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숭이 공연으로 구걸하는 거지인 셈이다
농후개자는 원숭이 공연으로 돈을 벌 법했으나 거지 행색을 면하지 못했다. 벌이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이 감탄하며 돈을 낼 만큼 기묘한 재주를 선보이려면 원숭이가 조련자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혹독한 조련이 필요했으나 농후개자는 한번도 채찍을 들지 않았다. 또 농후개자는 피곤해도 집으로 갈때면 원숭이를 어깨에 올려놓았다. 나중에 농후개자가 죽자 원숭이는 배운 대로 사람처럼 울면서 절을 해 돈을 구걸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은 돈을 추렴해 거지를 화장했다. 시체가 반쯤 타자 원숭이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불길로 뛰어들었다. 농후개자와 원숭이는 사람과 짐승, 주인과 물건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료이자 반려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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