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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메이지 유신은 천황의, 천황을 위한, 천황에 의한 통치로 막부의 몰락을 가져오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2. 3. 21. 03:23
18세기 이후 일본의 에도 막부 체제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주요 지배층인 무사들이 상공업 발달 등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농민반란과 전염병과 태풍 등의 재해와 맞물리면서 사회 혼란으로 이어졌다. 막부는 간세이 개혁과 덴포 개혁 등 몇 차례 개혁을 시도했지만 시대 흐름에 역행하여 모두 실패했고 오히려 웅번이라는 지방 독자세력들만 성장했다. 특히 서부지방의 사쓰마번, 조슈 번등이 자체적으로 서양 무기 공장을 세우는 등 실력을 키워갔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개항을 요구하자, 이미 청나라가 서양에 무기력하게 패한 사실(1840년 아편전쟁)을 알고 있던 막부는 마지못해 미국과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미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으로 인한 국권침해, 서양과의 무역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으로 막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고, 이에 웅번 세력들이 존왕양이(천황숭상하고 와부 오랑캐를 배척)을 앞세워 천황의 친정을 주장하며 막부에 도전했다. 결국 1868년 1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구의 대호령을 발표했다. 당시 15살이었던 메이지 천황의 시대가 열렸다
신정부는 일본의 봉건체제를 일소하며 먼저 번의 영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지도와 호적대장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판적봉환을 실시했다. 이는 곧 영주들의 자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이었다. 이어 번을 폐지하고 정부의 지배를 받는 현으로 전환하는 폐번치현이 이루어졌다. 이에 막부시대의 막번체제가 무너지고 다이묘와 사무라이 즉 영주와 무사의 기본지배 체제가 무너졌다. 일본은 천황 중심의 지배체제를 확립한 뒤 문명개화를 단행했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유럽을 시찰하고 돌아온 뒤 단발령, 양력사용, 철도 및 전신 가설 등 각종 서구화 정책이 추진되었는데 특히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가 소학교를 설치하고 진학을 의무화한 것이었다. 모든 정책의 중심에 천황에 있었다. 급속한 서구화 추진으로 야기된 불만들이 위대한 통치자 천황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대체되었다.
천황 권력 극대화의 정점은 국가신도였다. 국가신도란 아마테라스 오미가미의 자손인 진무천황이 일본을 건국한 이래 122년대에 이르도록 하나의 왕조가 일본을 다스렸다. 즉 일본은 태양신의 자손이 다스리는 신국이라는 사상이다. 천황은 신의 자손으로서 신령하고 전능한 존재이며 천황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일본은 무궁한 발전을 이룬다는 믿음이었다. 야스쿠니 신사가 국가신도의 총본산 역할을 하였으며 이외에도 아마테라스 오미가미 천황과 관련된 신사들은 국가신도의 성소로 중시하였다. 1868년 이후 1945년 패전할 때까지 모든 일본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신도 관련 신사참배와 궁성요배(천황이 있는 도쿄 궁에 절함)를 강요받았다. 또한 일본 학교의 도덕 교육과정은 국가신도의 수행 위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애국은 나라사랑이 아니라 천황숭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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