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선단의 100배 규모로 세계사를 바꿀 뻔한 정화의 대원정은 어떠했나

14세기 몽골제국이 급속히 쇠퇴하면서 중국에는 1368년 한족 출신 주원장의 명나라가 들어선다. 명나라는 개방적인 무역국가인 원나라와는 정반대로 중화제국을 지향하는 폐쇄적인 농업국가였다. 심지어 민간의 대외무역을 금지하고 1371년 해금령을 내려 바라로 나가는 것조차 막았다. 밀수를 하다 적발되면 곤장 100대, 무기나 국가 기밀을 반출하면 사형이었다. 큰배를 만드는 것도 금지했다. 바닷길은 급속히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명나라는 중화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고 주변국들의 조공을 요구하기 위해 300척에 달하는 선단을 조직했다. 3대 황제인 영락제는 1405년 34세 환관이자 장군인 정화에게 선원, 군사 등 2.8만명을 주고 원정을 떠나게 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3척 120명으로 출발한 것과 비교하면 100배 넘는 규모다

 

정화는 중국 운남의 은광산이 개발된 뒤 중국으로 이주해온 이슬람교도의 후예다. 이른바 색목인이다. 정화가 키가 180㎝에 달하는 대장부였다고 한다. 본래 성이 이슬람인에게 흔한 마씨였고 본명은 마화였다. 그는 황제의 신임이 두터워 정씨 성을 하사받고 정화가 되었다. 색목인에게 우호적이던 원나라가 몰락한 뒤 부득이 하게 환관이 되었지만 출중한 능력으로 장군 겸 제독까지 오른 인물이다

 

정화가 이끄는 함대는 1433년까지 28년간 총 7차례에 걸쳐 남해 대원정을 다녀왔다. 그의 항로는 오늘날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 해안을 거쳐 이란 호르무즈가 종착역이었다. 4차 항해때는 호르무즈를 지나 아라비아 반도의 아덴, 오만과 아프리카 대륙의 소말리아, 케냐까지 갔다. 포르투갈의 바스쿠다가마가 1498년 인도로 가는 길에 말린디에 기항한 것보다 약 80년 이상 앞선 것이다. 마지막 7차 항해때는 홍해로 들어가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사우디에도 갔다. 정화는 모두 30여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정화는 1433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망원인, 장소, 시기는 아직도 불명확하다

 

명나라 조공상황

정화가 이끄는 함대의 기항지마다 교역이 번성해 인도양 일대에 띠처럼 무역벨트를 만들었다. 국가 독점의 조공무역이 활성화된 것이다. 동남아 일대의 화교들은 그 당시 이주한 중국 상인의 후예다. 정화는 중국의 주된 수출품인 비단, 도자기를 대량으로 가져갔고, 기린, 사자, 타조 등 진귀한 동물과 아라비아 말, 낙타, 진주, 향료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정화의 사후 중국 정세는 급변했다.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북방의 몽골족은 여전히 국경을 위협했다. 명나라는 만리장성을 증축해 방어했다. 오늘날 남아있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때 보수한 것이다. 국가의 역량이 북방에 쏠리면서 중국의 대항해는 금방 끝이 났다. 심지어 1464년에는 정화의 항해기록과 문서를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정화의 배들은 해체되어 땔감이 되었고 또 다시 해금령이 내려졌다. 16세기에 만주족이 청을 건국해 압박하자 더 이상 해양 진출을 언급하는 사람조차 남지 않았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정책

정화가 그토록 엄청난 해상 원정을 다녀왔지만 그의 업적은 후대에 계승되지 못했다. 정화의 위대한 업적이 불모의 위엄이 된 것이다. 서양이 막 대양으로 나가려던 시점에 중국은 내륙으로 움츠려들었다. 이렇게 시대에 역행한 중국은 역사상 최고의 선진국에서 근대 이후 후진국으로 몰락하는 원인이 되었다. 만약 정화의 업적이 계승되었다면 근대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 조공무역의 한계>

조공무역이란 하나의 강대국을 중심으로 주변국이나 제후가 강대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고 답례로 하사품을 받는 물물교환 형태의 무역 방식이다. 주로 중국과 인근 국가들 사이에서 행해졌다. 중국에 인접한 조선,일본,여진,베트남 등은 수시로 중국에 사신을 보내 자국 특산물을 전달했고, 중국에서 비단,책자,도자기 등을 받았다. 이를 통해 주변국들은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할 수 있어 좋고 중국은 종주국의 권위를 세우면서 각국의 특산물을 향유할 수 있어 좋은 무역구조였다. 조공무역은 국가나 조정이 독점했고, 민간 차원의 무역은 철저히 규제되었다. 국경에서 밀무역을 하다 적발하면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항해 시대 이후 서양이 해상무역으로 번성한 것과 달리 동양에서는 무역으로 국부를 늘리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미미했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선진 세계였던 동양이 근대 이후 서양에 압도당하게 된 원인이 바로 무역의 자유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