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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교를 창시한 (610년) 마호메트는 알라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아들을 위한 인문학/종교 2022. 2. 3. 02:32

    마호메트

    고대역사에서 무대에 등장한 일이 없었던 아라비아 반도의 아라비아인은 7-8세기에 걸쳐 이슬람(사라센)제국을 건설하고 이슬람교를 신앙하여 이 신앙을 사방에 전파하였다. 7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라비아 반도는 정치적 및 종교적으로 통일을 이룬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홍해 연안 지방에 줄지어 있는 오아시스를 따라서 동방과 팔레스타인 및 지중해 방면을 잇는 대상의 길이 트인 메카 등 중계상업 도시가 번영하였다

     

    검은돌 순례

    당시 아라비아인의 종교는 거룩하다는 돌과 샘 등을 숭배하는 원시적인 다신교였다. 그중에도 메카의 카바 신전의 검은 돌을 숭배하는 암석 신앙은 유명하여 해마다 아라비아 반도 각지에서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이 되면서 카바 신앙을 형식으로 흐르게 되고, 사람들에게 기부행위를 강요하는 등 민중을 괴롭히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마호메트(571-632)였다.

     

    그는 아랍인의 쿠라이슈족 중 하심가에서 출생하였다. 유복자로 태어난 마호메트는 여섯 살 때 어머니마저 여의고 백부의 손에 양육되었다. 그는 가축을 돌보기에 바빠서 성인이 되기까지 글을 읽고 쓸 수 없었다. 그는 열두살 때 백부와 시리아에 교역으로 가는 대상 속에서 끼어 거기서 기독교의 수도사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 후 메카에서 큰 무역상을 하는 미망인인 하디자의 하인이 되었고, 그의 온화하고 성실한 인품으로 신뢰를 얻어 재산관리인이 되었다. 그는 대상 무역도 위임받아 아라비아 반도에서 팔레스타인 지방을 오가며 각지의 민족과 종교에 관해 배우게 되었다. 하디자의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된 마호메트는 25세때 40세인 그녀와 결혼하여 24녀를 낳았다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

    마호메트는 메카 근교의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알라신의 계시를 받았다. 610년 그의 나이 40세때쯤의 일이다. 처음에는 의심하고 헷갈리던 마호메트였으나 점차 자기가 신의 사도라는 확신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는 우선 아내를 입신하게 했고, 뒤이어 몇몇 메카의 유력자를 귀의하게 한 후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개시하였다. 마호메트는 카바의 여러 신들 중 하나인 알라를 유일신으로 하는 철저한 일신교 신앙을 주장하여 종래의 다신교를 배척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알라가 지상으로 보낸 최후의 가장 우수한 예언자라 하며 사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알라와 예언자를 믿으라고 하며, 알라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마호메트의 가르침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카바 신전의 신들을 배격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 신전을 이용하고 있던 메카의 부호들에게 도전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빈민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메카의 지배자들은 그에게 심한 박해를 가하였다. 그때 메카와 대립하고 있던 북방도시 메디나가 마호메트를 청빙하자 그는 메카에서의 포교를 단념하고 622년에 7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메카를 탈출하여 메디나로 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교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슬람교도는 이를 헤지라(히즈라)라고 하며 이 해를 이슬람의 기원년으로 삼고 있다. 메디나란 예언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마호메트는 그곳에서 이슬람교단을 창설하고 포교활동을 펼쳤으며 마침내 메디나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그는 신도로 이루어진 정교일치의 이슬람 공동체 움마를 조직하였다. 이 움마의 구성원 간에는 상호부조 정신이 강했고 신앙으로 맺어진 굳은 단결을 과시하고 있었다

     

    성전(지하드)

    마호메트는 이 움마를 인솔하여 포교를 겸해서 이웃 여러 부족을 정복하는 성전(지하드)을 행하였다. 630년에 그는 1만명의 군대로 메카를 점령하였다. 성전의 연속으로 성인 남녀의 전사자가 증대하여 움마 안에는 전쟁 미망인과 고아가 속출하였다. 당시 움마 안의 여성은 자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호메트는 만일 고아에 대해 잘해 줄 수 없다고 생각되거든 마음에 드는 여자를 취하도록 하라. 둘이나 셋이나 넷이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호메트는 자신도 하디자를 잃고 나서 10명에 이르는 아내를 취하였다. 한편 마호메트의 포교활동을 방해하고, 적대세력과 은밀하게 내통하고 있던 메디나의 유대 교도에 대해서는 세 번에 걸친 탄압을 가하였다. 그리고 625년에는 유대인 전원을 살해했다

     

    그 사이에 아라비아 반도 각지의 부족은 뒤이어 마호메트의 맹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라비아 반도는 이슬람교 아래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그위에 동맹관계에 있던 부족간의 전투를 금지했기 때문에 아라비아인의 오랜 동나 분열과 항쟁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마호메트는 이들 여러 부족의 에너지를 발산시킴으로써 이슬람교에 의한 강대한 아랍제국을 이루려 했으나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에 대한 원정을 계획하다가 632년에 병으로 죽었다. 마호메트가 구상했던 아랍제국의 수립은 움마가 선출한 후계자(칼리프)에 의해 달성되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마호메트가 죽은 후 신도들이 그를 통해 말씀한 알라의 계시를 기록한 것으로서, 7세기 후반에 현재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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