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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를 바꾼 두 전쟁의 촉매제인 차는 어떻게 영향을 끼쳤나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1. 12. 27. 04:48

    <진시황제가 불로불사의 약으로 믿었던 식물>

    진시황제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비한 효과가 있다고 믿고 복용한 약이었다. 고대 중국 농업의 신인 신농은 지천으로 널리 흔한 초목의 약효를 직접 복용하며 시험했다. 그는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어 목숨이 위태로울 때마다 그 약의 힘으로 살아났다. 당나라에 어느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첫 모금은 목과 입을 넉넉히 적시고, 두 번째 모금은 외로움을 말끔히 녹여주고, 세 번째 모금은 시심을 깨워주고, 네 번째 모금과 다섯 번째 모금은 일상의 불평불만을 깨끗이 씻어내 주고 몸을 정화해준다. 그리고 여섯 번째는 신선의 경지에서 노닐게 된다

     

    차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식물이다. 먼 옛날에는 차를 갖고 다니며 마시도록 고형으로 굳힌 병차(둥근떡모양으로 납작한 떡차)형태로 만들었다, 이 병차는 단차의 일종으로 필요할 때마다 차 덩어리를 부숴 덖어서 마셨다. 중국에서 차는 원래 불교 사원에서 즐겨 마시던 음료였다. 당나라 시대에는 선사상이 유행했는데 사람들은 참선할 때 정신을 맑게 해주는 차를 약으로 마셨다. 이렇게 차를 약으로 마실 때는 덖기보다는 가루로 빻아 그대로 마셨다. 송나라 시대에 들어 차문화는 찻잎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찻잎을 빻은 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차를 말차라고 부른다

     

    <말차의 전통이 일본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이유>

    송나라 시대 일본 승려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중국 사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에서 돌아온 일본 승려는 차의 씨앗과 중국의 차문화를 들여왔다. 참고로 임제종의 개종조 에이사이는 <끽차양생기>라는 책을 저술하고 차를 널리 알려 오늘날에도 차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이런 연유로 일본의 사원에서는 중국의 말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 다음 왕조인 명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주원장)는 귀족과 부유층의 음료였던 차를 서민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산차 포차법을 보급했는데 수고스러운 병차로 만드는 작업을 금지하고 찻잎으로 간단히 우려 마시도록 한 조치였다. 그후 다관에 찻잎을 우려낸 다음 작은 찻잔에 나눠 마시는 포차법이 널리 퍼졌다. 조선시대 후기 선비들도 차를 즐겨 마셨고 심지어 귀양살이할 때도 차를 마셨다고 한다

     

    <남성을 위한 커피하우스가 여성을 위한 티가든에 의해 밀려났다고>

    중국 광둥성에서는 를 차로 발음했다. 힌디어와 몽골어, 페르시아어, 터어키에서는 차이로 발음한다. 광둥성에서 실크로드 등의 경로를 거쳐 이들 국가에 차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유럽과 중국 사이에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푸젠성 바닷길로 차를 운송했다. 푸젠성에서는 차를 테로 불렀고 이후 유럽에서는 티로 바뀌었다

     

    녹차와 홍차는 같은 식물에서 나온다. 수확한 찻잎은 숙성하면 산화효소 작용으로 산화한다. 이처럼 숙성과정을 거쳐 검붉게 물든 잎으로 홍차를 만든다. 반면 수확한 잎을 바로 가열해 산화효소가 활성화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면 변색하지 않고 푸른색을 유지한다. 이렇게 가열한 잎으로는 녹차를 만든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녹차를 즐겨 마신다. 그러나 16세기 유럽까지 운송하는 과정에 변질하지 않도록 홍차 형태로 제조하여 차를 출하했다. 그렇게 유럽으로 들어간 차는 약효가 뛰어났기에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그렇다 보니 왕이나 귀족층이 아니면 그 귀중한 음료를 일상적으로 사서 마실 수 없었다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 국왕이 추방당하고 네덜란드에서 윌리엄 3세가 메리 2세와 함께 공동 왕으로 추대되어 영국으로 건너갔다. 왕이자 왕비였던 메리는 네덜란드에서 마시던 차를 영국에 전했다. 그 덕분에 동양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마신다고 알려진 차는 영국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영국 귀족들은 대부분을 집사의 도움을 받아 영위했지만 손님에게 차 대접만은 직접하였고 오후에 차를 마시는 행위는 애프터눈티라는 우아한 의식의 형태를 갖추었다. 차가 유행하기 전 영국에서는 아라비아반도에서 들여온 커피를 즐겨 마셨다. 당시 거리의 커피하우스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 전유물이었다. 그러자 여성들 사이에 티파티 열풍이 들불처럼 번져 나왔다. 이윽고 커피하우스를 대신해 여성들을 위한 티가든이 등장했다. 남녀 간의 만남을 원한 남성들이 티가든에 드나들면서 커피하우스는 차츰 손님이 줄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홍차는 왜 산업혁명 시기 공장 노동자들에게 사랑받았을까>

    현대 공업화 사회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은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의 실마리 역할을 한 식물은 목화로 이것은 면화를 만들어 의복을 생산하였다. 이에 기계화와 대량생산으로 면직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공장규모는 더 커졌고 노동자 수도 급증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이질균 등 물을 매개로 한 수인성 질환을 늘 조심해야 했다. 그런 탓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물 대신 맥주같은 알코올 음료를 마셨다. 하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와 함께 온종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일할 수는 없었다. 그때 노동자들은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차는 항균 성분이 있고 차에 있는 카페인은 졸음을 쫓아 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이처럼 홍차가 노동의 효율을 높여준다는 사실로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화약고에 불을 댕긴 도화선인 홍차>

    영국은 식민지 전쟁에서 프랑스와 각축전을 벌이며 막대한 전쟁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에 세금을 매겼다. 미국인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차를 밀수하였다. 한편 영국은 차 조례법을 제정하여 미국의 차밀수를 엄격히 단속했다. 영국의 강압적인 제제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차를 운송하던 영국배를 기습해 차 상자를 뺴앗은 뒤 모조리 보스톤항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177312월의 일이었다. 이것이 보스턴 차사건이다. 1774년 영국은 미국인의 거센 저항에 보스턴항 폐쇄라는 강경책으로 맞섰다가 이에 미국인의 반감은 강해졌고 결국 1775년에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이런 연유로 영국에 반감이 생긴 미국인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홍차 맛과 비슷하도록 연하게 볶은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 커피를 즐겼다

     

    <영국인의 기형적인 홍차 사랑으로 아편전쟁을 일으키는데>

    영국인이 홍차를 사랑하고 즐겨 마실수록 많은 양의 차를 청나라에서 사와야 했다. 그렇게 영국은 차를 사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은을 중국에 쏟아부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청나라 쪽에서는 영국에서 사 올 만한 상품이 별로 없었다. 그 탓에 영국의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돈줄이던 미국마저 독립하자 영국정부의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영국은 삼각무역을 생각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값싼 면직물을 영국인들은 국내에서 다 소비하지 못하고 인도로 수출했다. 그 영향으로 인도의 전통 면직물 산업이 줄줄이 무너졌다. 영국은 인도에서 마약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했고 그것으로 만든 아편을 청나라 상인들에게 팔았다. 청나라가 즉각 반발하고 급기야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인도의 차종류

    <인도를 단숨에 세계 제일의 홍차 산지로 탈바꿈한 아삼종 차>

    오늘날에 즐겨 마시는 홍차 중에는 인도산 홍차가 있다. 인도산 홍차의 경우 다즐링이나 아삼처럼 인도 지명이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차 시험 재배를 착수했다. 중국의 원산지인 차를 인도에서 재배하기엔 날씨가 너무 더웠서 잘 자라지 못했다. 1823년 영국 해군 소령 로버트 브루스가 우연히 인도 아삼지방에 자생하는 차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중국산 차와 별개 종으로 드러났다. 차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재배하는 중국종으로 한랭지의 기후에 적응해 잎이 작게 진화했다. 중국에서 겨울 추위와 건조를 견디려면 작고 두툼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국종은 지금도 중국과 한국, 일본 같은 온대지역에서 재배한다. 다른 하나는 아삼종으로 인도처럼 무더운 기후에 적응해 잎이 큼직하다. 광합성에 유리한 환경에 큼직한 이파리로 생산 효율이 높다.열대지방은 병충해가 많은 편이라 아삼종은 항균작용을 지닌 카페인 함유량이 많다. 한편 녹차는 아미노산의 감칠맛을 즐기는 음료이고 홍차는 카페인의 씁쓸한 맛을 음미하는 음료이므로 아삼종은 홍차에 적합하다. 이로써 홍차는 인도에서 부상하여 산업혁명으로 전통 면직물 산업을 잃은 것을 홍차로 경제적 부흥을 가져왔다

     

    <카페인을 함유한 세계역사를 바꾼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은 차>

    차라는 식물에 들어 있는 것은 카페인 성분이다. 카페인은 알칼로이드라는 독성물질의 일종으로 원래 식물이 곤충과 동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생성하는 기피물질이다. 이 카페인의 화학구조는 니코틴이나 모르핀과 흡사해 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 차를 마시면 잠이 잘 오지 않고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면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닌가 싶다. 비록 약하긴 해도 카페인은 본래 뇌신경에 작용하는 유해물질로 인체는 몸 밖으로 배출하려 애쓴다. 그래서 카페인은 이뇨작용을 한다. 한편 세계 3대 음료이자 공통적으로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 홍차, 커피, 코코아의 원료는 차나무, 커피나무, 카카오나무다. 진시황제가 그랬듯 사람들은 차를 맨 처음 우려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마침내 인류역사까지 크게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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