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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재앙 노예무역을 부른 달콤하고 위험한 맛의 사탕수수의 모든 것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2. 1. 10. 05:19

    고대시대 꿀

    <달콤한 맛과 냄새를 찾는 일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인간은 단맛을 몹시 좋아한다. 단맛은 당 성분으로 우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과거 인류의 선조는 숲을 보금자리로 삼고 식물의 열매를 먹고 살던 유인원이었다. 식물의 열매는 다 익으면 단맛이 난다. 즉 단맛은 식물이 익은 맛이다. 숲과 초원을 다니며 유인원은 달착지근한 냄새와 달콤한 맛을 귀신같이 골라낸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공감미료가 넘쳐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단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해 심각한 문제가 되지만 자연계의 관점에서 단맛은 위험의 대상이 아니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귀중한 식량이다. 인류가 본능적으로 단맛에 환호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인류 최초의 단맛을 맛본 것은 벌꿀로 추정하고 있다. 놀랍게도 기원전 2500년 무렵 인류가 이미 벌꿀을 먹었다는 증거가 있다. 인류는 농사를 지으면서 곡물에서 추출한 전분을 단맛의 원료로 삼았다. 보리 씨앗에서 싹을 틔운 맥아는 전분을 분해하는 디아스타아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이 맥아에 전분을 더하면 전분이 분해되면서 당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이 맥아당이다

     

    사탕수수

    <왕족과 귀족의 입에만 들어가던 호사스러운 사치품>

    사탕수수는 현대인의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설탕의 원료인 식물이다. 사탕수수는 최대 6m까지 자라는 키가 큰 작물로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풍부한 광합성 과정을 거쳐 만든 당을 줄기에 저장한다. 이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이고 설탕을 정제하는 기술은 인도인이 개발했다. 기록에 따르면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도 고행을 마치면 설탕이 들어간 우유죽을 마셨다고 한다. 초창기에 사탕수수는 아열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어 다른 지역사람들이 손에 넣기 어려운 진귀한 음식 재료였다. 설탕은 직접 에너지를 공급해주며 체력을 보충해주는 효험이 있어 설탕을 약재로 취급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서 아무나 구할 수 없었다. 설탕은 인도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유럽에는 십자군 원정을 매개로 전해졌다. 사탕수수로 만든 자당은 일부 왕족과 귀족의 입에만 들어가던 호사스러운 사치품이었다

     

    <인간의 중노동을 먹고 자라는 잔혹한 식물>

    사탕수수가 재배되기 전 대부분 농업은 노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탕수수는 달랐다. 사탕수수는 수확하는 일은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벼농사의 경우는 힘센 가축의 힘을 빌려 쟁기질하고 써레질함으로써 혹독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탕수수는 모종을 심는 일부터 기르고 수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해내야 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기계를 개발할 때까지 노동인력으로 충당해야 했다. 이에 설탕을 정제하는 과정에서도 만만치 않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탕수수 줄기 안에는 설탕 성분을 저장한 부분이 있다. 수확하고 나면 줄기 안의 그 부분이 차츰 딱딱하게 굳어간다. 그래서 사탕수수를 한번에 수확하고 한꺼번에 정제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사탕수수를 쉬엄쉬엄 재배할 수 없는 작물이 되었다. 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사탕수수를 대규모로 조성하고 생산과 동시에 정제하는 공장을 세워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Plantation이라 불렀다. 플랜테이션은 대량의 집중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농장주들은 처음에 전쟁포로를 투입했으나 엄청난 일손을 감당할 수 없어 점차 노예 노동력으로 대체했다

     

    콜럼버스 

    <풍요로운 서인도제도까지 침투한 사탕수수 재배 농업>

    콜럼버스는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으나 그녀가 간절히 찾고 싶어 했던 후추는 발견하지 못했다. 본래 스페인은 후추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포르투갈 등의 다른 유럽국들을 압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갖 진귀한 식물을 유럽으로 전파한 인물이면서도 유럽의 식물을 아메리카로 옮겨아 재배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포르투갈 연안의 마데이라제도에서 재배하던 사탕수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후추 대신에 사탕수수 재배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게 되었다

     

    <414년간 940만명의 아프리카 흑인이 사탕수수 농사에 노예로 동원>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탕수수 재배에 큰 성공을 거두자 유럽의 여러나라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에서 사탕수수 재배에 나섰다. 중미에 있는 여러섬들도 사탕수수 재배에 동원되었다. 유럽의 보리와 밀재배는 조방농업이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탕수수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처음에 유럽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노동력으로 이용했으나 전쟁과 천연두의 유행으로 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그 해법을 아프리카에서 찾았다. 유럽의 여러 강대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재배한 설탕을 수입하고 그 배에 공업제품을 실어 식민지 아프리카로 운송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에 흑인노예를 실었다. 유럽인은 흑인노예들을 소와 돼지처럼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중노동으로 투입한 뒤에 노동력을 상실하면 가차 없이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새 인력을 끌고 왔다. 이는 목화재배 등 공업원료로 쓰는 작물 생산에 그대로 적용했다. 노예무역이 시작된 1451년부터 노예제가 폐지된 1865년까지 950만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설탕의 가치를 높여준 차와 카페인의 효능으로 기호품으로>

    유럽에서 설탕의 가치를 단숨에 크게 높여준 식물이 바로 차였다. 맨 처음 중국에서 유럽으로 차가 전해진 것은 17세기의 일이었다. 차가 들어오자 유럽의 상류계급 사람들은 한잔의 홍차를 마시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만끽했다. 엘리자베스 애벗의 달콤쌉싸름한 설탕의 역사에서 홍차에 넣은 설탕 한 조각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 남녀가 고향을 떠나 노예 생활을 강요받은 인류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홍차는 동양 음료로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설탕을 넣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설탕을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는 서민층에까지 퍼지면서 설탕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세계 3대 음료로 꼽히는 홍차, 커피, 코코아는 모두 유럽인에게 이국적인 음료였다. 중추신경을 자극하고 흥분시켜 각성작용을 하는 카페인을 함유한 이들 음료는 강장제로 인기가 높았다. 문제는 카페인이 씁쓸한 맛이었지만 설탕을 가미함으로써 매혹적인 맛으로 변신했다. 사탕수수 재배 면적이 갈수록 늘어나고 설탕 구하는 것이 쉬워지므로 사치품이 기호품으로 바뀌었다

     

    <하와이를 다민족 공생사회로 만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사탕수수가 하와이에 전해진 것은 선사시대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19세기 들어 유럽에서 건너온 탐험가들이 하와이를 탐험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또 다시 사탕수수가 하와이에 들어왔다. 하와이는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하와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사탕수수 재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경황이 없었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올 여력이 없었고 노예제도 자체를 폐기하였던 참이었다. 하와이는 풍요로운 곳이라 원주민은 중노동하여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50년대에 중국에서 하와이로 대규모 노동자가 이주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 신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당히 임금인상과 노동환경을 개선을 요구했다. 1860년대에는 중국인 대신 일본인 남성을 모집했다. 그후 필리핀과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할 사람을 데려왔다. 그 외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도 사람들을 모집했고 미국 본토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일자리를 찾아 하와이로 건너왔다. 노예를 부릴 수 없었던 하와이에는 다양한 민족 사람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자 임금을 삭감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렇게하여 하와이에는 다민족 다문화가 공생하는 독특한 사회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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