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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루아상에는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을 통해 전해졌다고 하는데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1. 12. 16. 04:45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프랑스 빵은 단연 바게트이다. 그 다음은 크루아상일거다. 이빵들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이유는 즐겨 먹어서보다 거리의 간판 때문일거다. 크루아상이라는 이름은 빵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어의 크루아상은 형용사로 점점 커지는 이라는 뜻이고, 명사로는 초승달, 이슬람교의 깃발, 터키 제국을 의미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초승달은 점점 커져서 반달이 되고 반달은 점점 커져서 보름달이 된다. 크루아상이라는 이름은 빵의 모양이 초승달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빈전투

    16837월 중순 오스만 제국(터키 제국의 옛말)의 재상 카라 무스타파는 20만 군대를 이끌고 빈을 포위했다. 오스만 제국은 15세기에 동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유럽에 여러 차례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당시 강대국이라 할 수 있었던 오스트리아가 목표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트 1세는 1.2만명의 수비군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었다. 레오폴트 황제는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루이 14세는 차갑게 외면했다.레오폴트 황제는 샤를 드 로렌을 비롯한 제후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오스만 제국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폴란드인 쿨크지스키가 그 업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여러 언어에 능통해서 이 임무를 누구보다도 잘 수행할 수 있었다

     

    같은 해 9월 그의 도움으로 결성한 연합군은 카라 무스타파가 이끌던 오스만 제국군을 급습했다. 이에 놀란 오스만 제국군은 탄약과 군량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들이 버리고 간 물건 중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커피가 있었는데 당시 빈 사람들은 커피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폐기하려고 했다. 이때 이미 커피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쿨크지스키는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오스트리아는 그의 도움으로 전쟁을 이길수 있었기 떄문에 당연히 그의 청을 받아들였고 시내에 커피 전문점까지 열게 해 주었다. 쿨크지스키는 제빵사에게 커피와 어울릴 만한 빵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제빵사는 오스만군의 깃발에 그려져 있던 초승달 모양에 착안해 뿔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 오스만군의 침략을 절대 잊지 말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 빵이 뿔 모양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킵펠이라고 불렀다.

     

    마리앙투아네트(오스트리아 공주)

    이 킵펠은 프랑스에 유행시킨 사람은 바로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앙투아네트였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에서 불행한 나날을 보냈고 프랑스 혁명 당시 체포되어 38세 생일을 2주 앞두고 단두대에서 처형된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177014세의 어린 나이에 루이 16세와 결혼하기 위해 파리로 오면서 자기가 즐겨 먹던 킵펠도 가지고 들어왔다.

     

    헝가리 빵

    킵펠은 프랑스에 들어와 50여 가지의 다양한 모양으로 개발되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빵이 되었다. 본래는 오스트리아 빵인데 프랑스에 들어와 크루아상이라고 불리면서 사람들은 프랑스를 크루와상의 본고장으로 생각하고 되었다

     

    달빵(터키)

    다른 한편으로 터키에서도 크루아상은 아이최레이 즉 달빵이라고 부르며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이 빵이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비옥한 초승달지대 모양을 본떠 만든 빵이기 때문에 중동에서 유래된 빵이라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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