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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초에 정글 속에 잠자는 사원인 앙코르 와트은 어떤 의미인가아들을 위한 인문학/국외여행 2021. 12. 23. 04:58
동남아시아 대륙 지역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위치한 참족의 국가는 2세기경에 이룩되었다. 중국 문헌에는 참파라 표기되고 있다. 반도 남부의 메콩강 유역에는 크메르족의 국가가 1세기에 등장하였다. 오늘날의 캄보디아인 이 국가를 중국 문헌에서는 부남이란 기록하고 있다. 이 국가는 6세기에 진랍에 의해 교체되었고 9세기에는 앙코르 와트를 건설한 강대국 와코르 제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동남아시아 세계의 역사적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이다. 앙코르 와트란 크메르어로 사원 도시라는 뜻이다. 이 유적의 발견은 프랑스의 고고학자 아리 무와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858년에서 1861년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의 메콩강과 메난강 유역을 탐험하여 그 지역의 지질과 동식물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1861년 초 그는 캄보디아의 톤레 사프라는 호수의 북쪽 밀림 가운데 거대한 도시와 궁전이 있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무와는 코끼리아 호랑이 등 맹수가 살고 있는 그 원시림에 그와 같은 도시와 궁전이 있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밀림의 탐험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에 그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위에 다섯 개의 석탑이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앙코르 와트로서 그 북방 1.5km 되는 곳에 앙코르 톰 이라는 도시의 유적이 있었다
무와는 밀림의 식물들 속에 묻혀 버린 이 사원과 도시의 화려함에 넋을 잃었다. 그후로 그는 이 유적을 조사하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는 유적을 스케치하고 건축물에 대한 자료를 기록하여 프랑스와 영국에서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동양의 기적을 발견하였다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와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대사원에 순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중국의 고문서에도 이 도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 와 있던 유럽인 선교사 중에서도 무와보다 앞서 이 유적을 찾은 사람이 있었다
앙코르의 도시는 크메르인인 야쇼바르만왕(899-900)에 의해 건설되었고 대사원은 수르야바르만 2세(1112-1152)에 의해 세워졌다. 이 크메르인이 어떤 민족인가 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아서 한때는 14세기에 앙코르의 도시를 버리고 갑자기 사라진 수수께끼의 사람들이라고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들이 인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그 지방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족으로 보고 있다.
크메르 왕국은 13세기경 서쪽에 국가를 세운 타이인이 공격하여 멸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캄보디아인이 그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크메르인이 앙코르의 사원과 도시를 버린 것은 나라가 멸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래 그들은 수도를 자주 옮겼다. 아마도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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