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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인 인도의 무굴제국시대의 타지마할 묘와 갠지스강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외여행 2023. 3. 11. 03:28

    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달라며 39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된 황후는 남편인 무굴제국 황제인 샤자한에게 유언을 남긴다 그는 왕위다툼에서 장인 아사프칸의 도움으로 왕이 되고 미모와 지혜를 겸비한 그의 딸 아르주만드바누 베감까지 아내로 맞이한다. 샤자한은 황후를 사랑하고 아이 열네명을 낳았다. 그리고 15번째 아이를 낳다가 산후열로 1629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아름다운 웅장한 무덤인 마할의 왕관이었다. 델리 남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16-17세기에 걸쳐 약 100년간 무굴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과 영광을 누렸던 인도 아그라 교외의 야무나 강 남쪽 연안에 사랑을 잃은 남자의 그리움으로 지어진 영묘가 있다. 이 영묘는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고 하는데 그 이름이 와전되면서 타지마할로 불리게 되었다

     

    왕관처럼 전체가 백색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건축된 타지마할은 샤자한 왕과 왕후의 구구절절한 사랑이 묻혀 있는 무덤이다. 무굴제국의 5대왕 샤자한은 1653년에 타지마할을 건축하고 천도를 계획했다. 이 계획은 엄청난 재정난 부딪히게 되었고 평소 왕의 계승에 불만을 품고 있던 3번째 왕자 아우랑제브에게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맞아들인 왕세자가 무참히 살해되고 아들에게 왕권마저 뺏긴 샤자한은 타지마할에서 2km 떨어진 아그라포트에 갇혔다. 3남인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성 앞의 야무나강에 악어를 풀어 놓았다. 결국 샤자한은 갇힌 8논 동안 타자마할을 바라보다가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고 죽어서야 소원대로 타지마할의 왕비 옆에 안치되었다. 이렇게 무굴제국은 자식, 형제들의 내분으로 쇠퇴하면서 외국세력이 물려오기 시작했고 결국 1774년에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타지마할은 1631년에 무굴제국의 국력을 쏟아 부어 건축을 시작해서 22년만인 1653년에 완공되었다. 이 사랑을 위한 금자탑은 이란 출신의 설계사의 설계하고 중국, 터키, 이탈리아, 이란 등에서 온 2만명의 건축가와 장인들의 건설하였다고 한다. 가로 350m 세로 580m의 타지마할 부지에는 붉은 사암으로 된 당당한 정문이 있다. 이 정문 지붕 위의 한가운데에는 전면에 11, 뒷면에 11개씩 흰색의 뾰족한 돔이 조각되어 있다. 22개 돔은 타지마할이 22년에 걸쳐서 완성된 기간을 나타낸다. 정문 아치를 빠져나가면 분수가 있고 좌우로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정원을 전경으로 사방이 대칭으로 축조되었다. 타지마할 안에 들어서니 커다란 교회 안처럼 벽면에 총천연색 보석 조각들이 붙여 있는데 이는 인도나 동양식이 아닌 이탈리아의 장인의 솜씨로 추정된다. 천장은 돔 형식으로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묘실에는 황제 부부이 기념비가 있다. 황제부부의 석관은 지하 납골당에 있고 대리석 무덤으로 되어있다. 또한 영묘의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다. 서쪽에 있는 건물은 모스크 동쪽 건물은 미학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자와브이다. 붉은 시크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가 있다

     

    후마윤 묘

    무굴제국의 2대 황제 후마윤은 샤자한의 증조부인데 델리에 무덤이 있다 후마윤은 아프칸의 세르샤에서 쫓겨 페르시아에 피신했다가 15년만에 페르시아의 힘을 빌려 무굴제국을 재건한 인물이다. 궁전 도서관 계단에서 내려오다 굴러 떨어져 죽은 비운의 왕이기도 하다. 황후 하지배굽은 제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무덤을 만들라고 명령한다. 이는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시였다. 후마윤 묘는 페르시아인이 설계했기 때문에 정원 양식은 페르시아의 전통을 살렸다 대리석 돔의 건축양식은 타지마할 등 무굴 제국의 건축에 영향을 끼쳤다. 타지마할이 후마윤 묘보다 규모가 좀 크고 후마윤 묘처럼 벽이 붉은 색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지었을뿐 디자인 면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남동부에 있는 도시인 바라나시 이곳은 인도 문화의 중심지이자 힌두교의 성지이다. 갠지스 강 중류의 서쪽을 따라서 이루어진 대도시로 시바 신의 성도인지라 인도 전역에서 찾아온 힌두교도들로 늘 붐빈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으로 인도 역사는 갠지스 강에서 시작되었다. 2465km의 갠지스강은 인도인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갠지스강의 하이라이트는 목욕장과 화장터이다. 힌두교 신앙에 의하면 갠즈스강의 성스러운 물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씻기고 이곳에서 죽어 그 재를 강으로 흘러 보내면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기 떄문에 갠지스 강은 신성한 어머니의 강이다. 바라나시에서는 새벽 동틀 무렵에 이 의식이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시체를 화장해서 그 재를 강에 뿌리려며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시체 한구에 400kg의 장작이 필요하다. 인도인은 강가에 버려진 죽음은 삶과 대립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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