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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연, 풍물 등 지붕이 없는 박물관으로 되어 있는 강화도 탐방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1. 12. 4. 05:06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강화도>
강화나들길 2코스인 호국돈대길을 따라 초지진에서 광성보까지 걸어보면 강화에 숨겨진 역사와 지리를 만나볼 수 있다. 강화도는 한강 하구에 위치해 잇어서 수도인 서울로 가는 시작점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는 외세와 많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래서 초지진, 덕진진 같은 군사기지를 군데군데 설치하고 항상 방어에 신경을 썼다. 초지진은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이 발발했던 곳이다
1866년 7월 미국의 제너럴셔먼호가 비단,유리그릇,자명종 등의 물건을 싣고 대동강을 통해 평양까지 올라왔다. 놀란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관리를 파견해 평양에 온 목적을 알아보고 조선은 외국과의 통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며 돌아가라고 하자 관리를 감금해 버렸다. 화가 난 평양 관민들이 강변으로 몰려들었고 제너럴셔먼호는 총과 대포로 대응했다. 그후 며칠간 비가 많이 내리자 아예 평양에서 정박해 강도와 약탈을 자행했다. 주민들도 공격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결국 화가 난 박규수가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워버렸다. 이 일로 1871년 제너럴셔먼호의 책임을 묻고 통상을 요구하며 초지진을 공격했다. 뒤이어 덕진진과 광성보까지 미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선군이 야습을 시도하고 끈질적 항쟁으로 미군은 강화도에서 철수했다고 한다. 일본도 조선 해양 측량을 빌미로 운요호를 이용해 초지진에 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운요호에 조선 수병이 포격을 가하자 일본군은 함포로 응수하더니 마침내 영종도에 상륙해 약탈을 자행했다. 일본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수교통상을 강요했고 1876년 대표적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병인양요는 1866년 천주교 신자를 박해한 것에 대한 보복을 구실로 통상을 요구하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찾아온 사건이다. 처음엔 프랑스군이 이기는 듯했지만 양헌수 장군이 이곳 덕진진을 교두보로 삼아 프랑스군이 있는 정족산성을 야간 기습하는데 성공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철수하면서 외규장각에 있던 많은 유적들을 약탈해갔다. 흥선대원군은 그후 이곳에 경고비를 세웠다.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어떤 외국 선박도 이곳을 함부로 지나갈 수 없다는 굳건한 척화의지를 담은 것이다). 덕진진은 반달 모양의 남장포대와 덕진돈대로 구성되어 있다. 반달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장포대는 강화도 진영들 중 가장 많은 포문이 있던 곳 중 하나이다.
신미양요때 치른 전투들 중 가장 크고 격렬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 광성보이다. 강화도의 돈대들 중 가장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로 구성되어 있다. 가지고 있는 무기는 미군에 비해 턱없이 약했고 배도 구식이었으며 포구의 크기도 작았고 대포의 방향을 틀기가 어려워서 정해진 각도로만 던질 수 있었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사거리가 긴 신식무기로 공격했다. 하지만 조선군은 포탄을 던지고 싸우고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웠다. 가슴 아프게도 조선군은 모두 순국하고 광성보마저 함락되고 말았다. 미군 장교이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이토록 치열한 전투를 겪은 적은 없다며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이기지 못했다고 기록하였다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본 북한과 북방한계선의 생긴 유래>
강화평화전망대에서는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를 올라가면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 뒤편으로 북한 땅이 보이는데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의 폭이 고작 1.6km에 지나지 않다. 북한땅에는 선전용 마을로 위장용 집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거나 잘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위장한 집들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은 중공군의 지원을 받았고 남한은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다. 중공군 때문에 북진이 어려워진 유엔군은 서해안을 장악해 중국이 북한으로 물자를 보내는 걸 원천봉쇄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게 된다. 그 시작으로 교동도를 점령하고 많은 피란민들이 거주하고 있던 백령도까지 진출한다. 그후 백령도를 거점으로 초도와 석도까지 장악하게 된다. 지금은 북한땅이지만 당시 이 두섬은 평양에 가까운 섬이었다. 이 두섬을 차지한 유엔군은 대동강 하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첨예한 대치후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북방한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초도와 석도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가 철수한 것만으로도 이익이었다고 보고 있어서다. 그후 남북기본합의서에 북방한계선의 구역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하구가 모이는 강화도 갯벌의 먹거리 밴댕이>
강화의 밴댕이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에 있는 영양분을 먹고 살다. 토사의 퇴적량이 많으며 밴댕이들도 맛날 걸 많이 먹고 살이 잘 올라있다. 특히 5월-7월 사이에 잡히는 밴댕이는 지방이 많아서 부드럽고 맛있다. 속이 좁은 사람을 일컬어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한다.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몸을 파르르 떨며 죽는다. 그래서 성질 급하고 속이 좁은 사람을 일컫게 된 것이다. 밴댕이마을은 지금은 후포항으로 불리지만 강화도 사람은 옛날 이름인 선수포구로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새우가 더 유명하여 임금에게 진상하기도 했다. 밴댕이는 칼슘과 철분이 풍부하고 피부 미용에 좋은 음식이다
<유럽이 원산지인 순무는 중국을 통해 전파되었지만 강화도만 재배되는>
강화도의 많은 지역이 갯벌을 간척한 토양이라 플랑크톤과 같은 미생물이 풍부하고 영양분이 많다. 게다가 해풍으로 인한 서늘한 기후와 염분이 있는 토양 덕분에 맛있는 강화 순무를 재배할 수 있다. 실제 다른 지역에서 순무를 재배를 시도해보았으나 순무 특유의 쌉쌀한 맛과 보랏빛이 없어져 실패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순무는 오장을 이롭게 하고 간 기능을 증진시키고 숙취를 해소시키며 눈을 맑게 하고, 비만을 해결하고 환자의 영양 보충에 좋다고 한다. 밭의 화장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부에 좋은 음식이다
<숟가락처럼 생긴 부리를 가진 세계적 희귀종 저어새가 있는 강화갯벌 >
강화나들길 7코스를 따라 갯벌센터로 들어가면 새 조형물인 저어새가 있다. 강화도를 상징하는 새로 세계적 희귀종으로 숟가락처럼 생긴 부리로 먹이를 먹는 모습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강화도의 갯벌은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와 같은 추운 지역에서 번식하는 철새가 일본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동하는 중에 쉬어가는 장소이다. 강화도 남부의 갯벌만 해도 여의도 면적의 50배가 넘는다. 강화도는 민간통제구역이 많아 사람들의 출입이 적어서 새들의 서식지가 더 잘 보호되어 있다. 갯벌센터는 갯벌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세워져서 갯벌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
<일몰이 장관인 동막해변에 가면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으로 덮여 >
강화도의 많은 해변 중에도 동막해변은 물이 빠지면 4킬로미터까지 이어지는 갯벌과 모래사장이 있고, 그 모래사장 뒤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갯벌에는 갯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있어서 이 골짜기를 따라 바닷물이 올라오고 빠져나간다. 동막해변에서는 밀물 때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썰물 때는 고둥이나 게와 같은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다. 동막해변은 일몰이 놀랍도록 아름답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마니산의 첨성단을 가보면>
강화도에 일출을 만나기 가장 좋은 곳은 마니산이다. 마니산은 한라산과 백두산의 중간에 위치한 산이다. 마니산은 머리산, 마리산, 마루산, 두악산이라고도 한다. 모두 머리라는 의미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머리였기 때문이다 그 높이는 470m로 높지는 앉지만 주위가 낮고 평평하게 형성되어 높게 보인다. 또한 마니산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첨성단이 있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1717년 강화유수 최석향이 경사진 바위에 새긴 참성단 중수비에도 등장하고 있다. 참성단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단군 유적이자 남한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유적이다. 기저부는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으로 둥글게 쌓고, 제사를 올리는 단은 땅을 상징하는 네모로 쌓았다. 동양의 전통적인 세계관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을 표현한 것이다. 이곳에서 매년 가을 개천대축제를 열고, 칠선녀를 재현해 전국체전의 성화를 채화하기도 한다. 기 받는 계단도 있어 풍수지리학자들은 가장 기가 센 곳으로 알려졌다. 기를 받으려 정기적으로 들르는 사람도 있다
<강화섬쌀, 강화인삼, 화문석, 고인돌 등의 명물이>
강화도는 섬마을인데도 논과 밭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간척을 통해 만들어진 땅이 많고 계획적으로 조성된 경지들이 많다. 여기저기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들도 많다. 그래서 강화섬쌀이 특산물로 유명하다. 또한 강화 속노랑고구마도 잘 알려져 있다. 강화도를 둘러보면 박물관이 많다. 화문석박물관, 전쟁박물관, 역사박물관, 농경박물관 등등 하지만 이런 박물관만 아니더라도 강화도는 그 자체가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풍물시장은 특산물박물관이나 마찬가지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박물관이고 또 고려궁지와 수많은 돈대들을 비롯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적들도 그대로가 역사박물관이자 전쟁박물관이다. 강화 해안을 두르고 있는 갯벌들은 말할 것도 없는 자연사박물관이다. 강화도는 정말 볼거리, 먹거리, 배울 거리가 풍부한 멋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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