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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와 예술작품이 공존하는 문래창작촌을 가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1. 11. 11. 04:25
문래근린공원에는 커다란 물레가 있다. 문래동은 1930년대 큰 규모의 방직공장지대가 있던 곳이라 사옥정이라고 불렀다. 해방후 방직공장이 실을 잣는 물레와 비슷하다 하여 발음이 비슷한 문래동이 되었다
문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최초의 계획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과 헌병대 등 식민통치를 위한 주요시설을 세우고 그 주변으로 일본식 주택을 집중적으로 건설했다. 1941년 조선주택 영단을 설립해 영등포 문래동, 대방동, 상도동에 영단주택을 공급했다. 일본식 가옥구조로 현관을 통해 복도로 진입하는 구조이며 일본식 목재 주택 구조에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온돌을 도입한 혼합구조였다. 현재 문래동 4가 일대의 조선인들이 밭농사 짓던 터에 주택을 지었으며 그 수가 500채가량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백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60-70년대 산업화의 중심지로 공장 노동자들이 들어서면서 변형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도심 부적격 시설로 지정되는 바람에 사대문 안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공장들이 문래동에 입주하게 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영등포구와 구로구의 준공업지역과 그 주변의 중대형공장이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서울의 제조업은 점차 소규모화되었다. 서울시의 산업구조를 보면 제조업의 비율은 1991년 정점에 이른 후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방림방적 같은 대형공장이 지방이나 주변으로 이주하면서 문래동은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방림방적은 분할되어 아파트단지, 대형할인점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결과 대규모 개발에 불리한 경부선 철로와 도림천 사이에 낀 영세공장들만 남게 되었다. 이곳의 공장들도 개인주택을 개조한 곳들이 많아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비교적 활발하게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이후 문을 닫는 공장이 늘어났다. 영등포 부도심 정비 계획에 의거해서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자 문래동의 소공장 주변은 교통이 편리한 황금상권에 위치하게 되었다. 철공소 등 소공장이 입지하고 있는 모습은 부도심에 맞지 않는 부적격 시설로 전락해 문젯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을 떠나는 소공장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그에 따라 빈 건물들도 하나둘 생겨나게 되었다. 전통적인 공업지역의 쇠퇴와 빈 공간의 등장인 셈이다. 건물이 낡고 노후해 입주자도 찾기 힘들고 지역주민 간의 재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상충되어 개발이 쉽지 않은 지역이 되었다. 대학로나 홍대 지역의 높은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 문래동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창작공간으로 옮겨온 곳이 100여군데라고 한다. 철공소의 특성상 대개 열린 공간이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작업을 들여다볼 수 있고, 예술가들이 그 점에 착안해 예술 커뮤니티를 조성한 것이다. 철공소 건물 자체들이 캔버스로 활용하기도 한 것이다. 소공장이나 철공소는 소음과 분진이 많아서 일반인에게는 기피시설이지만 악기연습이나 작품제작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하는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건물 내부 구조를 변경하고 색칠하는 것이 허용되는 지역이기도 해서 예술가의 창의력을 북돋워주기도 한다. 지하철역에서도 가깝고 임대료도 저렴하며 대형 쇼핑센터도 가까이 있어 예술가에게는 최적의 예술공간인 셈이다
문래동에는 망치 조형물이 있는데 이건 이곳의 작업 특성상 기계작업과 수작업이 병행되다 보니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상징하는 거라고 한다. 허름한 주택을 돈을 들여 수리할 수 없는 경우, 벽화나 블록장난감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벽 속으로 숨다가 꼬리만 남긴 물고기처럼 낡은 건물의 외벽을 활용한 예술품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인다. 무엇보다 건축자재로만 여겨지던 철이 예술작품으로 변모해 사람들과 만나게 되니 철이 지닌 느낌도 많이 달라진다. 용접용 마스크 조형물이나 철로 만든 솟대도 인상적이다. 한편 문래동에 이주한 예술가들은 지역사회의 철공소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두 집단 간의 간극이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철공소를 하는 사람이나 지역주민들이 사생활이 침해받고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낡고 허름한 동네에 사는 불쌍한 사람 보듯 하는 관광객들의 시선이나 작업을 방해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관광객들 때문에 예술인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문래동의 철공소나 예술창작촌은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재생을 통한 도시의 새로운 모습을 찾기 시작조차 못하고 실패할까봐 걱정이 된다. 도시재생사업이 높은 시민의식으로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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