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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
    아들을 위한 인문학/의학 2021. 2. 11. 03:09

    허준은 경기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용천부사를 지내셨다. 소설 동의보감에서는 그가 서자라서 설움을 받고 가난하게 지내다가 아버지 곁을 떠나 경상도 명의 유의태에 의학을 배웠다고 나오나 유의태는 가공인물이고 모델로 보이는 그는 숙종때 인물이다. 허준이 어디서 어떻게 의학을 배웠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도리가 없다. 선조때에 1569년에 정3품 내의원정에 추천되어 오르고 선조를 진료하는 의원이 되었고 호피를 하사받기도 하였으며 아들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여 당상관까지 오르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고 1596년 광해군의 천연두를 고쳐 종2품의 제수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조가 조선 실정에 맞는 의서 편찬 작업을 명하고 그는 동의보감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한품서용원칙이 적용되는 의원인 잡과급제자는 정3품 당하관이 승진의 끝인데 허준은 종1품 양평군까지 올라간다. 조선 500년 동안 드문 일이었고 아무리 지체 높은 명문가의 자제라고 해도 정1품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능력, 처세, 운까지 겸비되어야 하나 서자 중인신분으로 그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요즘 9급 공무원이 국무총리에 오르는 격이 된다. 허준은 입지전적인 출세스토리는 굉장한 화제로 허준 설화가 전국에 전해지기도 했으나 1608년 선조가 사망하자 어의로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는데 이는 형식적인 관례로 다시 광해군의 어의가 되고 1610년에 동의보감의 편찬을 완료하여 광해군에 바친다. 선조 왕명이후 14년만으로 동의보감은 조선과 중국의 모든 의서를 참고하고 허준의 연구가 더해서 일종의 의학백과사전으로 출판되고, 이는 조선, , 일본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심지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조선인이 북경의 서점에서 동의보감을 살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허준은 침술의 달인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역병의 예방과 치료가 주분야이고 실록에서도 허준 본인은 선조에게 직접 소신은 침 놓는 법을 모르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허준은 해부한 시체가 부족해서 제자들을 해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이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역병이나 기아로 인해 시체를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허준은 161576세에 죽었고 그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지역에서 1991년에 발견되고 2005년에 서울시 강서구에 허준박물관을 개관하여 운영하고 2009년에는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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