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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주아는 어떻게 나왔고 왜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을까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7. 2. 05:06

    역사서에서 자주 보던 단어 부르주아는 이라는 뜻을 가진 부르그와 관련이 있다. 부르그는 프랑스어로 부르와 독일어로 부르크라고 한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독일의 함부르크와 부르덴부르크가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는 세가지 의미를 뜻한다. 첫째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와 귀족에 이어 제3계급으로 등장한 사람들, 둘째는 근대 사회에 자본가 계급을 형성한 사람들, 셋째는 돈 많은 사람들이다 유럽에서 부르주아가 출현했을 때는 11세기이다. 당시 부르주아는 성 즉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가르켰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부르주아 계급 역시 성장했다. 성직자와 귀족이 아니었던 이들은 성 주위에 살면서 도시 안팎으로 성장하는 무역업과 상업 덕분에 큰돈을 벌었다. 부르주아는 이렇게 축적한 부를 앞세워 사제와 귀족에 이어 제3계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신부의 차이로 무시와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귀족 작위를 사는 부르주아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세태는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가 1670년에 쓴 <평민귀족>에 잘 나타나 있다. 몰리에르는 이 작품을 통해 돈 많은 부르주아인 주인공이 귀족으로 신분 상승하기를 꿈꾸며 벌이는 갖가지 우스꽝스러운 형태를 보여주고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어리석음을 비판했다. 18세기에 와서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지위가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프랑스혁명으로 정치적인 위상을 어느 정도 확보한 부르주아는 제2제정 시대의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축척하고 귀족들과 싸우면서 지위를 공고히 해 나갔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부르주아를 중세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모든 계급을 뒷전으로 밀어냈다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토지를 소유한 왕과 귀족의 농업중심의 경제가 무너지고 주요 생산 수단을 독차지한 부르주아는 사회의 주요 계급인 고용주로 그렇치 못한 프롤레타리아는 고용인으로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일제 강점기때 있었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계급 갈등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민족 갈등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해방이후에도 심각한 이념 갈등, 신탁 통치, 남북 분단, 한국전쟁 등으로 계급갈등은 가려졌다. 1970년대 전태일 열사의 희생과 대학생들의 항쟁으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 사회의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군부독재를 타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80년대에는 민주주의 확산에 1990년대는 외환위기에 관심이 쏠렸다. 역사적으로 한국내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은 국가 위기 속에서 축소되어 제대로 표출되지 못했다. 일부 학자들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오늘날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진정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갈등의 서막으로 보고 있다. 한편 프롤레타리아는 무산계급으로 라틴어로 로마의 최하층 시민을 말하는 프로레타리우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용어는 칼 마르크스가 정의하고 프랑스 2월 혁명에서 노동자 계급의 대규모 저항이 발생하고 나서 임금 노동자가 사회 전면에 드러나자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가 유럽 여러 나라에 퍼졌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고 부르주아는 소유한 생산수단과 자본으로 상품을 제조하고 판매해 부를 축적하는 한편 프롤레타리아는 생존을 위해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무산계급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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