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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중세사회에는 통하지 않았다고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1. 6. 24. 05:17
중세 유럽은 넓은 원시림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타국과 교류할 필요성 때문에 원시림의 나무를 잘라내고 강제로 길을 연 것이다. 길을 나타나는 route는 라틴어 룸페레에 의미로 깨부수다라고 한다. 과거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태초부터 인간이 두발로 움직이는 자리에는 자연히 길이 생겼다 때로는 특수한 목적으로 길을 만들기도 했다.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서 만들거나 상거래를 위해서 만든 silk road가 있다. 병사들이 움직일 때는 가장 큰 길이 만들어진다. 고대 로마 제국이 병사 이동을 위해 만든 길 덕분에‘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표현까지 생겨났다. 중세에 들어오면서 길의 운명은 달라졌다. 중세 유럽은 자급자족의 장원을 기초로 한 지방 분권 사회였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새로 길을 만들기는커녕 버젓이 있는 길마저 인접국의 침입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파괴하기도 했다. 이로써 로마시대 때 만든 도로는 황폐해지고 거대한 원시림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중세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장원에서 다른 장원으로 이동할 때 어두운 숲속을 통과해야 했다. 이러한 여행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당시 숲속에서는 길을 잃거나 짐승 혹은 산적의 습격을 받기 십상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전설적인 인물 로빈 후드 역시 원시림을 근거지로 삼고 포악하고 부패한 귀족, 상인을 습격했던 중세시대의 영웅이었다중세 원시림과 관련된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백년 전쟁이 한창이던 1356년에 에드워드 흑태자가 이끄는 영국군은 프랑스 서부에서 남하하고 있었고, 장2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쫓고 있었다. 양군은 똑같이 남하하면서도 울창한 숲 때문에 서로의 동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국군을 쫓던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추월한 거다. 영국군의 선두부대와 뒤쫓고 있던 프랑스군의 후미 부대가 만나 버렸고, 깜짝 놀란 양군은 즉시 교전을 들어갔다. 결과는 영국군의 승리로 돌아갔는데 이것이 유명한 푸아티에 전투이다. 중세시대가 끝나고 통상이 활발해졌지만 도로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비가 오면 도로는 순식간에 진창길로 변했다. 포장길의 소유주는 도로세, 마차세, 다리세 등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또한 땅에 떨어진 물건은 도로 소유주의 것이라는 이상한 관습 때문에 일부 악덕 영주는 화물이 마차에서 쉽게 떨어지도록 일부러 길을 울퉁불퉁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길과 관련된 여행의 travel은 라틴어 프레팔리움의 일하다에서 유래하는데 이단어는 셋을 뜻하는 트리아와 회초리를 뜻하는 팔루스를 합쳐 만든 말이다. 세 개의 회초리를 하나로 묶으면 일종의 삼지창이 되는데, 옛날에는 이 삼지창으로 노예를 독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도 여행은 아주 힘든 일로 생각해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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