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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경제의 파탄을 가져온 1929년 경제대공황의 전말은 어떤 것인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1. 6. 21. 04:59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라는 10년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세계공업 생산의 40%를 차지하고, 대외 투자액이 150억달러에 달하는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로 이윤을 늘렸고, 뉴욕증권거래소의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중들은 주식투자와 대량소비의 마술에 빠져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로왔다. 뉴욕타임스는 192911일자에 미국은 지난해 유사 이래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새해는 번영의 해가 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모두가 번영의 쾌속 열차를 탄 듯했다. 19299월에 주가가 출렁거렸다. 당시 주가는 1921년에 비해 4배나 급등한 상태이고 10월에 1차 투매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최대은행인 JP모건이 주식 매입에 나서 급한 불을 껐다. 그러다가 1029일 화요일이 되자 모두가 주식을 팔겠다고 나섰다. 걷잡을 수 없이 밀린 주가지수는 하루새 22%가 폭락했다. 검은 화요일이었다. 불과 2주만에 미국 증시 시가총액의 300억달러가 날아갔다. 미국이 1차대전때 지출한 전비와 맞먹는 규모였다. 연말에는 주가지수가 최고치에 비해 반 토막났고 1932년에는 최고치의 1/6로 주저앉았다. 맨해튼의 마천루마다 자살자들이 속출했고 경제대공황의 시작이 되었다. 뒤이어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1차 세계대전중에 유럽의 곡물수출이 중단되어 국제가격이 오르자 미국 농민들은 은행 대출로 땅과 기계를 사서 생산량을 늘렸다. 그러나 전후 유럽이 곡물 수출을 재개하자 국제가격이 뚝 떨어져 농민들이 파산했다. 농민에게 돈을 빌려준 소형은행들도 줄줄이 쓰러졌다. 은행이 불안해지자 1930년 가을부터 예금자들의 대량 인출사태가 벌어져 금융시스템도 무너졌다. 1933년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되고 예금지급을 정부가 보장하는 예금자보호제도가 도입되고서야 진정되었다. 미국은 연방준비은행은 1920년대에 통화량을 늘려 이자율이 낮아진 상태였다. 전후 경기 부양하고 달러화 가치를 1차 대전 이전의 영국의 파운드하 환율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돈이 풀리자 농가부채가 무분별하게 증가했을뿐 아니라 도시중간층이나 서민들도 싼 이자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고 주택과 자동차를 샀다. 높아진 임금과 싼 이자는 대량소비를 부추겼다. 1920년대 후반 주가가 급등하자 연방준비은행은 1928년 투기 억제를 위해 통화량을 줄이는 긴축정책으로 돌변했다. 당장 이자율이 올라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파산하고 주택과 토지시장의 거품도 붕괴했다. 주가 대폭락의 도화선으로 모든 사람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대공황이전에도 기업들의 생산과잉이 나타나 불황조짐을 보였다. 주기적인 경기침체에 그칠 불황이 주식, 주택 등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까지 겹쳐 대공황으로 증폭된 것이다. 연준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널뛰기식 통화정책으로 대공황의 충격을 키웠고 더 오래 지속되게 만들었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되자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를 취소했다. 그 결과 1933년 미국의 공업생산량은 대공황 이전의 절반으로 감소했고 그 사이 기업이 14만개가 문을 닫고 은행이 2.5만개에서 1만개가 파산했다. 대공황 이전에 3%대였던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국민 4명당 1명이 실업자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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