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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부국으로 자리 잡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6. 9. 22. 01:40

    < 바닷가의 마을에서 사자의 도시로 >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의 남단과 폭 1km의 조호르 해협을 사이에 둔 작은 섬이다. 남북 23km, 동서 42km 720면적의 국토에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1990년경 싱가포르의 국토는 약 625였는데 연안지역의 간척사업을 진행하여 현재는 약 15%나 국토를 확대했다. 싱가포르는 앞으로도 2030년까지 간척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싱가포르는 조호르 해협 건너편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와 연결된 도로와 수도관을 통해 물과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역시 인도네시아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에 의존하고 있다. 싱가포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상반신이 사자, 하반신이 물고기인 신기한 생물을 형상화한 머라이언일 것이다. 1972년에 싱가포프 정부는 이 가상 동물을 국가의 상징물로 정했다. 전설에 따르면 11세기경 수마트라섬을 중심으로 번성한 해양국가 스리위자야왕국의 왕자가 항해 중에 이 섬을 방문했는데 그때 사자가 나타나 이 땅에 대한 그의 지배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섬을 싱가푸라(사자의 도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그 이전부터 말레이어로 바닷가 마을을 의미하는 테마섹이라는 호칭도 있었다. 머라이언의 상반신은 사자의 도시인 싱가푸라를 하반신은 바닷가 마을인 테마섹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자유무역항으로 성장한 도시 >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 후 급속히 발전했다 원래 이 마름모꼴 섬의 남부에는 소수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북부에는 조호르해협을 지나는 배를 약탈하던 해적들의 거점이 있었다고 한다. 수마트라섬과 말레이반도를 지배하는 역대 왕조의 세력하에 있었지만 싱가포르는 그저 작은 섬일 뿐이었다. 그런데 16세기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유럽국가들이 동서교역의 중계지로서 동남아시아 섬들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그때 싱가포르가 갑자기 주목받게 되었다. 최초로 싱가포르에 주목한 사람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토머스 래플스다. 인도를 식민지화한 영국에 싱가포르는 지리적으로 인도와 동아시아를 잇는 교역거점으로 상당히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래플스는 1819년에 당시 말레이반도 남단을 지배하던 조호르왕국과 교섭하여 상업활동을 위한 기지 설립 허가를 얻어냈다. 조호르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네덜란드는 이에 반대했지만 1824년에 영국이 조호르왕국에 연간 1.8만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그후 래플스는 싱가포르를 자유무역항으로 개방하고 관세를 받지 않았다. 이때부터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불과 5년만에 인구가 1만명을 넘었고 20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23만명에 달했다.

    < 중국계 화인정권의 탄생 >

    중국에서 온 이주민들은 싱가포르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인구 비율은 중화계 76%, 말레이계 14%, 인도계 9%, 기타 1%, 원래 말레이계가 많은 섬이었지만 중화계가 많아진 까닭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노동자는 항만에서 짐을 나르거나 중노동을 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중에는 말레이시아산 고무를 수출하는 등의 무역사업에 진출해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 이주해서 정착한 중화계 사람들은 화인이라 불렀다. 영국은 각 민족마다 거주지를 나누어 통치했다. 194112월에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2월에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일본군은 동남아시아 통치를 위한 해군기지로 싱가포르를 활용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반일운동의 자금원인 중화계를 탄압하는 반면 일본에 협력하는 말레이인과 인도인을 우대했다. 이 정책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종전 후 싱가포르는 다시 영국령이 되었고 1959년에는 자치권을 얻어 싱가포르 자치주가 되었다. 하지만 의회가 설립되고 점차 싱가포르의 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이때 독립운동의 주역 또한 화인들이었다. 당시 화인 엘리트들은 크게 두 그룹 즉 중국어로 교육받은 화어파와 영어로 교육받은 영어파로 나뉘었다. 1954년 영국에서 공부한 변호사인 영어파 리콴유가 중심이 되어 화어파의 지지를 얻은 인민행동당을 결성했다. 그리고 인민행동당은 1965년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정권을 잡고 있다

    < 환상의 싱가포르와 독재정권 >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고 수도가 그대로 국토인 셈이다. 하지만 인민행동당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는 싱가포르시도 존재했었다. 당시 싱가포르 시장인 옹엥관은 중화계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굳건한 지지를 받았지만 접전 끝에 리콴유가 총리에 선출되었다. 이후 국토가 좁다는 이유로 싱가포르시는 폐지되었다. 1957년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반도 남부의 말라야연방이 독립하고 1963년에는 말라야연방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연방이 결성되었다. 그 일원인 싱가포르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우대정책을 펴며 화인이 많은 싱가포르와 대립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싱가포르와 빈곤한 말레이시아의 경제 격차가 문제가 되었다. 이렇듯 복합적인 배경으로 인해 싱가포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2년 만에 다시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떨어져 나왔다. 1965년에 마흔한 살의 나이로 리콴유는 싱가포르공화국을 건국하고 초대 총리가 되어 독재적 체제를 강화해 나갔다. 인민행동당은 공산주의의 화인정당과 공동투쟁으로 정권을 획득했지만 독립 후 리콴유는 비판세력뿐 아니라 공산주의세력까지 모두 배척했다. 제도상으로 복수 정당이 인정되는 민주국가였지만 리콴유는 인민행동당에 유리하도록 법률을 개정하여 야당 의석은 몇 석밖에 없는 실질적인 일당독재체제를 만들었다. 리콴유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부국을 만드는 것만을 목표로 세웠다. 좁은 국토의 싱가포르의 경제적 안정과 독립을 유지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에 사는 민족 모두가 싱가포르인으로서 하나로 뭉칠 것을 요구하며 모든 민족을 평등하게 대하는 방침을 찾고자 했다. 공용어로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 영어 이렇게 네가지로 정했다.

    < 경제발전과 도시개발의 양립 >

    현재는 싱가포르는 식민지 시대와 마찬가지로 동서교역의 주요 항구다 상하이와 항저우 등 중국의 항구와 경쟁하며 싱가포르항은 세계 2위의 화물취급량을 자랑한다. 창이국제공항도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허브공항으로서 전 세계에 항로를 열고 있다. 리콴유는 세제 면에서 외국기업을 우대하는 등 적극적인 외자유치에 나섰다. 특히 증권회사와 같은 금융기관을 유치하여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제금융센터로 발전시켰다. 싱가포르 국내 기업은 대부분 정부계 기업이고 국비로 해외유학을 한 엘리트들이 국가 정책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협소한 국토로 인해 도시개발 또한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다. 고층아파트나 콘도미니엄을 건설하여 대다수 주민이 공동주택에서 살도록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녹지를 확보하기 위해 건축물당 녹지면적을 엄격히 규정하고 단독주택에 의무적으로 나무를 심도록 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껌을 뱉으면 매우 엄격한 벌칙을 부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하철망을 정비하여 전선을 지하에 매립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통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싱가포르는 경제적 풍요를 실현하고자 자연과 함께하는 근대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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