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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도시 문화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6. 6. 25. 01:39



하라파 

모헨조다로 

고대 인도 문명이 아리아인의 침략 이후에야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1922년 고고학자들이 인더스강 유역에서 유적을 발견하면서 인도의 역사를 1천년이나 앞당겨 놓았다. 이것이 하라파 문화이다. 하나는 인더스강 하류의 모헨조다로이고 다른 하나는 인더스강 상류의 하라파다. 이들은 거리상으로는 5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하라파 문화는 기원전 약 2500년부터 기원전 1750년까지 존재했다. 이집트와 수메르의 고대문명보다는 조금 늦었다. 하라파 문화는 문명시대를 진입한 후의 문화로 이미 문자를 갖고 있었으나 해독하지 못한 상태다. 경제는 농업이었고 농작물의 종류가 상당히 풍부했고 농기구로는 청동기와 철기를 함께 사용했다. 각종 수공예품은 당시 공예가들의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이었음을 보여준다. 방직과 도기 제조도 중요한 수공업 분야였으며 무역 방면에서 이미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과 상업적인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하라파는 모두 성채와 시가지들을 갖고 있었다. 큰 도시가 바로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다. 모헨조다로는 사각형이며 둘레가 약 5km정도 된다. 성채는 정치 중심지였는데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에는 고층건물들과 의사당이 있으며 백명 정도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 목욕탕이 있다.시가지는 주민들의 거주지로 넓은 길이 놓여 있고 하수도 시설도 완비되어 있으며 가로등도 설치가 되어 있었다 욕실과 배수설비가 모두 잘 갖추어진 집도 있지만 간단한 방밖에 없는 집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빈부격차가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공공 건축물, 곡물 창고와 유적의 규모를 근거로 하여 당시 도시의 인구를 추산하면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인구를 3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는 번화한 도시였음을 알려준다.



베다시대 유물 


하라파 문화의 주인공은 당시 인도의 토착민이지 아리아인은 아니었다. 하라파 문명은 약 600-700년 동안 계속되다가 기원전 1750년경에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지진, 흙과 모래 사태 등과 같은 자연 재해가 하라파 문명 쇠망의 원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외래 민족의 침입이 하라파 문명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또 생태환경의 악화가 쇠락을 가져왔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라파 문화가 문화가 소멸된 후 베다 시대에 들어섰다. 베다는 지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오랫동안 축적되어 내려온 대량의 문헌이 집성된 것으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 사마베다, 아주르베다, 아타르바베다가 그것들이다. 리그베다가 초기 베다(기원전 1500-900년)로 부른다. 나머지 3개는 후기 베다시대로(900-600년)로 불린다. 베다의 편찬자는 자칭 아리안인데 이는 고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리아인들이 구사하던 범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이들은 기원전 15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인도를 침범해 인도 주민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했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처럼 베다 역시 인도 아리아인의 서사시다. 베다를 통해 당시 인도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아리안인들은 인도에 정착한 직후에도 처음에는 씨족사회제를 유지했다. 점차 사회경제가 발전하고 사유재산이 축적되어 가면서 국가가 생기게 되었고 군대를 이끌던 자기 세급군주로 변하게 되었다. 왕권과 신권이 결합된 통치도 행해졌다. 그러나 후기 베다시대의 국왕은 전제군주와는 다르다. 노예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분화되면서 후기 베다시대의 인도는 민족적 특색이 가미된 체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카스트 제도와 브라만교다.







카스트제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등급으로 나누는 절대적인 불평등 사회이다. 브라만은 종교의식을 주관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정치권력을 향유했다. 크샤트리아는 무사계층으로 군권을 쥐고 있었고 바이샤는 평민으로 농업 목축업과 상업에 종사했다. 수드라는 지위가 낮아 천대를 받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카스트 제도는 출신가정에 의해 결정되며 변함없이 세습되었다. 한편 초기 베다시대의 종교는 자연종교에 지나지 않았고 제사도 간단한 편이었다. 단순했던 종교는 점차 완전한 체제를 갖춘 브라만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브라만교의 최고신은 범천으로 브라만교의 범천이 세계의 정신이며 최고 주재자이고 우주의 창조자로 세계 만물은 모두 범천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브라만교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업력윤회설을 만들어냈고 인생의 고통과 기쁨이 모두 전생의 공과 업보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이런 사고는 사람들의 사고를 마비시켜 현재에 안주하게 하고 희망을 다음 생에 걸게 만들었다. 설사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이를 참고 토해내지 못하게 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 브라만교는 점점 신비화하면서 인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브라만교와 카스트제도는 인도인을 속박하는 것이 되었다. 기원전 600년경 베다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도는 열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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