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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119) 눈을 씻고 가자 / 무음으로 피는 꽃 / 문득 나만 홀로 남았다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6. 4. 9. 01:18
< 눈을 씻고 가자 - 박노해 >
아가 눈을 씻고 가자
장에 다녀오는 길에 할머니는
동네 입구 샘터에서 눈을 씻겨 주시네
좋지 않은 모습이나 험한 것을 볼 때마다
아가 눈을 씻고 가자
바라보는 건 눈으로 어루만지는 것이어서
그걸 자기 마음속으로 끌어오는 것이니
사람은 눈을 잘 보호해야 하니라
아가 눈을 씻고 가자
늘 시선을 바르게 유지하거나
그래야 맑은 눈빛에 마음이 빛나고
언행이 바로 서는 법이란다
아가 눈을 씻고 가자
< 무음으로 피는 꽃 - 전길중 >
피고 지는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혼잣말하는 어머니
봄 떠난 지 오래인 줄 알면서
꽃 피지 않는다 속앓이다
꽃들을 밀어 올리는 꽃대의 명치 아리다
꽃샘추위를 견디어야 봄이 오는 것을
한꺼번에 그 많은 꽃 피울 수 없음을
꽃이 저절로 피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서 그랬을 거니 짐작하며
스스로 꽃대를 세워 무음으로 피는 꽃
어둠과 빛의 경계에 머물러
그래 꽃이 피고 질 때 소리를 내지 않지
눈물 훔치는 꽃나무에 저승꽃 아른거린다
< 문득 나만 홀로 남았다 - 박노해 >
비로소 끝이 보인다
내 마지막 투신이 때
더 이상 붙들 것도 없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저문 가을날
지상을 돌아보면
문득 나만 홀로 남았다
붉게 익은 목숨은
바닥에 떨어져도
서러운 이별이 아니다
이 한순간을 위해
나 찢긴 청춘의 수의를 입고
처절하게 매달리고 나부끼며
여기까지 몸부림쳐 왔다
텅 빈 가을 하늘에
외롭게 걸린 목숨 하나
우는 새야
내 마지막 투신을 슬퍼 마라
단 한 번 크게 던진
내 삶의 절정
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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