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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꾼 이유 / 이란이 마라톤 금지 국가인 이유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6. 4. 14. 01:00






제 2차 세계대전 중 아리아인의 종족을 우월주의를 전면에 내건 히틀러는 유대인, 집시 등 아리아인이 아닌 사람들은 순수한 독일계 아리아인의 혈통을 더럽히는 존재로 몰아 대량 학살했다. 아리아인은 인도 유럽 어족 가운데 한 부류로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 살던 기마 민족이 인도와 이란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민족을 가리킨다. 아리아인은 기원전 150년경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문명 세계에 등장한다. 아나톨리아고원을 장악하고 함무라비 왕조를 무너뜨린 히타이트, 인더스강 유역을 침범하여 드라비드족을 내몬 아리아인, 이집트를 지배하던 힉소스 등이 모두 아리아인의 방계이다. 이들 가운데 인도, 이란에 정주한 일파는 스스로를 아리아인이라 불렀다. 19세기에는 인도 유럽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셈족, 황인종, 흑인종에 비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이 등장했다. 독일계 게르만족의 아리아인은 인류의 진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비아리아인은 인류의 진보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는 논리였다. 여기서 히틀러가 말하는 아리아인은 게르만족을 지칭하는 민족적 개념으로서의 아리아인이 아니라 인도 유럽 어족과 같은 계열의 어군을 사용하는 언어학적 개념으로서의 아리아인이다. 오늘날 자신들이 아리아인의 진정한 후예임을 강조하는 나라가 바로 이란으로 이란은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란인들은 이집트에서 인더스강에 이르는 지역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페르시아라는 말은 이란 남부의 페르시스에서 나왔는데 페르시스는 지금의 파르스로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를 말한다. 그리고 페르시스라는 말은 기원전 1500년경 이곳으로 이주한 아리아인으로 인도 유럽에 유목인의 한 부족인 파르샤라는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란인들은 스스로를 인도 유럽어계의 백인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의 선조 국가인 페르시아를 동양을 대표하는 국가로 여기는 서구 역사관에 반대한다. 1925년 혁명으로 집권한 팔레비 왕조는 유럽의 압박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1935년 국명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꾸고 산업화와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크레르크세스 문 


페르세폴리스 궁전터 
이란 지역별 민족들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모든 민족의 대표들은 해마다 페르시아왕을 알현하기 위해 페르시폴리스 궁전의 크세르크세스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를 지배한 크세르크세스 1세가 세운 문은 만국의 문이라 불리는데 문에는 사람 얼굴에 날개를 단 황소가 궁전의 수호신으로 조각되어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를 받던 모든 나라의 뛰어난 기술과 지식이 결합되어 건축되었다. 기원전 518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200여년간 한 세대를 풍미한 이 웅장하고 화려한 왕도는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불을 질러 잿더미로 변하여 그곳에는 현재 왕궁 터만 남아 있다 한편 아케메네스 왕조에 뒤이은 사산조 페르시아 또한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는 신정 정치를 실시하여 이란인의 민족의식을 더욱 강화했다. 사산 왕조가 이슬람 제국에 의해 정복되면서 이란은 이슬람화되었지만 아랍인이 아닌 아리아인으로서 페르시아풍의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워 그 전통을 계승해 오고 있다. 그리고 아랍과 튀르키예, 인도의 중앙에 위치한 이란은 예부터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이 공존한다. 약 50%를 차지하는 페르시아족, 이란인이 중앙 사막지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아제리족, 아랍족, 쿠르드족 등의 소수 민족이 여러지역에 분포한다. 이란은 지배층인 페르시아족이 독자적인 문화에 대한 긍지가 매우 강하여 소수 민족과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란은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제 7회 아시아게임에서도 마라톤 종목을 제외시켰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적대국이었던 그리스에게 패한 데서 비롯된 경기가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이란인의 조상은 인도 유럽 어족에 속하는 인종의 한 갈래인 아리아인들이다.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에 살던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2500년경 이란고원 일대로 이동하여 정착했다. 이곳에서 뭉치고 흩어짐을 거듭하던 이란인들은 최초로 메디아 왕국을 세웠다. 메디아 왕국은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사이에 두고 아랍계의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대립하다가 멸망했다 그러나 뒤이어 아케메네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제국의 역사를 이어갔다. 다리우스 1세는 인도 북부에서 이집트, 불가리아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어 내었다. 다리우스 1세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리디아 속주의 수도 사르디스에서 페르시아의 수사에 이르는 2700km의 왕의 길을 건설했다. 다리우스 1세의 침략을 물리친 것은 그리스뿐이었다.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에 정복된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의 식민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벌에 나섰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를 침공했으나 폭풍으로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던 다리우스 1세는 2년 뒤 아테네 북동쪽 40km지점인 마라톤 평원에 상륙했다. 이에 그리스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고 결국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이 싸움에서 페르시아 병사는 6400명이 전사했으나 그리스 병사는 190명만이 죽음을 맞았다. 마라톤에서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아테네까지 달려간 그리스 병사 페이디피데스는 이겼다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생긴 경기가 바로 마라톤이다.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에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대 사람들의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스병사가 달린 거리는 실제 36.75km로 알려졌다. 1924년 제 8회 파리올림픽 전 42.195km로 확정되기까지 제 1회 아테네 근대 올림픽 종목에서는 40km 전후로 일정치 않았다. 제 4회 런던올림픽때 영국 왕실은 마라톤의 시작과 결승 광경을 지켜볼 수 있도록 원저성의 동쪽 베란다를 출발점으로 하고 화이트 시티 운동장이 결승점으로 했는데 이때 거리가 42.195k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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