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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거대한 부국의 나라 스위스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6. 2. 24. 01:25



빌헬름텔 

스위스는 세계를 호령했던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보다 작은 나라이다. 이들 나라는 해외에 진출해 식민지를 차지하며 거대한 세계제국을 형성했다. 반면 스위스는 바다와 접한 지점이 전혀 없는 나라로 땅에 갇힌 나라다. 바다와 강에 비해 굴곡이 심한 육지에서 이동할 때 더 큰 비용이 발생한다. 유럽의 부국들은 해양제국들이었다. 게다가 스위스는 독일처럼 거대한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알프스라는 산악 지역이다. 부국의 스위스가 발전한 첫 열쇠는 베네치아와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베네치아는 육지의 전쟁과 바다의 해적을 피해 모인 사람들이 석호에 흙을 부어 만든 땅이다. 네덜란드도 바다를 막고 흙을 메워 만든 영토에 강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적대적인 자연조건이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강한 의지와 협력의 촉진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스위스가 외국인이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나라 1위를 차지했다. 스위스가 부자나라로 부상하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다. 그 이전에는 스위스는 유럽 산악지대에 가난한 나라로 유명했다. 한편 어린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을 쏜 빌헬름 텔의 이야기는 스위스 역사의 대표적 신화다. 이 전설과 같은 일은 14세기 초에 벌어졌다고 16세기에 기록되었다. 압제에 저항하는 정신과 용기을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스위스의 모태는 1291년 산악 마을 간의 연합으로 귀족과 왕족의 지배에 거부하여 독립성 강한 산악마을과 도시의 연합체로 성장해갔다. 또한 스위스 하면 유럽전쟁에 동원된 용병들이며 스위스의 병사들은 원래 캉통이라 불리는 주 단위에서 운영하는 군대에 속했다. 15세기 스위스 군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맹한 전사로 명성을 떨쳤다. 1701년 스위스 용병은 5.4만명인데 그 가운데 2.5만명이 프랑스에, 1.1만명이 네덜란드에 속해 전투를 벌였다. 스위스가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였는데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국에 활약하는 용병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용도 칼은 스위스 군대의 산물이다.




작은 나라로 스위스는 다양성에서 유럽에서 독보적이다. 언어의 영역을 보면 독일어(62%), 프랑스어(23%), 이탈리아(8%)로 구성되어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언어가 달라도 하나의 민족으로 똘똘 몽쳐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 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대한 배려는 극소수만이 사용하는 로망슈어를 1938년에 국어로 인정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언어는 불과 3만명 즉 국민의 1%미만만 사용하지만 스위스의 공용어다. 스위스는 외국 출신의 비중은 25%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스위스의 다양성은 언어뿐 아니라 종교에서도 드러난다. 유럽 역사에서 심각한 대립과 전쟁의 원인이었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스위스에서는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데 성공했다. 이민자를 중심으로 5%가 이슬람교도이다. 스위스의 역사는 13세기에 시작되었지만 근대적인 연방국가가 세워진 것은 1848년이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인데도 많은 언어와 종교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캉통이라 불리는 26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외교와 국방, 세관과 화폐만 연방 단위에서 관리하고 나머지 정책은 모두 주 단위에서 결정하고 시행한다. 사법, 치안, 교육, 보건, 교통, 세제 등이 대부분 주의 권한이다. 요즘 비밀투표가 일반화되었지만 스위스의 두 캉통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다.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거수투표를 하는 14세기의 전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부국을 만드는 데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스위스는 유럽의 미국이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은 19세기에 모두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경제발전을 시작했지만,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시장 중심 모델과 유럽의 혼합경제 모델로 분화되었다. 국가의 역할을 최소로 줄이는 미국과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유럽 모델이 대립했던 시대에 스위스는 유럽에 있으면서도 미국에 가까운 정치적 경제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스위스는 코로나 19 팬데믹 위기 시에도 미국가 비슷한 작은 정부를 추구했다. 스위스는 7명에 불과한 장관 수가 대변한다. 장관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담당한다. 따라서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은 스위스가 강소국이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열악한 자연환경 탓에 사업하기도 어려운데, 국가가 사업에 기생하면서 부를 빼앗는다면 부자 나라가 되기는 요원하다. 스위스는 다수의 캉통이 서로를 견제하는 연방주의 모델을 발전시킴으로써 중앙정부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즉 풀뿌리 캉통 민주주의가 연방정부를 제한하는 힘이었다. 2018년 세계은행에 통계에 따르면 인구 850만명에 GDP는 7750억달러로 세계 20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인구 8200만명의 튀르키예가 스위스 바로 앞인 19위이다. 스위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8.3만달러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위스의 물가는 살인적으로 비싸다고 한다. 예전 산악지역이라 빈곤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벌이는 전쟁에 용병으로 나섰던 스위스는 이제 부유한 나라로 발전해 주변에서 노동력을 끌어당기는 중심지가 되었다. 스위스의 이민은 블루칼라 노동자외에 취리히에는 독일의 전문인력도 들어오고 있다. 스위스의 높은 임금을 보고 주변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매일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도 많다. 프랑스에서 6만명으로 제일 많고 독일이나 이탈리아도 4만명 정도다.

사회평화협약(1937년) 



세게경제포럼 한편 제네바 시민들이 물가가 저렴한 프랑스로 넘어가 장을 보는 일도 빈번하다. 스위스가 유럽에서 소득이 높은 이유는 우선 스위스 사람들은 근면 성실해 노동시간이 유럽에서 긴 편에 속한다. 스위스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매우 협력적이다. 정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지 않지만 민간의 자본과 노동이 협의를 통해 사회적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관계는 1937년 사회평화협약 체결로 올라가는데 자본과 노동이 직장 폐쇄나 파업과 같은 극단적 전략을 포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낮은 세금이나 정부의 지출을 보면 미국의 야만적 자본주의와 유사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스위스는 노동의 힘이 강하고 그 몫도 크다. 자본이 차지하는 이윤과 이자보다도 노동이 가져가는 임금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가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스위스의 경제의 장점은 특화전략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시계산업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6세기 이미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지역에는 보석 세공과 같은 정밀 수공업이 발달해 있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으로 검소한 삶의 방식이 자리 잡고 사치품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자 스위스인들은 보석을 포기하고 근면한 삶의 상징인 시계 만들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스위스가 아직 가난하던 19세기 유럽인들의 세계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알프스산맥을 흉측한 악산으로 보다가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스위스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관광과 휴양을 즐기는 유행이 퍼지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등산이나 스키와 같은 레저스포츠가 발전하면서 스위스가 특별히 주목받기 시작했고, 다문화적인 배경 덕분에 유럽 엘리트드의 교육 중심지가 되었다. 세계경제포럼이 스위스에서 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위스의 산업 가운데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대표주자는 바로 금융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18세기 초부터 부자 손님의 비밀을 보장하는 정책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그레디트 스위스, UBS, 줄리어스 베어 등을 배출했다. 세계 국제 자산의 25%를 관리할 정도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한다. 독일어권의 취리히와 바젤, 푸랑스어권의 제네바, 이탈리아권의 루가노는 각각 스위스 은행의 세계적 중심지들이다. 스위스는 교육수준과 연구능력 덕분에 정밀기계 분야외에도 제약회사가 발전했다. 노바티스와 호프만 라 로슈는 스위스 수출액의 30%를 차지하는 세계 제약산업의 대표주자다. 농업이 발달하기 어려운 국가인데도 스위스의 네슬레는 세계 1위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1866년 스위스에서 네슬레를 출범시킨 것은 분유를 개발한 독일인이었다. 사업을 확장하고 20세기 후반에는 커피나 초콜릿, 광천수 등의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고 세계 식품산업을 대표하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역외국가로 남아 있다. 1991년 국민투표로 실시했으나 가입안이 부결되어 오늘날까지 비회원국으로 남아있다. 스위스는 다수의 국민과 캉통이 동의할 정도로 합의가 이뤄져야만 움직이는 독특한 전통에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다. 유럽과는 단절된 것은 아니며 솅겐조약에 가입하여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고 있다. 스위스는 2002년 되어서야 국제연합에 가입했다. 중립국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연합에 가입하면 곤란하다는 인식이 계속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 
국제올림픽위원회(로잔) 


스위스의 정체성(정신력, 교육력,강인함) 외교 안보가 아닌 특정분야나 인도주의적 분야에서는 스위스도 국제연합의 행보에 동참한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활동이 대표적이고 국제노동기구의 본부는 심지어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금융의 세계기관 노릇을 하는 국제결제은행은 스위스 바젤에 본부가 있다. 스위스의 로잔은 세계 스포츠의 메가라고 불린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로잔에 본부를 두고 것은 물론 수영, 체조, 배구, 야구, 펜싱 등 다수 종목의 본부를 유치하고 있다. 지구촌 최고 인기 종목인 축구를 관장하는 국제축구연맹도 취리히에 본부가 있을 정도로 스위스는 국제 스포츠의 수도라해도 모자람이 없다. 산속에 작고 가난한 나라가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된 것은 열심히 일하는 정신력, 자원은 없어도 교육으로 사회 전체의 능력을 키우는 전통, 주변 강대국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개방성에서 찾을 수 있다. 스위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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