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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원의 기원 / 물개쇼의 기원 / 독일의 하겐베크 누구
    아들을 위한 인문학/동물 2025. 12. 11. 01:40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점보는 런던 동물원의 스타 코끼리 이름에서 유래했다. 코끼리가 워낙 큰 동물인 데다 흔하게 접할 수 없던 시절이다 보니 거대하게 보였을 것이다. 점보가 런던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근대 동물원의 탄생과 관련이 깊다. 근대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먹이를 주고 접촉해 보도록 시도했기 때문이다. 여태껏 동물원이라 부를 수 있는 시설은 서커스단이 관리하는 소규모 사육장이나 왕과 귀족들이 소유한 미네저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소수가 독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수를 위한 동물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세워진 쇤부른 동물원이 그 주인공이다. 원래 쇤부른 동물원은 1752년 당시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1세가 그의 부인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을 위한 세운 황실 미네저리였다. 황제는 궁 한쪽에 방사형의 거대한 동물 우리를 만든 뒤 세계 각국에서 모은 희귀한 동물들을 몰아넣었다. 여왕이 우울할 때면 별관에서 동물을 감상하면서 식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프란츠 1세의 미네저리는 1765년 요제프 2세가 즉위하면서 일반 대중을 위해 문을 열었다. 그중 조목할 만한 곳이 영국의 런던 동물원이다. 1828년에 개장하였는데 정부가 아닌 영국 동물 협회에서 운영했다. 동물학과 동물 생리학을 발전시키고 동물계에 주목할 만한 새로운 사실 소개가 목적이었다. 런던 동물원은 동물을 깊이 연구하고 그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현대의 동물원에 더 다가섰다. 런던동물원의 이름을 런던 동물원 정원이라 지었는데 런던 시민들이 이를 줄여 Zoo라고 부르면서 지금의 동물원이 되었다. 동물원의 소수 특권층만 즐기는 동물 수집에서 대중이 보고 배우고 체험하는 성격이 강조되었다.

    독일의 엘베강 하구에 생선 장수가 있었다. 생선장수는 어부를 고용하여 엘베강에 사는 철갑상어를 잡아 팔았다. 어느날은 허탕을 치고 물개 여섯 마리를 잡아왔다. 생선장수는 커다란 나무 욕조 두 개에 물개들을 나누어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물개를 구경시키기로 했다. 공터를 공연장으로 삼아 물개가 얕은 물에서 첨벙거리거나 바닥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여 주었다. 생선장수는 물개를 훈련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물개쇼를 보여 주었는데 기대 이상의 돈을 벌었다. 생선장수는 물개 쇼를 탐내는 다른 상인에게 물개를 팔어넘기면서 목돈을 벌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환경적 먹이 등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동물사업을 접을까 생각했는데 그의 큰 아들 하겐베크가 그 사업을 잇겠다고 했다. 하이베크는 15의 나이에 하교를 그만두고 동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아프리카에서 동물들을 사들여 독일에서 팔기로 했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동물 서커스단과 일반 대중을 위한 동물원이 엄청 많아졌다. 언제부터간 하겐베크의 아프리카 원정대가 항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동물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야생동물들을 붙잡은 뒤 홍해로 나오는 데만 두달이 걸렸다. 그렇지만 하겐베크는 못 구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구해다주어 야생 동물 사냥꾼이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하겐베크가 동물사업에 뛰어들고 나서 근 이십 년 동안을 사자 천마리, 호랑이 삼사백 마리, 표범 육칠백 마리 이상을 포획했다. 곰도 천 마리 이상, 하이에나 역시 팔백 마리 넘게 상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물 사업은 독일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하게 된 전후로 일어난 일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아프리카의 동물을 잡아다 본국으로 들여올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업이었다. 그러나 잡혀온 동물 중에는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것도 있었다. 잡혀 온 고릴라는 의기소침해하더니 아예 등을 돌리고 앉아 관람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스트레스였던 나머지 손으로 눈을 가리기도 했다. 갈수록 우울해하던 고릴라는 결국 땅에 머리를 박고 죽어 버렸다. 코끼리도 마찬가지로 다 큰 코끼리는 힘이 세서 사로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리고 금방 병이 들고 만다. 미친 듯이 우리를 오가며 뛰어다니더니 먹이를 거부하다가 끝내 죽어 버렸다

    이런 문제에 고심한 동물 매매자는 바로 새끼를 잡아들여 어릴 때부터 동물원에 키우는 것이었다. 유럽의 동물 매입자들은 동물 사냥꾼들에게 새끼 야생 동물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러나 새끼를 잡는데도 무척 힘든 동물이 있다. 새끼코끼리의 경우는 어른 코끼리 여러마리가 에워싸고 방어벽을 쳐서 새끼를 지키려고 한다. 어른 코끼리가 친 방어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전부 죽이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연발총으로 어른 코끼리에게 총알을 마구 퍼부어 댄다. 새끼 코끼리를 잡는데 많게는 열 마리가 넘는 어른 코끼리를 죽여야만 한다. 사자, 호랑이, 코뿔소 등 거의 모든 야생 동물의 경우 어미를 죽이지 않으면 새끼를 잡을 수가 없다. 하겐베크는 이런 희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잡은 동물들을 합법적으로 사고팔기 위해 동물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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