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U 출범으로 유로에 숨겨진 야망은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5. 10. 2. 02:27
1993년 EU가 탄생했다. EU에는 현재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28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이 조직은 통화를 통합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유로의 공동통화는 환율 변동 리스크 부담이 없어졌다. 회원국간 여행과 이주가 자유롭다. 아울러 제 3국에서 온 여행자도 EU내 어느 한 국가의 입국심사를 통과했다면 그 후로는 별도의 심사절차를 거치지 않고 EU내 이동이 가능하다. EU내에서는 하나의 국가처럼 관세없이 상품 유통이 가능해졌으므로 저렴하고 좋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EU 회원국 국민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다른 나라에서 일할 수 있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의 인권보호와 복지를 받을 수 있다. 한편 EU의 전신은 1952년에 프랑스와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이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설립했다. 이 설립이유는 석탄과 철강은 전쟁에 쓰이는 물자이므로 이를 공동으로 관리하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다. 특히 독일의 움직임을 관리할 요량이었다. 그후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로 발전했다. 이때 영국도 가입을 검토했으나 미국이나 영국연방과 결속이 강해서 유럽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발되었다. 1967년에는 유럽공동체(EC)를 창설하는 등 조금씩 통합을 확대해 나갔다 2002년에는 마침내 통화까지 통합한 것이다
EU는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추진되었고 이는 EU 창설이 성공하는데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두국가는 근대 유럽 대규모 전쟁에 휩쓸렸는데 대부분은 프랑스와 독일의 사이가 나빴다. 프랑스와 독일은 현재의 국가 형태가 형성된 18세기 이후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나폴레옹 전쟁, 보불 전쟁,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 등이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국가의 크기 인구 모두 거의 호각을 이룬다. 프랑스는 가톨릭교도가 많고 독일은 프로테스탄트 교도가 많다는 종교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독일이 힘을 합하여 하나의 구역을 건설하고자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복잡한 경제 정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EU를 최초로 제의한 사람은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다. 프랑스는 제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사회 안에서 지위가 낮아진 것을 고민거리로 여겼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프랑스는 국제적으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을 때, 미국을 지원한 국가가 바로 프랑스다. 그런데 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도움이 없이면 국가의 부흥이 불가능했다. 또한 동쪽에서는 소련이 급격히 발흥하여 동유럽 전체를 소련의 세력권 아래로 두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손을 잡은 것이다. 당시 독일은 서유럽에서 압도적인 1위 수준의 공업력을 지니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힘을 합한다면 미국과 소련에 대항 가능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는 뜻이다
독일쪽에서도 프랑스와 손을 잡고 공동체를 창설하고자 했다.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다. 1945년 영국과 미국, 소련은 독일 점령에 관해 협의했다. 이것이 얄타회담이다. 이 회담을 통해 전후 독일은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이 분할 점령하기로 했다. 한편 소련과 다른 연합국과의 관계가 틀어져 소련이 점령은 동독이고 영국 미국 프랑스가 점령지역이 서독으로 나뉘었다. 수도 베를린은 4개국이 분할 점령되었다. 베를린은 소련이 점령한 동독 지역 안에 있었지만 영국 미국 프랑스도 주둔해 있었다. 동독과 소련 입장에서는 자국령 내에 연합군의 점령지가 있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동독과 소련은 베를린의 연합군 지역을 봉쇄하고 내쫓으려고 했다. 1948년 서독에서 베를린으로 들어오는 차량과 화차는 모두 검사하겠다면서 물자 유통을 중지해버린 것이다. 이들 연합군은 서베를린에 필요한 생활 물자를 항공기로 실어 날랐다. 이 당시에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지 않았고 동서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격화되면서 베를린이 공산국가에서 서방국가로 넘어가는 망명 루트가 되었다. 1949년부터 1960년 사이에 250만명의 동독 국민들이 서독으로 망명했다. 이는 동독 국민의 1/4 규모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1961년 8월 서베를린을 장벽으로 빙 둘러싸서 망명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베를린 장벽이다.
루르공업지역은 연합국이 관리하는 곳이다. 여기에 매장량만 2200억톤에 달하는 석탄 광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유럽 최대의 중공업 지역인데 제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과 독일 주변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이곳은 독일의 국력과 군사력의 원천이었으므로 독일이 군사대국으로 다시 발생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게 되었다. 그런 차에 프랑스가 ECSC를 설립해 가입국가의 철강업과 석탄업을 통합하고 독일의 루르공업지역을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영국과 미국 중심으로 관리하는 것보다는 프랑스 같은 주변국들이 관리하는 편이 나았다. 이는 미국의 경제 지배로부터 한 발짝 빠져나온 셈이다. 한편 EU는 2002년에 공동 통화인 유로를 도입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 유로를 미국의 달러 대신 기축통화로 삼으려는 야심이 있었다. 달러는 닉슨쇼크 이래 금과의 교환이 중지되어 있으나 여전히 세계의 기축통화로 통용했다. 미국은 무역 적자와 재정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대외 부채 국가이기도 하다. 적자 대국의 통화를 국제무역의 결제 수단으로 쓴다면 통화 가치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도 있었다. 한편 EU와 유로에는 커다란 약점이 있었다. 그증 영국이 어정쩡한 태도로 가입했다는 것이다. EU의 유로가 탄생하여도 영국은 파운드를 썼다. 그리고 2016년 영국은 EU에서 탈퇴하여 EU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또 하나 약점은 EU내에서의 국가간 격차가 크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실로 나온 것이 그리스 위기다. 그리스는 EU에 가입하여 유로를 도입하고 국제적인 신용을 얻어 과도하게 국채를 발행하다가 국가가 파탄 직전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EU는 그리스 위기를 대처하는데 실패했고 국제통화기금에 도움을 요청했다. IMF는 미국이 주도한 통화체제로 유로가 아직 기축통화로 가기에 멀었다는 반증이다. 이로 인해 유로 점유율은 하락했고 2016년에는 20%였고 미국 달러 비율은 64%로 회복되었다
인도의 터번과 수염은 무엇을 상징하나 ?
인도에서 하얀 상하의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남자들을 볼 수 있다. 그 특이한 외양은 인도인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긴 수염과 터번은 남성 시크교도들의 상징일 뿐이다. 시크교는 15세기 초 인도 북서부 펀자브 지방에서 창시되었으며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대립을 해소하고 두 종교의 사상을 융합한 종교이다 또한 시크교는 개혁적 성격을 띠고 있어 이슬람의 여성 차별과 힌두교의 계급 제도인 카스트를 철저히 배격했다 시크교는 철저한 평화주의에 기반한 종교였다. 하지만 이슬람교의 박해와 탄압이 심해지자 지도자 고빈드 싱은 순수라는 뜻의 군사조직인 칼사를 결성하여 교단의 전투성을 강조했다. 펀자브 지방에서 군사력을 키운 시크교도들은 영국 식민 통치 하에서 영국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많은 교도가 처형당했다. 17세기 말 고빈드 싱에 의해 오늘날 시크교도의 독특한 옷차람이 제도화되었다. 먼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체는 그대로 보존해야 했고 머리와 수염은 깎아서는 안 되었다. 머리가 주체할 수 없이 길어지자 이를 둥글게 묶어 고정시키기 위해 터번이 생겨났다. 터번은 시크교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기 떄문에 남성들은 터번을 꼭 써야 했다.
아울러 조직의 단결심을 의미하는 팔찌와 진리 수호를 위한 단검, 무릎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짧은 바지, 그리고 긴 머리와 이를 땋는 데 필요한 나무 빗, 이렇게 다섯가지가 시크교도의 상징이었다. 시크교에서는 술 담배를 금했고. 시크교도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상인이나 군인이었는데 특히 해외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시크교도가 많았다. 해외 무역에 나섰던 시크교도들의 독특한 모습이 여러나라에 전해지면서 이들이 오늘날 인도인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각인된 것이다. 최근 시크교도 가운데 젊은 세대는 머리를 자르고 터번을 벗기고 하여 시크교 공동체 지도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공항 보안이 대폭 강화되면서 시크교도의 터번을 벗겨 조사한 일이 있었다. 시크교도가 미국에 입국하면서 테러용 무기를 터번 속에 감추어 들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시크교도들은 크게 반발했으며, 유대인과의 차별로 더욱 분개했다. 유대인의 전통 모자인 야르물케는 보안 검색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편 시크교의 총본산 인도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은 인도 북부 펀자브주 최대의 도시인 암르차르에 있고 시크교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순례지이다. 저수지 중앙에 세워진 사원의 지붕이 금박으로 덮여 있다
넙치(광어) / 농어 / 멸치
< 넙치(광어) >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는 사이에 넙치는 맛이 가장 좋아진다. 살이 희고 부드럽고 회나 튀김용으로 애용하는 생선이 넙치이다. 넙치는 광어라고도 하는데 몸의 길이가 30㎝ 가량이고 위 아래로 넓적한 긴 타원형으로 두 눈은 몸의 왼쪽에 있고 입이 크다. 넙치눈이란 두 눈동자를 한군데로 잘 모으는 사람이나 눈을 잘 흘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몸빛이 오른쪽은 암갈색, 왼쪽은 백색, 꼬리자루와 지느러미는 등황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눈 있는 쪽을 위로 하고 근해에서 모래 바닥에 옆으로 눕기를 잘 하는데 겨울철에는 심해에서 산다 눈이 달린 갈색 부분은 수분, 무기질, 수용성 물질이 많고 지방이 적다.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은 염기성 아미노산이고 어린이 발육에 필요한 라이신이 많다. 비타민 A 함량은 눈이 있는 쪽에 더 많다. 머리부분에는 살이 적지만 영양가가 높고 아가미쪽의 살이 단단해서 씹는 맛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넙치어채란 넙치를 토막쳐서 녹말을 묻혀 끓는 물에 데친 음식이다. 넙치는 비린내가 적어 국을 끓여도 별미이다. 넙치를 토막쳐서 장국이나 아욱을 넣은 토장을 끓인다. 당뇨병 환자나 간장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식품이다. 가자미는 넙치보다 맛이 떨어진다
< 농어 >
봄조기 가을갈치 겨울동태라는 말이 있다. 농어는 우리나라에 가장 많고 흔한 물고기 중의 하나인데 맛이 좋다. 몸길이는 70㎝ 내외 가량으로 길며 아래턱이 위턱보다 더 튀어나온 것이 특색이다. 몸빛은 등쪽이 검푸르고 배쪽은 은백색을 띤다. 입이 크며 위턱에 단단한 뼈가 있고 온몸에 작은 비늘이 많다. 육지에 가까운 얕은 바다에서 주로 산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연안에 분포한다. 위와 장을 편하게 하고 근육과 골격을 튼튼하게 해주므로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가을과 겨울에 기수(민물과 바닷물의 혼합에 의하여 소금양이 적은 물)의 하구부에서 산란하며 어릴 때는 담수에서 살다가 첫 겨울에 바다로 나간다. 생선치고는 단백질이 많고 열량도 높다. 농어회도 좋지만 여름철 선도가 떨어진다. 장염브비리오균에 오염된 것을 먹으면 심한 설사를 수반하는 식중독을 일으키기 쉽다. 다른 균보다 번식이 빨라 10분이면 배로 늘어난다. 이 균이 열에 약하고 민물에서 속히 사멸한다. 7월이 되면 인천 앞바다 영흥도는 농어낚시의 명소로 유명한데 낚시에 걸렸을 때의 날쌔고 저력있는 당김으로 인기가 높다
< 멸치 >
뼈째로 먹을 수 있는 물고기의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히는 식품이다. 멸치는 단백질과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해서 임산부나 발육기의 어린이에게 권장하는 식품이다. 생선 멸치는 등쪽이 암청색이고 배쪽은 은백색인데 체측에 은백색의 가로줄이 있다. 멸치를 우려낸 국물이 감칠맛이 있어 국수 등에 활용되는데 멸치에는 아미노산으로 글루타민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멸치는 생선 멸치를 조림이나 소금구이 등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마른 멸치로 이용하고 생선 멸치는 젓으로 담가 김치의 조미료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마른 멸치는 굵은 것, 중간 것, 잔 것, 아주 희고 고운 멸치 등이 있다 굵은 것은 주로 국 국물이나 장국물로 우려 먹는데 쓰이고 잔 것과 중간 것은 조림으로 쓰인다. 멸치 국물의 감칠맛은 여러 가지 아미노산의 맛 때문인데 특히 글루타민산의 함량이 많다. 어패류 중에서 칼슘의 함량이 가장 많은데 인의 함량도 많아 소화 흡수율은 그다지 좋지 않다. 회분은 무기질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골격과 치아 형성에 필요한 것이고 세포 조직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멸치는 묽은 소금물에 삶아야 단단하고 윤기가 난다. 민물에 삶으면 윤기가 없고 살이 연해져서 잘 부서지게 된다. 멸치의 지방은 불포화도가 지나치게 많아 영양적으로 질이 떨어지는데 삶게 되면 그 기름이 빠진다. 멸치젓 봄에 담글 때 소금에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위에 소금을 뿌리고 짚을 돌돌 말아 소금이 보이지 않게 덮는다. 멸치의 품질은 재료의 선도와 기름의 함량으로 크게 좌우된다. 멸치는 뽀얀 빛이 나는 것이 질이 좋고 붉고 검은 빛이 나는 것은 기름이 산화된 것이다
'아들을 위한 인문학 >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빚더미 국가 미국 vs 떠오르는 경제 대국 중국 (1) 2025.10.14 라틴아메리카 시장경제의 기수인 칠레에 대해서 (2) 2025.08.26 경제학이라기 보다 사회학적 접근에 가까운 2005년 괴짜 경제학에 대해 (4) 2025.08.05 이라크, 가장 뜨거운 돈의 전쟁터가 되다 (2) 2025.06.19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0)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