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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도시에서 중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역대의 수도 베이징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5. 4. 1. 03:00
연나라(연경) 수나라 경항대운하 (북쪽 기점인 베이징) 기원전 1100년경 중국대륙에서는 주나라가 세력을 형성했고, 왕에 의해 제후로 봉해진 군주들이 각자의 영지에 나라를 세웠다. 그 가운데 현재의 베이징시 팡산지구에서는 계나라가 세워졌다. 계는 엉성퀴를 뜻하며 엉성퀴꽃이 흐드러지게 많이 피었던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제후들끼리 패권을 다투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게 되면서 화북일대에서는 연나라가 계나라를 무너뜨리고 그 영내로 도읍을 옮겼다. 그 후 연나라는 전국 7웅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성장했다. 연나라가 도읍을 옮긴 까닭은 연성이 평야와 산지가 맞닿은 교통의 요충지인 데다 수원이 확보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현재에도 계성, 연성, 연경이라고 불린다. 연나라는 기원전 222년에 전국 7웅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진나라에 멸망하고 이후 연성은 지방도시로 전락했다. 진나라 수도 시안에서 베이징 지역은 변경이다. 하지만 농작물의 생산력이 높고 북방 이민족에 대한 방어거점과 교역의 요충지로 적합했다. 이런 이점으로 베이징은 한왕조 이후에는 화북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나라 2대 황제인 양제는 610년에 황허강과 양쯔강을 남북으로 잇는 경항대운하를 건설했는데 그 북쪽의 기점이 바로 현재의 베이징이다
베이징은 동북부에 지우쳐 있고 만리장성까지 차로 한시간 거리다. 경제도시 상하이나 홍콩보다 몽골쪽이 더 가깝다. 중국에서는 수도를 나타낼 때 경자를 붙인다. 그러므로 베이징은 한자 그대로 북쪽 수도를 의미한다. 당나라 시대까지 주로 장안이나 낙양 등 황허강의 중류지역이 역대 왕조의 중심지였다. 왕조들은 보통 수도를 중심으로 그에 준하는 주요 도시를 동서남북에 지정했다. 그리고 이를 각각 동경, 서경, 남경, 북경이라고 불렀다. 역사적으로 지방도시에 불과했던 연경을 수도로 삼은 나라는 북방에서 침입해온 이민족이었다. 10세기경 북방에서 세력을 떨친 거란족이 남하하여 연경을 남쪽 수도로 삼고 남경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금나라도 남경으로 천도하고 중도로 개칭했다. 1215년 몽골군의 침공으로 중도가 함락되었고 이어 몽골제국의 5대 황제 쿠빌라이는 1267년 수도를 중도로 옮기고 이름을 대도라 정했다.
많은 몽골인에게 대도(베이징)는 처음으로 보는 대도시였다. 유목과 수렵을 생업으로 이동하며 살아온 유목민에게는 도시에서 정주한다는 개념이 없어서 처음에는 점령한 도시를 파괴하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거란족의 후손인 야율초재가 쿠빌라이의 재상이 되어 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그의 주장대로 세수가 확보되면서 대도시의 중요성이 인정받게 되었다. 몽골고원, 만주, 중국대륙과 같이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게 된 원나라에게 몽골과 중국의 중간지점인 대도는 여러모로 수도로 적합한 도시였다. 원나라는 수도를 정비하는데 문화적으로 더 발전했던 역대 중국왕조의 건축방식을 도입했고 대도는 바깥둘레가 약 28km에 달하는 성벽으로 에워싸인 거대도시로 변모했다. 장안 등 역대 왕조의 수도와 마찬가지로 도심을 좌우대칭의 바둑판과 같은 구획으로 나누고 옥좌를 하늘의 중심인 북극성에 비유하는 식의 배치는 유교경전의 주례를 바탕으로 했다. 또 적수담에 운하를 만들어 성내로 물을 끌어들여 식수로 이용하고 수로를 통한 물자 수송을 용이하게 했다. 도성내에는 불교와 도교 사원 외에 그리스도교 교회와 이슬람 모스크도 건설했다. 이는 중상주의를 표방한 원나라의 수도에 이슬람이나 유럽 상인 등을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대도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자금성 14세기에 들어서자 원나라 각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홍건적의 난에서 두각을 드러낸 주원장은 양쯔강 이남을 제압하고 난징를 수도로 삼아 1368년에 명나라를 건국했다. 주원장은 황제(홍무제)로 즉위하여 북벌을 개시했고 원나라는 수도 대도를 버리고 몽골고원으로 달아났다. 명나라는 이민족 지배에 대한 반발로 원나라 통치의 상징인 대도의 궁전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화북일대를 다스리는 연왕으로 봉해진 홍무제의 넷째 아들 주체는 대도에서 이름을 바꾼 북평을 본거지로 삼아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방어했다. 그러나 홍무제의 사후에 즉위한 2대 황제 건문제가 황족을 숙청하자 주체는 간신을 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를 일으켰다. 주체는 황제군을 무찌르고 난징을 점령한 뒤 건문제를 폐위시켰다. 그후 주체는 명의 3대 황제(영락제)로 즉위하고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인 북평으로 옮겨 북경 즉 베이징으로 개칭했다. 영락제는 몽골과 티베트 지역으로까지 원정에 나서며 명나라의 최대판도를 구축하는 동시에 베이징에 자금성을 건설했다. 비로소 한족이 세운 통일왕조의 수도 베이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자금성 현 베이징시의 중심부는 영락제 시대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성의 중심에 황제가 거주하는 자금성이 있고, 황족의 주거지인 황성이 그 주위를 에워싸듯이 배치되어 있다. 황제는 북쪽에 있는 옥좌에 앉아 남쪽을 향해 정무를 보았고 그 북측에 정산이라는 인공산을 쌓아 자신의 배후를 보호하게 했다. 이 배치는 풍수사상을 토대로 한 것이다. 베이징 주변에는 다진 흙과 벽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1436년에 보수를 하여 네 모퉁이와 아홉 개의 문에 누각을 만들었다. 또 그 유명한 천안문을 황성의 입구에 세우고 법령을 공포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이 무렵 베이징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내성이 포화상태가 되자 사람들은 성 바깥으로 거주영역을 넓혔다. 그래서 영락제는 1553년부터 11년간 내성 밖을 둘러싸는 외성을 만들었다. 이후 베이징의 중심부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외성 위에 작은 사각형 모양의 내성을 얹은 듯한 형태가 되었다. 사실 당초 계획은 내성의 주위를 모두 외성으로 둘러싸는 형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남쪽에만 공사를 하는데 그쳤다. 후에 내성은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외성은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중의 도시체계에 따라 베이징은 번성했다. 내성에서는 많은 외국 사절들이 황제를 알현했고, 식당, 술집, 여관, 사원 등이 들어선 외성의 번화한 거리에는 각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북적였다.
17세기에는 명나라 지배하에 있었던 만주의 여진족이 독립하여 후금을 세웠다. 쇠약해진 명나라는 이자성의 난에 의해 멸망한다. 후금은 이자성을 진압한 후 베이징에 입성했고 1636년에 국명을 청으로 바꾸었다. 청나라는 중국뿐 아니라 몽골, 위구르, 티베트, 한반도까지 세력이 미치는 대제국이 되어 약 300년 동안 왕조를 유지했다. 청나라는 한족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베이징을 그대로 수도로 삼고 자금성도 그대로 사용했다.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에 의해 청왕조는 멸망하고 중화민국은 처음에 난징을 수도로 삼았다. 중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공산당이 승리했고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하면서 베이징은 다시 수도가 되었다.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이 국민당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같은 사회주의를 내건 소련이나 몽골과 가깝기 때문이라는 설도 떠돌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후에는 옛 성벽의 대부분이 헐리고 도로가 들어섰다. 또 내성의 성벽 아래를 빙 돌 듯이 순환하는 지하철이 부설되었다. 자금성은 고궁박물관이 되었고 천안문 앞의 건물은 헐려 천안문광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광장의 서쪽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동쪽에는 중국국가박물관이 세워졌다. 그 후 베이징의 영역은 더 확대되어 옛 도성을 중심으로 약 1.7㎢나 되는 엄청난 면적을 자랑하는 특별직할시가 되었다
뚱딴지 / 번데기 / 부레 / 상어지느러미
< 뚱딴지 >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뚱딴지라고 부르고 엉뚱한 것을 비유할 때 뚱딴지 같다고 한다. 엉거시과에 속하는 다년초가 뚱딴지인데 돼지감자나 뚝감자라고도 부른다. 지하경은 땅속에 감자모양의 괴경을 이루어 번식한다. 줄기는 높이 2m 내외이고 잔털이 나고 잎은 달걀모양의 긴 타원형이다. 여름에 노랑꽃이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핀다. 모양이 좋아 관상용으로 심어지기도 한다. 북미가 원산이고 인가 부근에 재배하거나 자생하는데 괴경을 돼지 먹이로 해왔기 때문에 돼지 감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뚱딴지의 알뿌리를 이렇게 동물의 사료로 하거나 사람들이 먹어왔다. 프랑스 요리에선 쩌서 먹기도 하며 나라에 따라서는 소금에 절이거나 된장에 박아서 먹기도 한다. 뚱딴지는 생활력이 강해서 능토가 아닌데도 자라므로 앞으로 유망한 작물의 하나가 될 것이다. 뚱딴지에는 여러 가지 효소가 들어있는데 특히 이눌린을 분해하는 이눌라제가 많아 저장하는 사이에 과당이 많아져 단맛이 세진다
< 번데기 >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누에 고치에서 실을 뽑고 난 번데기이다. 번데기란 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류의 유충이 성충으로 옮아가는 도중에 한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고치 속에 가만히 들어있는 몸을 말한다. 번데기는 고단백질로 절반 이상이나 되고 필수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번데기의 지방분을 구성하는 지방산은 75%가 소화 흡수되기 쉬운 올레산과 리놀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포화지방산은 영양가가 높고 우리 몸에 흡수되어 군더더기 살이 되지 않는 좋은 성분이다. 이 지방분에는 불순물인 인지질 등이 있어 악취가 나기 쉽다. 지방분을 정제하게 되면 훌륭한 샐러드유가 되는 것이다. 인지질 성분인 레시틴이 풍부해서 발육기의 어린이들의 뇌조직과 신경 구성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 부레 >
생선요리를 하는 경우 흔히 내장은 버리게 된다. 더구나 뱃속에 있는 공기주머니인 부레는 먹는 것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얇은 가죽 모양으로된 물집인데 이것을 벌렸다 오무렸다해서 물고기는 자유자재로 물위에 떴다 물속에 잠겼다 한다. 중국요리의 명채라면 상어지느러미, 제비집, 곰발바닥, 해삼, 전복과 함께 부레가 있다. 부레는 기름으로 느슨하게 튀기면 스펀지처럼 부푸는데 이것을 적당히 잘라 찜요리에 넣으면 아주 별미가 난다. 피부에 탄력이 없는 사람과 빈혈인 사람에게 좋다 부레의 주성분인 교질단백질이란 젤라틴이 주성분이고 콘드로이틴이라는 성분이 또 들어있다. 이 성분들은 노화를 예방하고 피부에 탄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어의 부레 속에 쇠고기와 민어살을 넣고 찜으로 한다
< 상어지느러미 >
중국의 장수식품으로 상어지느러미와 제비집이 있다. 상어지느러미가 요리용으로 문헌에 나오기는 명나라 때부터의 일이다. 정화장군이 인도양에 나갔을 때 상어지느러미를 얻어 영락황제에게 바쳤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얻어지는 양이 적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상어지느러미는 햇볕에 말려 무미, 무색, 무취인데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 새우 등과 섞어 최고의 요리를 만든다. 상어의 종류나 등, 가슴, 꼬리 등 부위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다. 등지느러미가 가장 좋고 가슴지느러미는 하급이다. 냉동품보다는 말린 것으로 벌레먹은 것을 더 친다. 지느러미의 주성분은 단백질인데 아교질이다. 노화방지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데 제암 작용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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