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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터 금지령 때문에 불붙은 종교개혁
    아들을 위한 인문학/종교 2024. 12. 5. 03:00

    소의 젖인 우유를 발효시켜 만드는 버터는 북유럽인들한테 매우 중요한 조미료였다. 올리브유를 요리에 사용했던 따뜻한 남유럽과 달리 추운 북유럽에서는 버터가 쓰였다. 로마 교황청은 사순절에 버터를 막지 말라는 내용의 금지령을 오랫동안 유지했는데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버터 금지령을 비난하면서 로마 교황청과 결정적으로 갈라섰다. 가톨릭교회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는 금기가 하나 있었다. 서기 9세기부터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인 로마 교황청에서는 사순절 즉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기독교의 신이자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인 부활주일 이전의 40일 동안 광야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고생을 했던 예수의 고난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육류와 버터를 막지 않았다. 이 금기를 어기고 사순절에 버터를 먹으면 우상 숭배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되며 부득히하게 먹어야만 한다면 교황청에 미리 사정을 설명하고 면죄부를 발급받아야 했다. 버터는 우유로 만든 식품이니 자연히 쇠고기와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버터 역시 넓은 범주에서 보면 쇠고기라고 할 수 있으니 먹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같은 남유럽에서는 사순절의 버터 금지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전통적으로 남유럽에서는 버터를 미개한 북방 야만인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겨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올리브기름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북쪽에 살던 트라키아인을 향해 버터를 먹어서 냄새가 나는 야만인들이라고 비웃었다. 따뜻한 기후가 특징인 남유럽에서는 버터가 없어도 대용품인 올리브기름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반면 북유럽 지역에서는 추운 날씨 탓에 올리브를 기를 수가 없어서 사순절에 버터가 아니면 당장 식생활에 쓸 기름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게르만 문화의 영향으로 버터를 선호하던 북유럽 지역에서는 교황청의 포고를 선뜻 따르려 하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과 영국, 프랑스,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북부 지역에서 왕족과 귀족들은 사순절에 버터를 먹을 수 밖에 없으니 그 죄를 용서해달라며 교황에게 면죄부를 신청하고 돈을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교황청은 면죄부를 발급해 주는 대가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판매 수익이 이교도 이슬람교 세력한테 빼앗긴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으려는 십자군 전쟁을 위한 군자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특히 독일 지역은 반발이 거셌는데 게르만족 후손답게 버터를 좋아했는데 교황청은 사순절 기간에 버터를 먹는 행위를 허용하는 대가로 세금을 계속 올렸기 때문이었다. 식탁에서 버터를 먹을 때마다 교황청으로 세금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독일인들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1520년 마침내 버터 금지령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유명한 선언서인 독일의 기독교 귀족들에게 고함에서 교황청의 버터 금지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순절 이전에 버터를 먹는다고 대체 무슨 죄가 된다는 것입니까 ? 로마 교황청의 버터 금지령은 성경 어디에도 그 근거가 없는 허황된 말일 뿐이다. 버터를 먹는 것이 죄라면 올리브 기름이나 치즈를 먹는 것도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 로마 교황청은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에게 사순절까지 버터를 먹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대가로 막대한 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런 교회의 썩어빠진 현실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버터 금지령을 반대하고 나선 루터의 외침은 순식간에 북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덴마크와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은 루터의 말에 따라 가톨릭 교회와 단절하고 그가 창설한 개신교를 믿겠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와 독일북부에서는 성난 군중들이 가톨릭 교회로 몰려가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반발했다. 그 자리에 개신교 교회가 들어섰다 북유럽 지역에서는 두 번 다시 가톨릭 교회 세력이 회복되지 못했다. 천년 동안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 교회를 위협한 종교개혁을 일으킨 건 바로 버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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