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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0년 전부터 기록을 남기게 했던 파피루스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3. 9. 26. 04:09
지중해 세계에서 파피루스는 주로 이집트 북부의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원래 파피루스는 무덥고 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그 조건에 알맞은 곳이었다. 기원전 4천 년에 거슬러 올라가고 특히 글씨를 쓰는 종이를 파피루스로 만들었다 그 방법은 파피루스의 외피를 제거하고 끈적끈적한 섬유질 내부 속을 약 40센티미터 길이의 얇은 세로로 자른다. 자른 파리푸스의 가장자리가 약간 겹치도록 단단한 표면에 나란히 놓고 다른 파피루스의 잘린 조각을 직각으로 맨 위에 놓는다 이런 파피루스의 자른 조각들을 망치로 내리쳐 으깬 다음, 무거운 도구로 눌러 말린 뒤에 돌이나 조개 및 둥근 나무로 계속 문질러 파피루스 조각들이 서로 달라붙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파피루스는 건조한 기후에 놓아두면 부패에 강한 셀롤로오스 성분이 형성되어 오래 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이집트의 사막에서는 파피루스 유물들이 발굴되고 표면에 적힌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이 많다.
파피루스는 여러 품질과 가격으로 만들어졌는데 기준은 파피루스의 표면이 얼마나 매끄럽고 하얗고 단단하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래야 파피루스에 글씨를 쓰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2012년 홍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의 항구도시 와디 알자프에서 발굴되었는데 만들어진 연대는 기원전 2560년이었다. 한편 파피루스가 자라지 않는 지역에서는 현재 이라크의 수메르와 바빌론 문명에서는 진흙을 불게 구운 점토판에 글씨를 썼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밀랍을 입힌 나무판 위에 쇠로 만든 펜으로 글씨를 썼다. 그러나 파피루스가 뛰어나 그리스의 알렉산더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부터 그리스인들은 파피루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는 파피루스 두루마기로 만든 책을 50만권이나 배치한 만큼 파피루스를 필기도구로 애용했다
파피루스가 종이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개의 파피루스 줄기를 단단히 묵으며 배를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을 타고 나일강을 자유럽게 오가는 일이 가능했다. 다만 이것은 나일강의 물결이 잔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집트는 온통 사막이라 육상교통이 불편하고 철도가 개발되기 전까지 물자 수송이 강을 통한 수로로 이루어졌다 그밖에도 파피루스는 물건을 묶는 밧줄, 신고 다니는 샌들, 바구니, 집의 지붕과 천장과 울타리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여기에 어린 순과 가지는 음식으로 먹었다. 이렇게 파피루스가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 보니 이 파피루스를 파는 상인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 서기 273년 거상 피르무스는 파피루스 판매로 벌인 돈으로 자기 집에 정사각형에 유리 패널을 설치하고 거대한 도서관을 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병을 거르리고 이집트 황제인 아우렐리아누스에 반란하여 패하여 죽음을 당했다. 그만큼 파피루스로 벌어들인 재산의 규모와 파피루스라는 작물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파피루스는 종이와는 달리 결이 부드럽지 않고 매우 뻣뻣해 접기가 어려웠으며 따라서 많은 분량의 글자를 적기에는 부족했다. 또한 습기에 노출되면 파괴되기 쉬웠고 무엇보다 완벽한 품질이 아니면 표면이 울퉁불퉁해 글씨를 제대로 쓰기도 어려웠다. 한편 건조하고 서늘한 파피루스가 자라지 않는 서유럽과 북유럽 지역에서는 파피루스 대신 양가죽을 벗기고 가공해 만든 종이인 양피지를 필기도구로 사용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보다 질기고 튼튼해서 걸핏하면 찢어지기 쉬웠던 파피루스보다 훨씬 오랫동안 두고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양피지는 글씨를 다 쓰고 나면 그것을 날카로운 금속으로 조심스럽게 문질러 없엔 다음 그 위에 다시 글씨를 쓰는 식으로 재활용할 수 있었다. 다만 양피지는 그것을 만드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양피지를 만들려면 최소한 양을 한 마리 죽여 그 가죽을 벗겨야 하는데 그런 양피지를 모은 책을 만들려면 양을 적어도 20마리 이상은 죽어야 그 정도의 가죽을 모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피지로 만든 책은 가격이 어마어마해 인쇄술이 일반화되는 16세기 이전까지 부유층 왕족이나 귀족만 소유할 수 있었다
파피루스가 정확히 언제까지 사용되고 사라졌는지는 확실히 어렵지만 751년 이슬람제국 군대의 장군인 이븐 살리흐가 중앙아시아의 탈라스전투에서 사로잡은 중국 당나라 군대의 종이 기술자들에게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으며 아랍인들이 제지소를 세우고 종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이후 파피루스가 사장되었다고 알려졌다. 이집트는 서기 800년대 무렵까지 아랍지역에서는 종이로 완전히 대체된 때는 1087년이었다. 유럽에는 서기 900년대에 들어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던 스페인에 종이가 전해졌고 그보다 늦은 1000년대 무렵에 스페인을 통해 서유럽에도 종이가 전파되었다. 다만 남유럽의 이탈리아에서는 1057년까지 로마 교황청에서 파피루스를 필기도구로 사용했는데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지역이 무덥고 습해 파피루스의 재배에 알맞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재배된 파피루스를 수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메로빙거왕조는 692년까지 파피루스를 필기도구로 쓰다가 800년대부터 파피루스의 흔적이 사라진다. 양피지를 새로운 필기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기독교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번성한 문물을 누리던 동로마 제국은 1100년까지 양피지와 종이 및 파피루스가 함께 사용되었다. 피피루스의 기록물은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종교의 내용을 적은 사자의 서, 이집트 수학을 기록한 라인드 파피루스 등이다. 종이의 영어 단어 paper는 papyrus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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