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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물의 블랙홀인 장안을 아시아의 로마로 불리우는 이유는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3. 4. 10. 03:08
로마제국은 아우구스투스 이후 오현제가 등장하면서 황금시대를 맞는다. 로마의 경제는 크게 발달했으며 유럽 전역에 신전, 경기장, 극장, 목욕탕 등을 갖춘 도시들을 생겨났다. 또한 원할한 군대 이동과 물자 수송은 효율적인 통치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이들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건설되었다. 이 도로망을 통해 멀리 중국 한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하여 전 세계 모든 산물들이 로마로 흘러들어갔다.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명나라에 시안)이 있었다. 한나라때 자손들이 영원히 번창하기를 바란다라는 염원을 담은 장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안은 진나라때부터 약 1천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다. 중국 최초의 계획 도시로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장안은 당나라때 동서 길이 9,721m, 남북길이 8,651 약 100만명이 거주하던 도시로서 당시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과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와 비견할 만한 국제도시였다.
당나라때는 율령격식이 편찬되는 등 법과 제도가 효율적으로 정비됨으로써 사회,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고대부터 전승되어 온 중국문화도 집대성되었다. 또한 전례없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경제가 발전했다. 7-10세기 세계의 모든 길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향했다. 동서문명이 함께 어울린 세계의 중심지였던 장안으로 아랍, 페르시아, 인도, 돌궐, 신라, 일본 등에서 온 유학생과 유학승, 상인 등 수많은 외국인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당나라는 한나라 이후 혼란스러운 역사를 거치며 외국의 이질적인 이민족 문화를 수용하고 융합하는 개방적이고도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다. 이것이 바로 로마를 능가할 정도의 번영과 세계화를 이룬 비결이었다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사상을 중화사상이라 한다.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중국인들은 당나라의 비단길을 통해 당시 서방인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모든 문물에 오랑캐를 의미하는 호자를 붙였다. 호두, 호산(마늘) 호초(후추) 호과(오이) 호적(페르시아 피리) 그리고 호떡, 호빵, 호밀, 호박으로 서양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명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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