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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마술사로 불가능을 공연하는 환술사는 어떤 공연을 하였는지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5. 3. 03:20

    주머니를 열고는 더듬어 보게 했으므로 손을 넣어 더듬었다. 그랬더니 동전 다섯 닢만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맨손으로 그 주머니를 열고 움켜 낸 동전이 쉰 닢에 가까웠다. 그 돈을 다시 거두어 주머니에 넣게 한 뒤 사람을 시켜 다시 더듬게 했더니 또 다섯 닢만 있었다 - 영조실록(1763) - 12세기 일본에서 출간된 신서고약도는 당나라 시절 유행한 공연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 신라 공연도 나온다. 항아리에 들어가 춤을 추는 입호무다. 탁자 두 개, 항아리도 두 개지만 무희는 한명이다. 무희는 이쪽 탁자에 놓인 항아리로 들어가 저쪽 탁자에 놓인 항아리로 나온다. 신라 입호무는 요즘 마술사가 선뵈는 공간 이동 마술의 원조다

     

    조선에서는 마술을 환술, 마술 공연을 환희, 마술사를 환술사라 일컬었다. 환술사는 여러 장치와 숙달된 손놀림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눈앞에 선보여 관중을 현혹하고 놀라게 했다. 환희는 진귀한 공연이었으나 남을 속이고 놀래는 좋지 않은 재주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유학자는 환희를 멀리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 신라, 고려를 거치며 꽃핀 환술은 조선에 이르러 쇠퇴했다. 홍문학 부제학 이맹현은 성종이 중국 사신을 따라온 환술사의 환희를 즐기자 보지 말 것을 청했다. 허균의 형 허봉은 연행을 가서 중국의 환술 공연을 보고 부정적 인상을 받았다. 오늘 잡희를 벌인 사람은 패옥을 꺼내기도 하고 빈 그릇 가득 꽃을 피우기도 했으니 이를 필시 환술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현혹되어 그 속임수를 간파하지 못했으니 불교의 거짓을 간파한 당나라 사람 부혁에게 부끄럽다.

     

    16세기 실존 인물 전우치도 유명한 환술사였다. 조선 후기 문인 홍만종은 전우치를 우리나라 도맥을 잇는 도사로 꼽아 해동이적에 실었지만 다른 문인들은 그를 환술사로 여겼다. 어유야담을 남긴 유몽인은 전우치를 진짜 도사에 미치지 못하는 환술사로 기록했다. 전우치는 다양한 환술을 구사했다. 아무런 도구없이 밧줄을 세워 하늘나라 복숭아를 따 왔고 밥알을 불어 많은 나비를 만들어 날렸다. 밧줄을 타고 올라간 아이가 땅에 떨어지자 사지를 다시 맞춰 걷게 하는 환술도 선보였다. 전우치가 보여준 환술은 요즘 마술사가 부채로 부쳐 손바닥에서 작은 종이를 무수히 날리는 마술, 사람들 자르고 다시 붙이는 인체 절단 마술과 비슷하다

     

    부정적 통념 때문에 많은 환술사가 음지로 숨어들었다. 음지에 들어간 환술사는 환술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문인 서유영의 금계필담에 나오는 환술사는 거지꼴을 하고 다녔으나 환술을 써서 진탕 먹고 마셨다. 그는 기방에 들어가 소매에서 돈을 줄줄이 꺼냈다. 돈을 본 기녀가 술상을 잘 차려내오자 거지 환술사는 신나게 먹고 마셨다. 먹을 만큼 먹은 거지 환술사는 최면술로 기생을 움짝달짝 못하게 만든 뒤 유유히 떠났다. 입이나 소매에서 물건을 계속 꺼내거나 최면술을 이용한 마술은 요즘도 볼 수 있다. 거지 환술사 입장에서 본다면 환희를 보여 주고 그 값으로 술을 뺏어 먹는 셈이었다

     

    환술은 공연으로 정착하며 남사당패 공연의 한 꼭지로 자리매김했다. 남사당패 공연에서 각 연희의 선임자를 뜬쇠라 부르는데 열네명 내외의 뜬쇠 가운데 얼른쇠가 있다. 얼른쇠가바로 환술사다. 얼른쇠 공연은 일실되어 전모는 알 수 없다. 우리말 가운데 얼른번쩍은 빠르게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일컫는다. 얼른쇠는 아마도 물건을 순간적으로 보였다 없앴다하는 환술을 선보였을 법하다. 전문 예능 집단의 선임 환술사였으니 얼른쇠는 금계필담의 거지 환술사와 어유야담의 전우치가 선보인 환술 역시 어렵지 않게 부렸을 것이다

     

    불가능할 듯한 일을 눈앞에 보이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환술사와 차력사는 닮은꼴이었다. 차력사 역시 환술사처럼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볼거리로 밥벌이를 했다. 조수삼의 추재집에 나오는 돌깨는 사람도 그중 하나다. 돌 깨는 사람은 석공이 아니라 차력사다. 그는 구경꾼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가 웬만큼 모였다 싶으면 팔뚝 굵기의 차돌을 깼다. 단단한 차돌을 맨손으로 깨는데 단 한번도 실패가 없었다. 의심 많은 사람이 도끼로 내리쳐 보았지만 차돌은 멀쩡했다. 구경꾼은 이 차력사를 신선술을 익히는 사람이라고 수군거렸다. 환술사와 차력사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놀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었다. 조선은 예의와 범절을 중시하는 엄숙한 나라였지만 엄숙한 조선의 백성은 환술사와 차력사 덕분에 왁자지껄 놀라서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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