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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들이 이제 다시 시작을 외치는 도시 논산을 가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2. 4. 30. 03:46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은 특별한 감흥을 느끼게 하는 논산시이다. 논산훈련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부모님이나 여자친구와 헤어지던 순간의 울적함 그리고 친구들이 불러주던 이등병의 편지의 노랫가락, 가족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돌변하던 조교의 공포스러운 눈동자로 잊기 힘든 추억을 선사하는 곳이다.
강경은 논산시에 속한 읍이다. 강경은 조선후기의 3대 시장이라고 하면 평양과 대구 그리고 강경을 꼽는다. 조선 2대 포구로도 원산과 함께 강경을 들곤한다. 강경은 젓갈로 유명한데 명란젓, 새우젓,낙지젓,갈치속젓,아가미젓,청란알젓 등이다. 배 모양의 강경젓갈전시관이 바다가 아닌 육지을 향하고 있다. 황해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바닷물이 밀물이면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배는 밀물을 따라 내륙으로 쉽게 올라올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금강의 바닷물이 부여 규암면까지 올라갔고 지금은 세종시 부강면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조선후기 가장 큰 포구가 강경포구로 금강 물줄기가 남동방향으로 흐르다 남서 방향으로 급격히 방향을 바꾸는 곳이다. 더군다가 논산천과 강경천이 합류하는 곳이기도 하다.
교통의 요지가 된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고 시장이 형성되고 바다와 강에서 들어오는 수산물과 호남평야의 곡물들이 이곳에 모이는 것으로 쌀 400석을 실은 큰배들이 오갔다. 수산물을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염장법으로 인해 젓갈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다.전시장을 지나 강을 따라 올라가보면 서창교가 있고 앞에 강경갑문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생긴 것으로 전국에 인천과 이곳 둘뿐으로 수위 차이가 있을 때 갑문을 통해 배가 들어올 수 있다 이곳이 조차가 민감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갑문옆에 옥녀봉에 오르는 계단이 있어 강경은 물론 금강과 논산천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봉수대도 있고 톡 튀어나온 것이 신기하여 해면에 있는 섬 같다고 해서 도상구릉이라고 한다. 화강암의 차별침식 때문에 생긴 것이다. 여기에는 해조문이라고 조차를 설명하는 암각문이다. 조석의 발생원인,물높이가 기록된 최초의 설명문이다
옥녀봉에는 일제강점기때 강경신사가 있었고 중국인도 많이 드나들어 다양한 외국문물이 들어왔고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처로 기독교의 성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경은 군산처럼 작은 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있는데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보이고 광복 이후 한 때 젓갈 저장창고로 쓰이고 지금은 강경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강경노합조합 건물이 있는데 충청지역 최초의 노동조합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상권을 잃지 않으려고 봇짐장수부터 거상, 자본가들이 모여 단결하던 항일운동의 본거지 역할을 하였다.
본정통 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중심지, 번화가를 의미하였고 그 거리 중간에 남일당 한약방이 있다. 1920년대 이곳이 호황이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한옥 같지만 일본식 건축양식이 많이 가미된 건물로 귀중한 근대 건축물이다. 강경 사람들의 자랑인 강경상고도 강상이라고도 부르고 학교 정문을 들어가 보면 교장관사가 있는데 일본식 건물로 급한 경사의 지붕, 미로 같은 복도, 개인 주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포치(지붕)가 특징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강경이 시로 발전하지 못하고 읍으로 전락한 것은 수운교통이 철도나 도로로 이어지는 내륙교통으로 변했다. 사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할 때는 강경이 쇠퇴하지는 않았는데 군산과 강경을 통해 세종시 부강에 공급되던 수산물이 인천과 부산에서 가져오게 되었다. 공주와 청주도 강경의 상권에서 분리되었다. 이제 그곳에서 굳이 배를 타고 강경에 올라올 이유가 없어졌다. 거기다가 1911년 공주-논산-전주-목표를 잇는 도로가 강경을 빗겨나서 몇 년후에 호남선이 개통하면서 수운교통의 역할이 대폭 줄어들었다. 화물이든 사람이든 이젠 철도를 통해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대전과 조치원이 흥하게 되고 논산 내에서도 기차가 지나던 놀뫼라고 불린 지역(논산시)이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으로 공공기관이 몰려 있던 가역이 집중 포격을 당하게 되었고 1990년도 완공된 금강하굿둑 건설로 금강을 통해 배가 들어오는 게 완전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중심지가 내륙교통이 좋은 곳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논산훈련소는 한국전쟁 당시 이곳 논산에 제 2 육군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당시에는 육군훈련소가 7개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유일하게 남아서 이름도 육군훈련소가 되었다. 이곳은 연무읍이 된 것은 연무대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입소일이 월요일과 목요일이라 그날만 북적인다. 연무읍에는 안녕고개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예전에는 구자곡이라고 하여 9개도의 젊은이들이 모였던 곳이라고 하여 지어졌다. 연무대 입구에는 탱크 모형도 있고 탑도 있다. 연무대역도 있지만 일반 시민이 이용하는 곳은 아니고 교육을 마친 군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질 때 이용하는 역이다.
계백장군이 결사항전을 펼쳐 신라와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한 황산벌이 바로 논산이다. 정확히는 논산 탑정저수지 동쪽이다. 백제와 신라, 황산벌에서 맞선 계백과 관창, 그들의 혼이 서린 이곳에서 그들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나라를 지키라고 육군훈련소가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다. 논산은 젊은이들에게 이제 다시 시작하는 곳으로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의 중심지이자 젓갈 관광의 중심지로 다시 시작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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