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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는 723년 인도의 어디에 갔고 무슨 내용이 있나
    아들을 위한 인문학/종교 2022. 4. 21. 02:54

    1908년 프랑스 동양학자 펠리오는 중국 감숙성 둔황의 한 석굴에서 1200년간 잠들어 있던 <왕오천축국전>을 극적으로 발견했다.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은 당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지방으로 가는 첫 길목에 위치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따라서 둔황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의 불상 및 유물들이 무수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펠리오는 둔황 석굴에 잠자고 있던 고문헌들을 발굴하여 파리로 가져갔는데, 그중에 헤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첫머리와 끝이 떨어져 나가고 없어 책명과 저자명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식한 펠리오는 이것이 1200여년 동안 완전한 망각 속에 파묻혀 있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임을 밝혀냈다.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삼국의 승려들은 구법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통일신라 시기에 들어와서는 많은 신라인들이 당나라로 들어갔다. 이 시기 신라인들은 무릇 길이 멀다해서 못 가는 곳이 없었고 또한 못 갈 나라도 없었다.혜초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구법여행차 당나라로 건너갔다. 건너간 시기는 불분명하며, 다만 아주 어릴 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당나라에서의 수행에 만족치 않고 불교의 본고장인 천축국 즉 인도로 여행에 올랐다

     

    혜초가 인도에 가게 된 계기는 중국에서 금강지라는 인도승을 스승으로 모시면서부터다. 혜초는 스승이 건너온 바닷길을 거꾸로 거슬러 수마트라, 인도양의 니코바르 군도를 거쳐 인도 동해안에 도착했다. 이 시기는 그의 나이 30세 전인 서기 723년경이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에 보이는 혜초의 여행기는 중부 인도의 갠지스강 유역의 마가다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나라는 고대 인도 16대국의 하나로 불교가 가장 성했던 곳이었고, 특히 석가모니가 가장 많이 설법한 지방이었다. 그러나 7세기 이후 마가다 왕국이 쇠망해버려 불교 역시 쇠퇴했다. 혜초는 불교가 쇠퇴한 이후의 마가다 왕국을 찾은 것이다. 따라서 깊은 실망감을 안고 마가다국 서북쪽으로 1개월간 걸어 석가모니가 열반한 곳인 쿠시나가라를 찾아갔다. 쿠시나가라로부터 또다시 혜초는 남쪽 불교성지 바라나시로 갔다.

     

    혜초는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지역인 부다가야를 찾아갔다. 그리고 갠지스강 서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천축의 수도 카나우지로 향했다. 혜초는 어디서 오천국, 즉 인도 전역의 기후와 풍속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혜초가 바라본 인도는 모두 다 언어와 법속이 비슷하고 기후가 무척 더운 나라였다. 또한 감옥이 없고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는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였다. 인도문화에 감명을 받은 혜초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현재 데칸 고원이 있는 남천축에 이른다. 천신만고 끝에 남천축에 당도한 혜초는 폐허가 되 사원을 보고 못내 아쉬워했다. 혜초는 남천축을 돌아보고서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랍군이 크게 침범해오고 있었다. 이슬람교에 의해 통일된 아랍족이 7세기 중엽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로 밀고 들어왔다. 할 수 없이 혜초는 서천축에서 북천축으로 향했다. 이어 인더스강에서 자신보다 먼저 인도에 왔으나 생명을 잃고 만 신라 구법승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에 젖었다

     

    왕오천축국전

    혜초는 카슈미르 지방을 거쳐 간다라 지방을 갔다. 그는 간다라 지방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우디아나, 치티랄을 거쳐 서부 투르케스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토하라를 거쳐 사마르칸트 지방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서 그는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 교가 행해지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풍습을 보았으며 어머니나 누이를 아내로 삼는 풍습을 보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파미르를 넘어 동부 투르케스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두달을 걸어 도착한 곳이 당의 서쪽 경계인 쿠자였다. 헤초는 인도여행을 떠난 지 5년 후인 72711월초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아시아 대륙의 온갖 지역과 지식을 담고 돌아온 혜초의 여행기는 아쉽게도 여기서 끝났다. 혜초가 인도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30세 무렵이었는데 이후 50년간 당에서 살면서 끝내 신라로 돌아가지 않았다. 혜초는 수년동안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 있다가 780년에 오대산으로 들어가 금강지와 불공으로 이어지는 중국 밀교의 정통을 계승했다. 이후 혜초에 대해서는 알려진 기록이 없다. 단지 왕오천축국전의 발견으로 잊혀질 뻔했던 위대한 승려 혜초의 국제적인 활동을 약각이나마 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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