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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3. 22. 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3. 22. 03:29
오늘 마태오 복음의 주제는 용서이다. 용서는 마태오 복음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에수님꼐서는 이미 산상 설교에서 용서에 대하여 가리치셨다. 베드로는 죄 지은 형제를 몇 번 용서해야 하는지 묻지만, 그의 질문에 예순님꼐서는 용서의 횟수는 제한할 수 없다고 답하신다
이어서 예수님꼐서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통하여 무제한적 용서에 관한 가르침을 재확인하신다 제자들이 무제한적으로 용서해야 하는 까닭은 작은 이 하나도 잃지 않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용서에 대하여 한계를 모르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용서로써 공동체와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지은 형제를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 그들도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들아,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 종의 비유를 들어 용서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하시는구나. 너희들은 주님의 제자로 과연 얼마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는 무제한 죄를 용서하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선 여기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죄라는 거기 과연 무엇일까이다. 그 당시는 살인, 절도, 간음, 사기 등을 가리키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면서 그런 큰 죄보다는 사소한 감정적인 대립내지 의견충돌 그리고 성격상 차이 등이 가벼운 죄로 인한 상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주로 대부분은 서로간의 편안함 내지 감정적 우월성 등을 대립하면서 싸워서 상처를 받은 경우이다. 이에 대해 서로간의 상처로써 대부분 나도 그에게 죄를 짓고 상대도 나에게 죄를 짓는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현대에서는 죄라는 것이 쌍방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상처 내지 죄에 대해서 나도 일조한 점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상대가 편하려고 아니 내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에게 상처를 받았으니 상대방의 죄를 용서하기 보다는 그도 나름 인간 본능적으로 추구하다가 서로 대립하여 싸우게 되었다고 너그럽게 이해하며 상처가 깊으면 이해의 시간을 갖으면서 서로 공감을 갖도록 했으면 한다. 아빠가 잘못 파악한 면도 있겠지만 용서보다는 이해와 공감라고 말하고 싶구나 부분적으로 용서라고 하는 부분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해와 공감이 더 많을 것이라고 본다. 설령 용서라고 하지만 용서는 상대방이 전적으로 잘못을 한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는 용서의 시간을 가지고 그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을 가지면 좋겠구나. 그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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