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대한 뿌리 깊은 욕망인 성욕과 정욕과 욕정의 어감 차이는 어떠한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의미는 같은데 상황에 따라 형태가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해와 태양, 날개와 나래는 각각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의미는 같으나 사용하는 상황이 다른 말이다. 전자가 일상어라면 후자는 전문어이거나 문학어이다. 천체 과학에서는 해보다는 태양이 더 적절하고 시에서라면 날개보다 나래가 더 감칠 맛이 난다

 

여기 성욕과 정욕, 욕정도 섹스에 대한 욕구를 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다. 그런데 성욕은 성 의학서나 성교육 지침서에 정욕은 종교서적이나 수신서, 욕정은 문학작품에 쓰일 때 가장 적확한 표현의 묘를 얻는다. 그렇다고 이 단어들이 그 같은 영역 바깥에서 절대 쓰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영역보다 중요한 것은 문맥이다. 성욕은 중립적인 문맥에서 정욕과 성욕은 부정적인 문맥에서 주로 쓰인다. 성욕에서는 도덕적 판단이 유보되거나 배제되어 있지만, 정욕과 욕정에는 도덕적 판단이 묻어 있다.

 

성욕은 본능적 충동으로서의 객관적 현상이고, 정욕과 욕정은 절제하고 삼가야 하는 감정적 현상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성 문제를 다루는 글이나 성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문에서는 성욕이 쓰일 가능성이 높고, 성인이나 종교의 가르침을 베푸는 글에서는 정욕이나 욕정이 쓰일 가능성이 높다

 

욕정이 성욕이나 정욕과 다른 점은 상황의 구체성에 있다. 대체로 성욕과 정욕이 일반적,추상적 상황에서의 심리를 나타내는 반면, 욕정은 구체적 상황에서의 심리를 나타낸다. 더 나아가 욕정에는 도덕적 힐난이 얹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