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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와 부여에 가면 우금치전투, 녹두장군, 의자왕, 무령왕릉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1. 7. 24. 07:07

    공주와 부여로 가는 길은 우금치 고개에 가면 동학혁명군위령탑이 우두커니 서있고 그 주위는 허허벌판으로 횡하게 이루어져있다. 동학혁명군은 이 벌판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18942월에 고부민란으로 한차례 봉기했던 동학농민군은 민란을 수습하러 온 관리가 오히려 농민들에게 민란의 책임을 묻자 다시금 힘을 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전주화약을 맺고 해산했지만 외세가 조선땅에 발을 들이자 다시금 집결한다. 그렇게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은 우금치에서 결전을 벌인다. 결과는 조선-일본 연합군의 완성이다. 구식 화승총과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동학농민군은 바로 이 우금치에서 몰살당하였다. 이는 조선을 개혁할 마지막 동력이 꺼져버린 사건이면서 조선백성들이 힘을 합쳐 봉건사회와 외세에 저항한 뜻깊은 사건이었다

     

    동학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 장군을 녹두장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체구가 녹두처럼 작아 그를 녹두장군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사실 녹두에는 더 풍부한 의미가 있다. 녹두는 그 이름대로 녹색을 띠는 곡식으로 낱알의 모양은 밭을 닮았다. 싹을 틔우면 숙주나물이 되고, 물에 불렸다가 갈아서 부치면 빈대떡이 된다. 그뿐 아니라 녹두묵의 주재료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곡식으로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르기도 쉽다. 콩이나 밭보다 빨리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도 용케 싹을 튀운다. 녹두장군도 다양한 용도로 소중한 존재로 보여서 이름을 지었다고 보여지기도 하겠다

     

    의자왕은 사연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제의 31대 왕인 그는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의 장남이다. 맏아들임에도 아버지가 왕위에 오른지 30년이 넘어서야 태자로 책봉되었는데 그때 나이는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의자왕의 출생에 대하선 여러설이 제기된다. 모친이 미천한 가문 출신이라거나 백제의 적대국인 신라의 진평공주라는 이야기이다. 여러 구설구 속에서도 왕이 되어 신라를 공격해 40여 성을 함락시키는 등 백제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삼국사기>는 그런 의자왕을 해동증자 즉 학식이 높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 사이에 우애가 깊은 인물이라 평했다. 하지만 의자왕이 3천 궁녀를 거느렸다는 이야기는 사료에서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백제보다 강력하고 더 큰 조선도 궁녀의 수가 5백명 정도라고 한다. 찬란한 백제 문화를 지키지 못한 의자왕은 실정하였다고 하지만 과연 그가 방탕하여 3천 궁녀를 거릴였다는 혐의는 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무령왕은 한강 유역을 잃고 위기에 빠졌던 백제를 다시금 안정시키고 중흥을 이끌었던 왕이다. 그의 무덤인 무령왕릉은 백제의 왕릉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무려 4600점의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발굴과정에서 다수가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다. 1971년 한 인부가 고분 관리를 위해 배수로를 만드는 작업 중 우연히 무령왕릉 발견했다. 무덤을 조사하기 위해 발굴단이 파견되었고 거기 지석에는영동대장백제사마왕으로 무령왕을 지칭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좋게 흘러가지 않고 기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이었고, 금세 소문이 퍼져 구경꾼들까지 몰려들었다. 경찰은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무덤 앞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발굴단은 최악의 판단으로 도굴꾼들처럼 자루에 유물을 쓸어 담아, 며칠 만에 발굴을 끝내버린 것이다. 심지어 무덤 내부를 찍은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현재는 무령왕릉 입구는 닫혀 있고 대신 모형으로 재현해놓은 체험관을 마련해두었다

     

    공주에서 맛있는 한우고기를 먹다보면 왜 이렇게 맛있을까 아마도 이것은 마블링때문일 것이다. 마블링이라 고기의 단면에 지방 조각이 촘촘히 박혀 있어, 마치 대리석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개는 이 마블링이 고기에 많이 보일수록 부드럽고 맛이 좋다. 이같은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은 1992년 마블링을 중요한 기준으로 내세운한우등급제가 실시되면서이다. 소는 원래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인데, 소의 체내에 더 많은 지방을 비축해 마블링이 풍부한 고기를 만들려면 풀 대신 옥수수 사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소의 움직임이 커질수록 체내 지방이 소모되고 마블링이 생기기 어려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들을 평생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 기르게 된다. 마블링이 잔뜩 들어 있는 고기는 우리의 몸에도 좋은 게 없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지금은 이것을 증명하는 듯 2019년 한우등급제가 개편되어 육색과 지방색,조직도 등을 자세히 고려해 등급을 매긴다고 한다. 마블링은 대량의 옥수수 소비와 함께 미국 텍사스 대량 소사육으로 파생된 역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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