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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과 커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아들을 위한 인문학/수문학 2024. 9. 3. 03:23

     

    <빙산은 녹아도 해수면은 올라가지 않는다>

    얼음은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물 위에 뜬다. 밀도 차이 때문이다. 바닷물의 밀도는 1.03g/고 얼음의 밀도는 0.92이다. 얼음이 물에 비해 9퍼센트 정도 부피가 큰 셈이다 이 때문에 얼음은 부피의 91%는 물에 잠기고 나머지 9%만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극지방의 빙산이 녹아도 바닷물 수위는 높아지지 않는다. 얼음으로 존재할 때 커졌던 부피는 녹아서 물이 되면 다시 줄어들기 때문에 빙산이 바다로 녹아들어도 해수면 높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마치 컵에 있는 얼음이 다 녹아도 컵에 담긴 물의 높이는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수면이 높아지는 얼음은 땅위를 덮고 있는 빙하이다. 그리고 그린란드나 남극 대륙과 같이 넓은 면적을 덮고 있는 빙상이다. 전문가들은 빙하와 빙상이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이 60m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면 발생하는 문제는 해수면 상승에만 그치지 않는다. 얼음이 녹으면 흰색의 얼음이 검푸른 바다로 바뀌기 때문에 햇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달라져 바닷물 온도가 올라간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전 지구적인 해류 흐름이 바뀌면서 지구의 기후도 달라진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대표적인 온실가스로 꼽히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한다. 물이 따뜻해지면 물속으로 녹아드는 기체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가 더욱 심해진다. 최근 뉴스에서 북극 그린란드의 방하 녹는 속도가 예년보다 2배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은 억울하다>

    봉이 김선달과 한양 상인 허풍선과의 대동강 물값에 대한 흥정이 시작된다. 거래 금액은 처음에는 1천냥이었으나 조금씩 올라가 결국 4천냥에 낙찰된다. 한냥은 지금 돈의 가치로 7만원 정도이니 주인 없는 대동강 물을 3억원이나 받고 판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래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청계천 물값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는 매년 17억원이었다. 이는 기한없이 대동강 물을 3억원에 판 봉이 김선달이 희대의 사기꾼의 오명은 억울하다고 느끼겠다. 물값을 보면 편의점에서 500mL생수 한병이 900원이다 이에 반해 수돗물은 1톤에 생수 한병보다 싼 720원이다. 생수에 비해 1/2000도 안되는 가격이다. 반면에 이에 대한 원가는 950원이다. 1톤을 생산할 때마다 200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빗물이나 지하수와 같은 다양한 수자원을 사용하려는 노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수돗물 공급자의 적자로 이어져 깨끗한 수돗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 개선은 점점 어려워진다. 한편 비싼 물값으로 몇십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물도 있다. 물에 금가루 내지 다이어몬드 장식을 한 것이다. 이에 반해 물 자체가 비싼 것도 있다. 암을 진단하는데 쓰이는 컴퓨터단층촬영용 시약 제조에 들어가는 산소 18 농축수이다. 1g5만원이 넘는데 이 물로 500mL 한병을 채우면 그 가격이 2500만원이다

     

    <고종은 최초의 커피 감별사>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에 궁녀가 타는 가마에 궁녀 차림으로 변장한 고종과 순종은 경북궁에서 100미터 떨어진 러시아 공사관에서 가마를 기다리는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친러파 이완용의 마중을 받았다. 아관파천 계획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독일계 프랑스인이자 러시아 공사관 베베르의 친척인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이었다. 1885년 러시아 공사관 베베르를 따라 우리나라에 온 손탁은 1886년부터 황실전례관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황실전례관은 황실의 음식과 의전을 챙기는 것이 공식업무였지만 고종과 러시아의 민간 외교관 역할도 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무사히 피신한 고종은 그 답례로 양옥 건물을 선물한다. 손탁은 이 양옥을 서구풍으로 리모델링한 후 호텔로 운영한다. 이름이 글로리호텔로 최고급 숙박시설과 커피숍을 운영하며 사교계의 장소가 되었다. 한편 고종의 커피 사랑은 유명한데 이는 아관파천과손탁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물론 1884년 조선에 어의로 온 알렌은 커피를 제공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환궁하고 나서도 커피에 대한 사랑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감별사인 커퍼였던 셈이다. 그가 커피를 즐겼던 곳은 덕수궁 내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이었다. 이곳은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연회를 즐겼던 곳이다. 커피는 고종에게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비수가 되었다. 이것은 커피 독살설로 커피에 많은 양의 아편을 넣는 것이다

     

    < 에스프레소에서 아메리카노로 >

    유럽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물론이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낯선 음료이다.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카노는 낯설다. 한편 각국에서 커피가 유행한 과정을 보면 커피는 처음부터 호평을 받고 대중에게 파고들지는 못했다. 아메리카의 고향인 미국에서조차 대중화하는 과정은 일종의 대타로 시작되었다. 미국에 커피가 유행하기 이전의 음료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홍차였다. 그런데 영국 정부가세금을 더 걷을 목적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 공급하는 홍차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다. 이것이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으로 홍차를 비롯한 영국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다. 거기서 미국사람들은 홍차 대신에 커피를 찾게 되었다. 아메리카노 유래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3년 점령군으로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국 입맛에 에스프레소는 미국 본토에서 마시던 연한 커피에 비해 너무 진하고 썼다. 그래서 미군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미국인이 커피를 마실줄 모른다고 하면서 조롱을 담아 그 커피를 미국 사람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아메리카노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커피는 원래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곡류처럼 먹던 커피가 오스만제국에서는 가루로 만들어 물에 넣고 달여 먹는 형태로 바뀐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고압으로 빨리 내릴 수 있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발명되면서 유럽에서는 에스프레소가 커피의 정형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중 미군을 통해 설탕과 크림을 듬뿍 들어간 달달이 커피가 도입되었다. 그후 1999년 이대 앞 1호점으로 스타벅스의 원두커피가 들어왔다. 이는 담배연기 자욱했던 다방은 사라지고 은은하 커피향을 풍기는 카페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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