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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대구전쟁을 하기도 했던 大口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어류 2023. 7. 13. 03:25

    대구는 머리가 크고 위턱이 아래턱보다 길고 아래턱에 수염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입이 큰 생선이라 대구어라고 했고 부산에서는 머리가 커서 대두어라고 부른다. 북태평양 오호츠크해에서 베링해 사이 바다에서 서식하며 겨울철 냉수대가 확대되면서 해류를 타고 울산만과 진해만까지 내려온다 명태와 청어와 함께 한류성 어종을 대표하지만 서해에서도 작은 대구들이 서식한다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는 대구는 동남서해안에서 모두 잡힌다고 했다 진해만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구 어장이다. 특히 가덕도와 거제도 사이, 최근에는 거가대교를 건너 칠천도 주변 바다에서도 대구가 많이 잡힌다. 하지만 전체 대구 어획량을 보면 거제도나 부산보다 충남을 중심으로 서해안이 더 많다 그러나 서해에서 잡히는 대구는 진해만에서 잡히는 대구의 절반 정도 크기에 불과해 왜대구라고 한다

     

    겨울철 대구의 고장은 역시 거제도다. 그 중심이 외포와 관포, 거제도에 딸린 작은 섬 이수도다. 제대로 자란 대구는 크기가 1미터에 이르며 무게도 20kg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구의 길이는 1.6미터로 무게가 47kg이라고 한다. 대구를 잡는 전통 어법은 어전이었다. 어전은 조기, 대구, 청어처럼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 어류를 포획하는 어법이다. 지역에 따라 어살 혹은 방렴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대구는 거제도 특산물이었다. 조선시대에 대구는 어전세, 소금은 염세 배는 선세 등 세금을 부과했다. 그만큼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황실에서는 이 황금 어장을 이토 히로부미의 절친이었던 가시이 겐타로에게 20년 기한으로 임대해주어 어민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거제도에서 군용 어류 통조림 사업, 황실 대구 어장 임차, 고등어 건착망 사업 등에 투자해 조선에서 수산왕이라고 불리던 재력가였다. 그는 거제도 등 70개 어장을 입찰을 통해 경매로써 임대해 주었다

     

    대구는 일찍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건대구나 반건대구는 물론 대구 어란해와 대구 이리젓 등을 진상했으며 종묘와 조정의 제례에도 진상품으로 올린 대구를 사용했다. 대구는 건조방법, 크기, 색깔 등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아가미와 내장을 빼내고 통째로 말린 통대구, 배를 가르지 않고 알대구의 아가미와 내장을 입을 통해 뺴낸 후 소금을 넣어 말린 약대구, 등을 갈라 뼈를 제거하고 머리도 반으로 잘라 햇빛에 말린 열작 등 끝이 없다. 대구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약대구를 제일로 친다. 약대구는 약이자 보신용 영양 식품이다. 알을 빼지 않고 온통 소금에 절였다가 여름에 내기도 한다고 했다. 돈이 있는 통영의 여자들은 약대구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 대구 철에 수백 마리를 사들여 큰 독에 알과 아가미를 따로 넣어 젓갈을 담고 대구는 통대구로 만들어 팔았다. 동의보감에는 고기의 성질이 평하고 맛이 짜고 독이 없다. 먹으면 기운을 보하는데 내장과 기름의 맛이 더욱 좋다고 했다

     

    호망은 정치망으로 거제도와 가덕도 일대의 어장에서 대구를 잡을 때 사용하는 그물이다. 그런데 대구를 전문으로 잡는 호망보다 자망을 이용해서 대구를 훨씬 많이 잡는다. 우선 허가 건수가 많고 호망과 달리 이동하며 그물을 칠 수 있는 장점 떄문이다. 반대로 호망은 겨울철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대구를 잡으며 그물도 크고 상처가 없는 살아 있는 대구를 잡기에 값도 좋다. 그래서 소득으로는 자망을 앞선다. 그대신에 호망은 정치망이라서 지정된 곳에 설치해야 한다. 또 호망은 대구만 잡는데 자망은 대구를 포함해 다른 어종까지 잡는다. 소비자들이 대구를 가장 많이 찾는 때는 1월인데 이때가 대구 산란기이자 금어기다. 자망은 이 시기에 포획이 금지된다. 호망은 인공수정을 위해 대구잡이를 허가하고 있다. 1970년대 대구 어획량이 급격하게 감소하자 1980년대부터 인공방류 사업을 시작했다. 그결과 2000년대 들어서 어획량이 회복하기 시작했다

     

    대구가 역사의 전환기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이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라는 책이다. 그는 세계역사와 지도가 대구 어장을 따라 변해왔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대구는 맛이 좋고 무리를 지어 얕은 곳을 찾아 산란하는 탓에 오래 전부터 상업의 대상이었다. 또 말린 대구는 바이킹의 활동, 영국 신교도의 신대륙 발견, 서인도 제도의 플랜테이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긴 항해 값싼 노동력, 척박한 환경을 유지하는 식량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구 주요 서식지였던 아이슬란드는 미국과 영국이 세 차례에 걸쳐 대구전쟁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한편 대구는 대량으로 포획할 수 있고 값이 싸며 염장법으로 장기보관과 이동이 용이해져 소비량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저인망 어선의 등장 등 어업 기술의 발달과 냉동과 운반이 용이해지면서 대구 어획량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래서 대구 가격은 폭락하고 대구는 멸종 위기에 처해졌다. 캐나다는 대구 어업을 금지하여 대구를 다시 돌아오는데 20년이 걸렸다. 거제시는 대구를 시어로 지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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