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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2) 인위적인 국경선이 분쟁의 씨앗을 되는 중동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정치 2022. 11. 15. 03:50

    알카에다와 보다 최근에 탄생한 IS 같은 집단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식민주의에 대한 굴욕감, 이어 등장한 범아랍 민주주의의 실패가 이러한 아랍 민족국가의 확장세로 이어진 것이다. 아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제국을 통치하던 황금시대 당시로선 최첨단의 기술, 예술, 의학, 통치 체계를 자랑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에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 일명 IS2000년대 후반에 이라크의 알카에다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이다. 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무렵 나왔다. 발전을 거듭하다가 2014년에 이들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넓은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IS로 자처하기 시작했다. IS는 해외 무슬림들에게 지하드 전사 집단의 선봉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이슬람 칼리프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하였다. 여기에서 미국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라크 시아파 정부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도움으로 수니파 무장 세력을 공격하는 구조가 되면 IS와의 전쟁이 종파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고 그로 인해 IS로 수니파가 결집될 것을 미국은 우려한다. 즉 미국은 이란의 시아파와 IS의 수니파 양 적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IS가 티크리트를 원하는 것은 기를 쓰고 북부의 모술을 탈환하려는 이라크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보다 중요한 곳은 라마디였다. 라마디는 이라크 내 수니파의 본거지라 할 안바르 지방에 있으며 시리아 국경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을 손에 넣어야 국가라는 선언에 힘을 얻을 수 있다. 2015년부터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 두곳의 IS에 대해 공습을 개시하기도 했다 페르시아 만의 항공모함인 조지 부시호와 칼빈슨호에서 출격한 미 공군기들은 수천 회에 이르는 공습을 단행했다.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기지에서 출격한 스텔스 전투기도 투입됐다. 이들 전투기는 IS의 석유시설을 공습했다.

     

     

    오스만 제국은 요르단 강 서안부터 지중해 연안을 시리아 땅의 일부로 보았다. 그들은 이 지역을 필리스티나라 불렀다.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영국의 위임 통치 아래서 이 지역은 이후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유대인들은 근 천년 동안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지역에 살았지만 잔인한 역사는 그들을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이며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성역 그 자체였다. 하지만 1948년 무렵까지 천년 이상을 이 땅에서 산 절대 다수는 아랍 무슬림과 기독교들이었다. . 20세기에 들어와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위임 통치가 시작되면서 당시는 소수에 불과했던 유대교도들에 가세하는 유대인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되었다. 그러던중 동유럽의 포그롬(제정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유대인의 약탈과 학살)으로 촉발된 유대인의 이주가 점점 늘어나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겨 아랍인들로부터 땅을 사들이는 것을 허락했다. 이들간의 긴장은 정점을 치달았고 영국은 1948년 이 문제를 유엔에 넘겨 두 개의 나라로 분리하는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유대인은 찬성하였으나 아랍인은 반대했다 그 결과는 전쟁이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처음으로 그 땅을 탈출했고 유대인 난민의 파도가 중동을 넘어 이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요르단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을 점령했고 이집트는 자국의 영토의 확장의 일환으로 가자 지역을 점령했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시리아인으로 여겼다. 현재까지도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한편 19676일전쟁 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그리고 가자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다. 2005년에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철수했지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여전히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결코 나눌 수 없는 그들만의 수도로 여긴다. 유대교 역사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바위가 그곳에 있으며 바로 그 지성소 위에 솔로몬 왕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바로 그 바위 위에서 하늘로 승천했다 하여 예루살렘을 세 번쨰로 성스러운 장소로 여긴다. 예루살렘은 군사적 지리적 의미는 없고 문화적 종교적 의미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에 비하면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양보하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가자 지구는 도시국가의 형태로 180만명 사는 사정이 좋지 않다. 이스라엘과 잦은 마찰이 벌어지는 탓에 이곳 주민들은 3면은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설치한 보호 장벽에 나머지 한면인 서쪽은 바다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 지역에서 날아온 로켓포가 이스라엘 깊숙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게 그 위력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로켓을 더욱더 멀리 쏘아 보내려는 가자 전투원들과 이에 맞서 대미사일 방어 체계를 개발하는 이스라엘 간에 이른바 비대칭 전력 경쟁이 가열돼 왔다 또한 레바논의 헤즈블라가 한층 강력하고 사정거리가 긴 로켓을 이스라엘 국토 깊숙이 발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위협은 레바논보다는 더 큰 인접국인 시리아로부터 온다 역사적으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늘 해안으로 바로 진출하기를 원해 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시리아의 일부로 여겨왔다. 한편 골란고원은 1973년 전쟁 당시 시리아의 공격을 받은 뒤부터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이란은 7800만의 인구가 파르시어를 쓰는 아랍국가가 아닌 페르시아인이다. 세계 3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이다. 부패와 물류수송의 연계를 저해하는 산악지형 그리고 경제제재가 특정 산업의 현대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란은 그 지리적 특성으로 보호를 받는 나라다. 3면이 산맥이, 나머지 한면은 습지대와 물이 지켜준다. 1219년 몽골군대를 마지막으로 이 나라 영토에 발을 들여온 외부세력은 없었다 이러한 이란의 산악지형은 상호 연계된 경제를 구축하기 어렵게 하는 한편으로 많은 소수 집단들에게는 저마다 선명한 특징을 지키게 했다. 이란은 뛰어난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6세기부터 이집트와 인도를 아우르는 지역까지 세력을 뻗었다

     

    이란 북서부에는 유럽이면서 아시아이기도 한 나라가 있다. 바로 아랍 땅의 경계를 차지하고 있는 터키다. 그런데 이 나라 국토 대부분이 중동지역에 속해 있다고 해서 꼭 아랍국가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터키는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기색이 뚜렷하다. 그러나 터어키 국토의 5%미만만이 유럽에 속해서 유럽연합에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다. 그 외에도 인권문제 특히 쿠르드족과의 문제가 있고 다른한편에는 경제적 문제가 있다. 더 직접적 원인은 터키가 인구 98%가 무슬림인 대형 무슬림 국가라는 것이다 1920년에 무스파타 케말로 터키 장성으로는 유일하게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전공을 세워 또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터키를 근대화시키면서 유럽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서구의 법제와 그레고리력을 도입하는 한편 공공기관에서 이슬람 문화를 퇴출시켰다. 그리하여 페즈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금지됐고 라틴 알파벳이 아랍문자를 대신했으며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1934년에는 서구식 성과 이름을 쓰는 제도를 도입하여 터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또한 정치적 측면에서 아랍국가들은 현 에드도안 터키 대통령이 경제로 오스만 제국을 재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터키와 긴밀한 끈을 맺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이란은 군사력과 경제 부문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터키를 보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각기 반대 파벌을 지원하는 것으로 인해 더욱 냉랭해졌다. 게다가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 정부를 강력히 지지한 터키의 정책은 이집트 군부가 두 번째 정권을 잡자 역효과를 불러왔다. 카이로와 앙카라 관계는 대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터키는 충돌도 있었으나 화해를 도모하고 있고 미국은 동지중해에서 나토의 위상을 강화하기도 하다 한편 나토입장에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라는 좁다란 통로를 통해 흑해를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인 터키가 이 해협을 봉쇄하기만 하면 러시아의 흑해 함대는 지중해는 물론 대서양으로도 접근하기 어렵게 된다 터키는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잇는 교역과 수송의 가교 역할을 한다. 현재는 푸틴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에너지정책를 유리하게 이끌려고 노력하면서도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는 등 미러의 중계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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