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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부수고 자동차를 막아라 러다이트 운동은 어떻게 되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2. 1. 6. 03:45
인류 역사상 혁신적인 기술은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농업혁명과 바퀴의 발명에서부터 항해술, 나침반, 인쇄술, 방적기, 증기기관에 이어 오늘날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진화는 인류의 삶의 질을 높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탈락하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부가 사라진 것이다. 영국에서는 방적기를 여러 차례 개량한 끝에 1800년대 들어 기계 한 대가 노동자 수백 명의 몫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값싼 고품질 면직물은 가내수공업 직공들에게 직격탄이었다.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깎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게다가 1800년대 초 대륙봉쇄령에 막혀 물가가 폭등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실질한 노동자들이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밤마다 복면을 한 채 직물공장을 돌며 기계를 부수고 공장주의 집에 불을 질렀다. 실업과 생활고를 기계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것이 러다이트 운동으로 불리는 기계파괴운동이다 방적기 두 대를 부순 것으로 전해진 전설적인 지도자 네드 러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영국 주웁 노팅엄 직물공장에서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은 랭커셔, 요크셔 등 북부 공업지대로 확산했다. 러다이트 운동이 극에 달한 1812년에는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보다 러다이트 노동자들을 저지하는데 군대를 더 많이 배치했을 정도이었다. 노동자 폭동에 놀란 영국 정부는 강력한 진압에 나섰다. 1813년 지도자급 17명을 처형하고 동조하는 세력을 지구 반대편 호주로 추방한 뒤에야 폭동은 잠잠해졌다 1816년 다시 불황이 닥쳐 러다이트 운동이 재발했지만 강경 진압과 경제 상황 호전으로 오래 가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러다이트는 반기계문명 운동, 과학기술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다. 새로운 기계에 대한 거부 반응은 그 이후에도 자주 되풀이되었다. 영국에서 1826년 증기기관을 응용한 28인승 증기자동차가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태우고 시속 30km까지 달리는 증기자동차는 속도의 혁명을 가져왔지만 마차를 끄는 마부들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급기야 자동차 사고를 빌미로 영국의회는 안전을 명분 삼아 1865년에 적기조례를 제정했다.
증기자동차가 도심에서 시속 3.2km이상 달릴 수 없는 규제였다. 또한 운행할 때는 55m 앞에서 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마부들에게 자동차가 온다고 알리도록 했다. 자동차를 사람이 걷는 속도로 기어가도록 규제했으니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리 만무했다. 적기조례는 1896년에야 폐지되었지만 영국의 자동차 기술자들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사회에서 조차 자동차가 마부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만 보았을 뿐 자동차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가 새로운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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