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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가 사치품인 화장품 판매원인 매분구라는 직업이 있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0. 18. 06:57
종이에 싼 흰 가루 한 봉지를 펼쳐 놓고
문 곁에서 말하기를 중국에서 왔다고 하네
늙은 아내는 병이 많아 머리도 못 감고
화장대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네
- 이색 < 매분자 >
조선시대 화장품은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기생들을 왕실로 불러들여 연희를 자주 즐겼던 연산군은 보염서를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의복과 화장품 공급을 전담하게 했다. 유희춘의 아내 최씨가 화장품을 팔아 집안에 남편의 집무실을 지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홍재전서>에는 풍속이 사치해지면서 생긴 병폐 중 하나로 예단과 화장품을 갖추지 못해 때를 놓쳐 혼인하지 못하는 일을 거론했다. 안정복이 지은 <여용국전>은 여자의 얼굴(국가)에 각종 이물질이 침입하자 화장도구와 화장품(군사)으로 물리치는 내용이다. 빙허각이씨는 규합총서에서 장대록이라는 제목으로 조선 여성의 미용 실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는데 머리 모양, 눈썹 화장, 얼굴 화장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러한 기록들을 왕실만 아니라 민간 사대부의 여성까지도 화장에 관심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화장품의 수요가 적지 않았으며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장품 판매업자를 매분구라고 불렀다. 고려 말 이색의 <매분자>라는 시는 중국에서 수입한 화장품의 판매업자 앞에서 늙어 병들어 화장을 할 수 없게 된 아내를 언급했다. 1488년 <성종실록>에는 매분구이자 로비스트인 망오지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화장품 판매업자로 일하면서 남의 재물을 받아 조정의 관리들에게 뇌물로 청탁하다가 발각되어 처벌을 받았다. 조귀명은 한 남성에 대한 정절을 지킨 여성의 이야기를 남겼다. 아름다운 여인과 이웃집 남자의 애틋한 사랑, 실패, 상사병, 죽음, 정절이 어우러진 짤막한 러브 스토리이다. 이 이야기의 여주인공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이 바로 매분구다. 그녀가 판매한 화장품은 주로 연분이었다. 조귀명이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길 때 그녀의 나이가 70쯤이었으니 17세기부터 활동했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서울에는 영희전 동쪽 안팎에 두 개씩 총4개의 화장품 판매점 분전이 운영되었다. 여성용품이므로 판매 담당자는 모두 여성이며 상설매장을 운영하는 동시에 방문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매분구는 매장 직원과 외판원으로 구분되었거나 동일인이 두 역할을 번갈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1901년 만전회춘당과 국영당약국은 황성신문에 백분과 함께 사용하여 얼굴의 잡티를 제거하는 연녹향이라는 수입 화장품 광고를 총 14차례 실었다. 이처럼 19세기 말을 전후해서 화장품 판매업을 약방의 형태로 상설 매장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15년부터 생산된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이 1918년 특허국에 정식 상표로 등록되면서 화장품 생산은 기업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다만 제조업체들은 자본력의 한계로 유통까지 주도할 수는 없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도매상이 유통을 맡았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방문 판매가 화장품 유통을 주도하면서 현대판 매분구의 전성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화장품의 유통은 할인점과 전문점이 주도하다가 통신과 온라인 유통에 그 역할을 넘겨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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