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주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달력의 변천과정을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과학 2024. 12. 12. 02:50
1822년 이집트 왈리 무함마드 알리가 세운 카이로의 블라크 인쇄소에서 인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의 비이슬람 공동체는 18세기부터 전례력을 인쇄해왔지만 공식 아랍어 인쇄소에서 찍은 건 이때가 최초였다. 블라크 인쇄소에서는 관보, 군 교재, 교과서 외에도 매년 자그마한 책력을 출판했다. 책력에는 기원과 이슬람력, 콥트교달력,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에서 쇠는 주요 명절이 요약되어 있었다. 해당하는 날짜의 행사나 생활정보 과학적 지식도 제공했다. 제국에 인쇄술이 전파되자 달력과 책력에 대한 관심이 전례없이 확산되었다. 프랑어로 달력은 원래 지금 달력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물건이 아니라 역법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역법은 고도로 복잡하고 오래된 지적활동의 산물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천체의 운동을 파악해 시간을 구분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종교의식을 치르고 사회생활을 이끌었다. 시간을 구분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어떤 방식을 결정할 것인지는 대개 종교 고위층의 몫이었다. 어떤 역법을 채택하고 언제를 기원으로 삼을지는 그 집단의 정체성의 직결되기에 특정 역법을 쓰도록 밀어붙이는 일은 권력의 증표이기도 했다. 가령 중국식 태음태양력은 한국, 베트남, 일본 같은 주변국에 영향을 미쳤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합리적으로 시간을 포함시키고자 기원전 46년 로마력을 개정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국은 1582년 만들어진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지만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1775년이 되어서야 마지막 개신교 국가들까지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다
16세기부터는 유럽의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책력이 폭넓게 퍼졌는데 행상 판매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책력에 들어가는 달력의 구성은 국가마다 다양했다.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을 같이 썼기에 어떤 국가에서는 한해가 1월 1일에 시작되는가 하면 다른 국가에서는 3월 25일에 시작하는 식이었다. 책력에는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중에서 일부분, 즉 회귀년만 적어두었다. 회귀년이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기간을 말한다. 책력은 이 기간의 여러 가지 면모를 다루었다. 날짜가 적힌 표가 실리기도 했고 행사, 별자리, 길일과 흉일, 농사일, 생활정보 같이 점성술의 받은 정보도 실렸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 책력도 있었다. 책력은 고대부터 잘 알려진 형식을 따랐다. 특히 중세 유럽 책력의 형식은 이슬람 농사력에서 가져온 것이다 책력을 가리키는 프랑스어의 어원에서도 아랍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대중적인 소책자였던 책력은 형식도 내용도 무척 다양했는데 특히 농민들에게 유용했다. 18세기가 되어서야 책력에 그레고리력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역법이 제시되면서 그레고리력에 대한 합의가 잠시 흔들렸다. 프랑스 혁명력으로 종교적인 구체적 역법과 단절을 시도하는 듯했으나 1805년 나폴레옹이 다시 그레고리력으로 되돌렸다
오스만 제국과 아랍권에서는 19세기 초반까지 손으로 직접 달력과 책력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오스만제국은 다민족, 다문화 사회였으므로 사용하는 달력도 그만큼 다행했다. 이슬람 음력은 물론이고 콥트 달력, 히브리력, 아르메니아 달력, 율리우스력, 페르시아 달력 등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오스만 제국은 서로 다른 달력들에 조응하는 표를 만드는 게 일이었다. 블라크 책력이 사용될 때까지 모든 천문학 개론과 책력에는 대응표를 그려놓은 챕터가 있었고 19세기까지도 이 챕터가 유지되었다. 아시아에서 쓰던 태음태양력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절기가 변하기 때문에 달이 계절의 변화에 맞춰져 있다. 반면 이슬람 음력은 달과 계절이 일치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므로 농업과 과세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 주기를 맞추기 위해 태양력을 따로 사용했다. 그래서 오스만제국의 세법은 달마다 고대 시리아어로 이름을 붙인 율리우스력에 기반했다. 오스만 제국 달력은 3월 1일에 한해를 시작하되 이슬람력의 헤지라 기원을 채택했다. 농어촌에서는 지역에 따라 율리우스력, 콥트 달력, 페르시아 달력에 기반한 서로 다른 역법과 책력을 선택했다. 고대 책력에서 따온 수많은 종류의 중세 유럽의 책력을 보면 대개 속담에서 착안한 농사 정보와 조언, 천문학과 기상 정보, 위생 보건 자료가 담겨있다.
16세기부터 유럽 책력의 항목을 차용해 차츰 풍부해진 오스만제국의 달력은 19세기에 인쇄술이 도입되자 더 풍부해졌다. 19세기 중후반 사설 인쇄가 증가하면서 시장에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 내용, 언어의 종교적 달력과 책력이 쏟아져 나왔다. 달력은 그 자체로 지식 대중화의 도구였기 때문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세계적으로는 그레고리력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식민지 정복과 교역 활동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으므로 달력 교류에도 점차 가속이 붙었다. 그림을 가득한 중국 달력을 차용해 서양에도 그림 달력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광고 효과를 노리는 포스터 형태의 달력도 생겼다. 그레고리력이 도입된 시기는 일본이 1873년, 한국이 1896년, 중국은 1912년, 러시아는 1918년이다. 신앙에 기반한 옛날 달력들은 이제 종교적 목적이 있을 때나 명절을 계산할 때만 쓴다. 서기를 따르는 그레고리력도 종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레고리력이 중립적인 것이 아니고 결함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꾸준한 개정작업이 필요했다. 국제연맹도 1927년에 이 작업을 착수했고 밑 작업을 하는데까지 성공했지만 실제로 개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 달력에는 날짜만 적혀 있고 과거 달력에 적혀 있던 질적 정보 즉 명절, 별자리, 길일과 흉일, 농사정보 등이 빠져 있다. 대신 다이어리, 벽걸이 달력, 물질 형태가 없는 디지털 달력 같은 다양한 형태의 달력이 있다. 현대인들은 집단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일정을 관리하기 위해 달력을 사용하는 편이다
'아들을 위한 인문학 >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의 바다 북극과 얼음의 땅인 남극에 대해서 (2) 2024.10.17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믿는 블랙홀에 대해서 (0) 2022.10.19 1824년 조셉 푸리에 처음 발견한 온실효과는 무슨 과학적 현상을 가지는가 ? (0) 2022.09.28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에 공을 우주 공간에 던진다면 영원히 움직인다고 하는데 (0) 2022.09.02 거대한 원자로로 타는 태양은 핵융합과정을 거쳐 열에너지를 발산하는데 (0) 202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