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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맛의 세계와 사과와 오렌지에 대한 이야기들
    아들을 위한 인문학/맛의 세계 2024. 3. 5. 03:25

     

    신맛은 4원미 가운데 가장 늦게 개발되었지만 맛을 지배하는 미각이라고도 불린다. 신맛은 맛을 변화시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신맛이 더해지면 짠맛이 순해지고 신맛에 단맛을 섞으면 단맛이 이기기 때문에 신맛이 약해진다. 또한 다양한 산미 중에는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맛이 있다고 한다. 산미는 주로 사과와 감귤류 등 과일에서 얻을 수 있다. 새콤한 산미가 있는 사과는 페르시아와 북유럽 등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특히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사과는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에서 전권을 위임받아 조정자가 된 솔론은 사과를 사치품으로 취급했다. 결혼식 때는 한 개만 먹고 참아야 하며 하객으로 온 사람은 각자 구입하여 지참해야 한다는 공고까지 내렸다. 또한 로마인은 식로락을 삶의 보람으로 여겼는데 연회의 마지막에 먹었던 것이 사과였다.

     

    그리스 신화에는 산미를 가진 사과의 희소성을 반영하는 황금사과 신화가 등장한다.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서사시의 발단 부분에서 황금사과를 다루었다. 트로이의 다른 이름인 일리아스에는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의 아내 헤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지헤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라는 세명의 여신이 가장 아름다운 신에게 주어진다는 황금사과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세 여신은 결정권을 쥔 목동인 파리스를 매수하려 했다. 헤라는 그에게 아시아 전역의 지배권을, 아테네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와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인간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비추었다. 결과적으로 젊은 파리스는 아름다운 여성을 선택하였다. 그에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네를 주었다. 파리스는 헬레네와 함께 많은 재산과 보물을 훔쳐 트로이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인을 분노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를 한 손에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그 시점부터 새콤한 산미를 가진 사과에 최음작용이라는 속성이 더해지게 되었다. 영어로 아프로디시악이라고 하는 최음제는 아프로디테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사과를 반으로 가른 모습이 여성의 생식기와 닮았다고도 한다 또한 사과를 베어 물다라는 프랑스 표현은 유혹에 넘어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자연의 소생과 대지의 순환을 상징하던 사과에 회춘, 청춘, 사랑, 최음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진 것이다. 이는 사과의 달콤하고 새콤한 맛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목 페르시아인이 만든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8 -기원후 226)에서 왕의 측근에 죽지 않는 사람들이라 불리는 1천명의 근위병을 갖추고 그들이 가진 창의 뾰족한 부분에 황금사과를 매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의 연금술에서는 수은에 반응해 죽지 않는 금속을 만들어내는 작용을 하는 유황을 황금사과라고 불렀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청춘의 여신 이둔의 사과는 먹는 사람들을 더욱 젊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고 여겼다

     

    산미가 강한 오렌지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감귤류 과일 중 하나로 원산지는 인도 북부이다. 인도에서 오렌지는 상큼한 맛보다 향기가 더 주목을 받아 마음의 향수라고도 불렀다. 원래 오렌지는 산스크리트어인 나랑가에서 왔고 아랍어와 프랑스어 오란지 그리고 영어로 변했고 오렌지의 향기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렌지가 전해진 시기는 지금부터 4천년전이다. 남송시대에 한언직이 쓴 귤보(1178)에서는 오렌지를 크게 감과 귤과 등자과로 나누고 각 품종의 특색에 대해여 서술하였다. 한편 지중해와 유럽에서는 오렌지의 산미가 크게 환영받지 못했으나 상쾌한 향은 매우 인기가 많았다. 오렌지 중에서도 쌉쌀한 품종인 등자나무의 열매는 실크로드를 통해 파르티아 제국을 경유하여 시리아 지방에 이르렀으며 향신료 상인이 로마에도 가지고 갔다.

     

    오렌지의 전파 경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슬람 대상권이 구축되었던 시대에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껍질이 얇고 작은 오렌지는 레몬, 라임 등과 함께 바닷길을 통해 남중국해 인도양 홍해를 경유하여 지중해 연안으로 건너갔다. 십자군 원정이 이루어지던 12세기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세비야 지방이 오렌지 재배의 중심이 되었는데 열매 자체보다는 향을 더 귀하게 여겼다. 특히 오렌지꽃은 오렌지 물의 원료가 되고 요리나 과자의 향을 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증류시켜 향이 진한 향수로 만들었다. 또 잎에 함유된 오일도 과자의 향을 내는데 사용했다. 프랑스 루이 16세는 오렌지에 매료되어 베르사유 궁전 안에 오렌지 나무 온실을 만들었다. 대항해 시대가 되자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역에 오렌지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후에 플로리다에서 오렌지 재배가 시작되었다. 이 오렌지는 스페인의 함대 갤리언의 중계에 선원들의 괴혈병을 방지하기 위한 비타민 C를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 18세기 초에는 캘리포니아 수도회가 오렌지를 옮겨와 심었고 1880년 냉동선이 보급되면서 재배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현재 플로리다 오렌지의 90%는 오렌지 주스의 원료가 되고 캘리포니아산 오렌지가 생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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