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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에 이름을 남긴 고대의 요충지로 이라크 위치한 바빌론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3. 5. 11. 03:58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위치한 이 일대가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평원이다. 이 평원은 강물을 따라 실려 온 흙모래로 만들어진 충적평야다. 기원전 5천년경부터 보리와 밀을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다. 기원전 3천년 경에는 수메르인들이 정착하여 우르, 키시 등의 도시국가들을 건설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역은 시라아사막에서 침입해온 아무루인으로 교체되었다. 아무르인들은 기원전 1900년경 바빌론을 중심으로 바빌론 1왕조를 세웠다. 바빌론은 그리스어로 쓰인 역사서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서에는 바벨로 부른다 이 단어는 신들의 문을 의미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국가는 저마다 토착신을 숭배했고 바빌론에서는 창조신인 마르두크를 섬겼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론 1왕조 함무라비왕 시대에 왕국은 메스포타미아 지역 대부분을 통일하고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함무라비왕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얻기 위해 치수와 관개공사에 공을 들였다.이들의 관리는 왕권 유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함무라비왕은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법전도 제정했다. 여기에는 재산의 임대와 상거래, 왕실재산의 관리, 노동자의 대우, 친족관계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도 많다. 이를 보아 바빌론에서는 상당히 체계적인 사회가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는 이미 서쪽 지중해부터 동쪽 아시아 각지에 이르는 교역망이 존재했고 이를 통해 인도나 페르시아산 보석류, 동남아시아산 향신료 등이 유통되었다. 기원전 16세기에 철제 무기를 다루는 히타이트인이 북서쪽에서 침략하여 바빌론 1왕조를 무너뜨렸다. 이후 동방에서 침입한 카시트인 등 여러 세력이 흥망성쇠를 되풀이했고 기원전 8세기에 히타이트의 제철기술을 흡수한 아시리아인이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이집트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7세기경 바빌론 주변에 세력을 형성한 칼데아인은 아시리아제국에 저항했으나 파괴되고 기원전 625년에 재건해 신바빌로니아왕국을 건설하였다. 2대 왕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비빌론의 최전성기를 이루며 이스라엘인 가나안을 침공하여 현지의 유대인을 노예로 끌고 왔는데 이것을 바빌론의 유수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교와 그리스드교의 성전 구약성서에 바빌론의 이야기가 실리게 된다. 당시 바빌론의 총면적은 약 10km였지만 사람들은 5km 규모의 시내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만명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유프라테스강이 바빌론의 도심을 관통하고 동쪽에는 티그리스강이 흘렀다. 바빌론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시내에는 이중 성벽에 여덟 개의 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민의 주택은 단층집이었으나 3층이나 4층집도 있었다. 대체로 점토를 햇볕에 말려 굳힌 벽돌을 이용해 지었고 왕궁을 건설할 때는 유약을 발라 광택이 나는 채유 벽돌로 사용했다. 또한 부동산 거래를 기록한 점토판이 대량으로 출토된 것을 보면 당시 광범위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공중정원 등

    바빌론의 중심부에는 마르두크신전이 세워졌는데 신전에 딸린 지구라트()는 높이가 무려 90m에 달하는 7층 건물이었다. 바빌로니아인은 우주는 하늘에서 땅까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고층의 지구라트가 하늘과 땅을 잇는 상징물이라고 믿었다. 일각에서는 바빌론의 이 거대한 탑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전설의 모테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유명한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높은 계단식 건물에 물을 끌어 올리고 테라스에 나무를 가득 심어 만든 정원이었다 그 존재와 관련된 뚜렷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망한 후 기원전 539년에 신바빌로니아왕국은 키루스는 2세가 이끄는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에 정복당한다.

     

    기원전 482년 바빌로니아인이 반란이 일으켜 바빌론의 성벽과 신전 그리고 지구라트가 파괴되었지만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대도시라는 지위를 유지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바빌론에 대해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답고 장엄하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한편 마케도니아왕국은 알렉산드로스대왕은 기원전 330년에 동방원정을 떠나며 바빌론에 들러 지구라트의 재건을 명했다 몇 년 후 바빌론으로 돌아왔지만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그리고 수백년 지나는 동안 바빌론 일대는 계속 건조해지며 사막화되었다. 기원후 1세기에 로마제국의 학자는 바빌론의 신전은 이미 건물의 잔해들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약성서에 실린 바벨탑 일화로 후세에 악덕한 사람의 이미지로 남아 악덕과 퇴폐가 만연한 땅으로 사용되었다. 마침내 20세기 초 독일의 조사단이 바빌론의 성벽과 지구라트의 흔적을 발견했다.고대 바빌로니아는 뛰어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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