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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업도시에서 다시 관광도시로 재도약하는 포항을 찾아가 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2. 8. 6. 03:13

    서울에서 KTX2시간 반이면 포항에 닿을 수 있다.. 2015년에 개통하였고 앞에는 로봇 모형이 있어 철강도시라는 것을 알려준다. 제철공업이 입지하기 전에는 인구가 작고 산업규모도 작은 촌락도시였다. 형산강 삼각주가 만들어놓은 평야지역이 있어서 농사도 지었고 바로 동해바다와 마주하기 때문에 어업의 비중도 높았다. 포항은 반농반어의 한적한 도시였다. 신라시대부터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왜적의 침입을 많이 받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인 기근시 지역마다 곡물의 공급과 이전을 원활하기 위해 포항 창진을 만들었고 포항진을 통해 군사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항구의 기능이 잘 되어 항구가 번성하자 시장이 활성화되고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형산강의 퇴적물질과 조류에 의해 토사가 침식되는 등의 피해가 나타나면서 창진의 기능은 쇠퇴하게 되었다

     

    포항진 지도
    영일만 야경

    일제강점기떄 포항은 제 1의 어항도시로 발전했다. 여러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철도, 항만 등의 교통을 정비했다. 그 당시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의 흔적이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에 남아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는 100년 전 조성된 일본인 집단 거주지역이다. 1930년에는 일본인이 220여가구가 1936년에는 일본 선박이 1995척에 선박규모가 13만톤이 넘었다고 하니 수산자원의 수탈이 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가옥을 적산가옥이라고 하고 다다미 구조라고 한다. 현재의 포항은 영일만에서 보는 야경이 제일 멋있다. 제철공장이 항구에 입지하는 것은 원료인 철의 수입과 제품의 수출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제철이 들어서기 전에는 7.2만명 정도의 농어업에 종사하는 도시였다. 그런데 1968년에 포항제철이 설비되고 1990년에는 31만명으로 크게 증가해 경북 최대의 도시로 부상했다. 2015년에는 52만명의 인구규모가 되었고 포항의 산업구성비 중 광공업이 50%에 육박할 정도이다.

     

    포항제철
    용광로

    제철공업 입지 이후의 포항은 1970-80년대 우리나라 공업을 이끈 중화학공업의 중심지였다. 포항시의 재정 측면에서도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데 그것은 제 1차 금속분야인 철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8%정도로 압도적이었다. 1 차 국토개발계획에 의해 공업거점지역으로 선정되었고 우리나라 산업을 이끈 원동력이 되어 준 중화학공업 단지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요즘 철강산업이 많이 위축되었다. 국내외 경기가 침체되고 값싼 중국의 철강업이 급성장하면서 포스코의 산업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포항시의 지방세에서 포스코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6년에는 44%에서 2012년에는 11%로 해마다 감소했다. 최근 포항을 첨단산업도시로의 비전을 가지고 포항공대를 기반을 하고 있다. 한편 영밀만에는 신항만이 조성되어 환동해권의 물류 중심지가 되고자 노력중이고 물류이동의 중심지로 거듭나고자 한다

     

    호미곶
    주상절리(포항 달전리)

    포항의 대표 관광명소가 호미곶이다. 예전에는 말갈기 같다고 해서 장기곶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인 한반도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호미곶으로 바꾸었다 2000년 새천년을 맞이하는 한민족해맞이축제를 개최한 후 일출을 보는 명소로 유명해지고 전국에서 가장 큰 가마솥에서 떡국을 끓여먹기도 하면서 말이다. 또한 이곳엔 동해바다의 영해를 설정하는 기준 중 하나의 지점이 표시되어 있고 연오랑세오녀 동상도 있고 예전에 전통설호의 빛을 가지고 포항국제불빛축제를 개최해 도시 이미지를 생성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영일만에서 내뿜어내는 제철소 용광로 불의 기운도 내포되어 있다. 참고로 한반도 동쪽 땅끝마을은 구룡포읍의 석병리이다. 그리고 용암이 흘렀던 흔적이 주상절리로 남아 있다. 뜨거운 용암이 화구에서 흘러나와 급속하게 식으면 생긴 육각형 모양의 기둥이다. 포항의 주상절리는 제주도와 달리 일정한 방향이 아니라 제각각 방향으로 나 있다.

     

    장기읍성

    포항에는 유명한 산으로 내연산이 있다. 좁은 골짜기를 따라 많은 폭포들이 발달해 있어 무척 멋지다. 큰 암벽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들을 보며 비경을 즐길 수 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산용추도와 내연산폭포도 등 폭포 그림의 실제 풍경이기도 하다 내연산은 12폭포로 유명하고 입구에 세워진 보경사도 동해안의 명산을 찾아 신라 진평왕 때 세워진 절이라고 한다. 신라 진평왕 시기에 창건한 또 다른 절로 원효대사와 혜공이 개천의 죽은 물고기를 살리는 시합을 겨루었는대 거기서 나오 고기어라 하여 오어사라는 절이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에는 장기읍성으로 여진족과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해안가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장기면에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유배오기도 했다

     

    동빈내항
    동빈내항을 관광개발로

    포항 교통의 요지는 오거리와 육거리이다. 이곳이 포항 도심지이나 교외로 새로운 주거지역이 개발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 도심의 인구는 줄고 인구 공동화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중앙동은 포항의 옛 항구와 접하고 있어 중심 시가지인데 가장 많이 감소했다 근처의 죽도시장도 유명한데 이는 1950년대 형산강과 동해가 만나는 하구의 갈대밭, 늪지대 위에 노점상들이 하나둘 모이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그러다가 포스코의 설립으로 경북 동해안의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 되었다. 포항의 대표 먹거리는 과메기와 물회이다. 구룡포 과메기는 겨울철이 제철로 유명하다. 또한 포항의 운하인 동빈내항으로 가보면 과거 이곳은 포항 경제의 중심지로 정어리, 청어 등의 어획량이 많았다. 포항제출이 들어서면서 포항신항이 새롭게 개발되고 동빈내항은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1974년 물길이 막힌 동빈내항은 생활하수와 쓰레기로 오염되며 검은 죽은 바다로 변했다. 그런 동빈내항의 형산강 물길을 40년만에 복원한다고 한다. 이제 공업지역의 이미지에서 관광지로 재도약하는 포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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