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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파 응징을 위해 설립된 반민특위 활동과 와해는 어떻게 전개되었나
    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12. 15. 04:54

    해방직후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를 응징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민족반역자, 밀정, 앞잡이, 부일협력자 등에 대한 심판은 미군정의 미지근한 태도로 인해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야 가능했다. 이는 미군정이 행정의 공백이나 업무의 능률을 위해 이들을 관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정부수립 이후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민족반역자 처벌을 위한 법제정의 발의는 1948년 제헌국회 제 40차 본회의장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이 특별법 제정은 김웅진, 김상돈 등 소장파 10여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강력히 제기되어 97일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은 국회가 중심이 되어 친일파 처벌을 다루고, 정부는 협조자의 차원에서 머물게 되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따라서 친일관료가 주축인 정부와 국회가 사사건건 부딪치는 빌미를 제공했다

     

    특별법이 공포되자 국회는 친일배들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시도에 조사위원회를 운영하게 했다. 그리고 1012일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각 시도별로 독립운동가나 학덕과 애국심이 현저한 10명의 인사들이 반민특위 위원에 선정되었다. 반민특위는 위원장에 김상덕, 부위원장에 김상돈을 선임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미군정 중에 친일배들이 주요직책을 맡자 국민들의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국민들은 반민특위가 이들을 처벌하고 정치,사회적인 기강을 확립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친일배들은 자신의 재력이나 조직력을 동원해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놓곤 했다

     

    대한신문의 공산당 논쟁
    반민특위 습격사건

    당시 <대한일보>라는 극우신문을 경영한 친일배 이종형은 재력을 동원, 반민특위 반대시위를 꾸몄다.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느닷없이국회에서 친일,부일파를 처단하라는 주장은 곧 공산당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전단을 뿌렸다. 1925년 탄핵으로 임정을 떠난 이승만은 자신의 세력확장을 위해 친일세력들을 상당수 거느리고 있었다. 친일세력을 숙청하려는 반민특위에 이승만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승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반민특위가 반민족행위자들을 가차없이 검거하자.

     

    친일세력들은 반민특위를 모함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6.6습격사건을 일으켰다. 194966일 현직 고위경찰간부들이 반민특위 위원들을 대대적으로 습격, 체포, 연행, 구금했다. 이것은 반민족행위자들의 반민특위 활동 방해사건 중 가장 격렬하고 불법적인 행위였다. 이로 인해 특위는 사실상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65일 특위의 조사활동을 비난하는 관제 데모대가 서울시내 주요 간선도로에서 특위의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데모군중은 특위본부로 달려가 반민특위를 빨갱이 용공단체라 매도했다. 그런데 이 시위의 배후 조종자는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였다. 다음날 특위가 배후조종자 최운하 등 2명을 체포, 구속하자 시경은 40명의 경찰을 특위사무실에 급파하여 사무실을 난장판을 만들고는 특위위원들을 구속했다. 이들은 출근하던 특위요원 35명을 불법 체포했고, 지방경찰 또한 각 도지부 사무실을 습격했다. 특위사무실 습격사건이 벌어진 후 국회는 대통령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으나 이승만은 거절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정치문제화되자 검찰총장은 특위위원을 석방했다

     

    여순사건과 빨치산 활동 등으로 보수화 물결이 거세지고, 66일 사건으로 정국이 얼어붙자 반민특위는 사실상 와해되고 말았다. 당시 반민족행위자 도별 송치건수는 559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형이 선고된 것은 집행유예 5건을 포함하여 12건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중 극렬분자 7명만이 처벌받았을 뿐이며, 이들 또한 이듬해 봄까지 감형이나 형집행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이로써 국민의 열망 속에서 친일과 부일배를 응징하여 민족정기를 세우려던 모처럼의 기회는 사라져사렸다. 단죄없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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