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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선비가 자리잡은 전통문화의 수도인 안동을 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2. 10. 8. 03:20

    우리나라에는 큰 강이 남북을 나누는 도시가 세 곳 있다. 한강이 있는 서울, 남강이 흐르는 진주, 그리고 안동이다. 안동의 낙동강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는 것이다. 안동사람은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생각한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발원하는 본류는 낙강이라고 부르고 영양군 일원산에서 발원하는 반변천은 동강이라고 하며 이 두강이 안동 시내 동쪽에서 합류한 뒤 본격적으로 낙동강이 된다는 것이다 낙동강은 남한에서 한강과 더불어 가장 긴 강인데 두 강은 지형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한강은 태백산맥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어 동해 가까이에서 발원하여 산맥을 따라 흐르다가 팔당협곡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평지를 만난 후 서해로 유입된다. 팔당댐부터 소양강댐까지 거의 흐르는 구간이 없을 정도로 댐이 많다. 하지만 낙동강은 두 산맥(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의 분지에서 흐르기 때문에 세숫대야 속을 흐르는 형국이다. 다목적댐 건설에 부적합하다. 이처럼 완만한 하천이라서 낙동강 물줄기는 운송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안동의 미곡은 하류로 보냈고 남해의 해산물과 소금은 안동으로 팔려들어왔다

     

    안동댐
    월영교

    한편 안동까지 낙동강은 비교적 고지대를 흐르면서 깊게 침식해서 협곡을 만드는데 이를 감입곡류하천이라고 한다. 감입곡류하천의 짧은 협곡에 댐을 세우면 비교적 큰 인공호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곳은 다목적댐 건설의 적지이다. 안동 상류의 안동댐과 임하댐은 이런 입지적 장점을 가지고 있고 부산과 대구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대고 있다. 안동댐은 안동 시내 동쪽에 위치하는데 1976년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 겸용 발전소이다. 수력발전소는 보통 낙차와 수량을 이용해서 발전소를 돌리는데 여름을 제외하고는 양수기를 통해 발전한다. 안동댐 아래 수량이 풍부한 곳이 하부댐인데 이곳 주변은 봄에는 벚꽃과 가을 단풍이 어우러진 월영교라는 예쁜 다리가 있다. 유람선을 탈 수 있어 관광객이 많다

     

    안동국시

    안동은 유교문화의 중심지로 큰 잔치가 많다. 그런 잔칫상에 대접하기 쉬운 음식으로 국민 생선인 고등어가 자주 올라왔다. 고등어는 안동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인 동해안의 영덕 강구항에서 주로 조달했는데 안동까지 오는 동안 상하지 말라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소금간을 한 고등어는 안동에서 잘 숙성되어 맛있게 되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등어 말고도 국시가 유명하다. 내륙이란 밭농사 중심이었기 때문에 전통 안동국수에는 콩가루를 30%정도 넣는다고 한다. 산에 흔했던 꿩을 잡아 육수를 내고 호박 등으로 고명을 얹었다. 또한 1980년대 안동 구시장에서 서양식 프라이드 통닭의 확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상인들이 내놓은 퓨전음식이다. 토막 친 통닭에 풍성한 야채와 당면 등을 넣어 안동의 대표적 먹거리가 되었다

     

    도산서원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유교 최고봉 퇴계선생이 태어났다. 이곳에서 독서에 전념하며 토계를 퇴계로 바꾸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퇴계는 높은 학덕에도 중앙의 관직에서는 한직에 머물렀고 국내 최대의 서원인 도산서원을 지어(1560)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한편 풍기군수 재직 당시 전임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으로 최초의 국립재정 지원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황선생은 중국의 여씨향약을 받아들여 좋은 일을 권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강령을 조선실정에 접목하여 향약을 마련했다 퇴계의 14대 후손인 이육사가 있다. 그는 광야, 청포도, 절정 같은 시로 유명할 뿐아니라 독립운동가로 활동도 하여 일제에 수감되어 수인번호가 264였다고 하여 아호를 육사가 되었다. 도산서원은 낙동강이 굽이치는 절벽 위에 위치로 햇볕이 많고 풍광이 뛰어나다

     

    안동민속촌

    안동민속촌과 민속박물관에 가보면 수몰될 뻔한 다양한 가옥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야외에 초가, 양반가, 지방 전통 가옥, 특수재료 가옥 등이 한데 모여 있다. 완벽하게 보전된 석빙고는 원래 예안에 있었지만 수몰될 위기에 처해 이전해 놓은 것이다. 까치구멍집도 있는데 안동은 양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내륙이라 겨울에 추운지역이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방과 부엌, 마구간까지 실내에 위치하다 보니 환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붕에 환기를 위한 구멍을 냈는데 모양이 꼭 까치집 같다고 해서 까치구멍집이라고 부른다. 안동시내에는 고성이씨 탑동종택에 있는 임청각을 만나게 된다. 미스터 션사인의 모티브이기도 한 이곳은 원래 절터였다가 99칸의 대저택이 들어섰고 이 댁들이 대부분 독립운동에 나섰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한 이상룡 선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제는 독립운동가 자택이 눈에 거슬려 중앙선 철길을 놓아 저택을 훼손하기도 했다. 2020년 중앙선이 직선 전철화되면서 안동역이 외곽으로 이전했다

     

    제비원 석불
    신세동 7층 전탑
    동부동 5층 전탑

    제비원 석불은 온화한 인상이 안동의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12미터가 넘는 바위에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다른 돌로 2.5미터의 불두를 조각해 얹었다. 석불 위쪽에는 3층 석탑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편 삼국의 탑을 비교하면 중국은 벽돌을 쌓은 전탑이 우리는 석탑이 일본은 목탑이 전형이라고 한다. 중국불교문화는 황화와 양쯔강의 진흙이 많아 벽돌로 탑을 쌓았고 비가 많고 기온이 높은 일본은 아름드리나무를 깎아 목탑을 많이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중생대 마그마로 인해 조성된 화강암이 풍부해 석탑이 주로 지어졌다. 그러나 안동에는 낙강강 변의 진흙으로 전탑이 많이 지어졌다. 임청각 앞에서 전탑의 전형인 국보 16호 신세동 7층 전탑이 있고 안동역 옆 동부동(범림사)전탑도 지금은 5층만 남아 통통하지만 원래는 7층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한국전쟁때 윗부분이 소실되었다

     

    봉정사 극락전

    안동 불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봉정사는 2018년 영주 부석사 등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봉정사에는 12세기 중엽에 지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이 있다. 국보 15호로 지정되어 있고 1972년에 해체하여 수리한 후 다시복원하면서 단청을 새로 칠했다 배흘림기둥에 맞배지붕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대웅전은 조선초에 만들어져 국보 제 311로 지정되고 팔각지붕에 다포 양식이라 건물의 짜임새는 한수 위다. 전통 가옥은 먼저 지붕의 형태에 따라 맞배지붕과 우진각지붕, 팔작지붕이 있다. 맞배지붕은 건물 앞뒤가 대칭으로 경사진 지붕이고 구조가 간단하다. 우진각지붕은 옆 처마가 사면으로 내려간 지붕이고 팔작지붕은 맞배지붕과 우진각을 합쳐놓은 형태다. 또한 지붕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짜놓은 구조물을 공포라고 하는데 이 공포는 하중을 받치는 구조적인 기능 외에도 건물의 아름다운 심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공포가 기둥위에만 올려져 있으면 주심포이고 조선초기 주로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들어가 있으면 다심포로 조선중기에 기술발전으로 만들어졌다

     

    하천마을은 이름 그대로 하천이 휘돌아서 태극문양을 그리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여기에는 임란때 명재상 류성룡 선생이 있다. 하회마을에는 하회탈춤과 줄불 선유놀이가 있다. 탈춤이 각종 탈을 쓰고 양반들을 풍자하는 민초들의 놀이라면 줄불 선유놀이는 달 밝은 밤에 강물 위에 불꽃을 띄워 밝히고 배를 타고 즐기는 양반들의 놀이이다. 마을 중심에는 수령이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 삼신당이 자리 잡고 뒷산 중턱에는 서낭당, 자락에는 국사당이 있어 유교 색채가 강한 마을치고는 신당이 많은 편이다 또한 하회마을 옆에는 병산서원이 있다. 이는 류성룡 선생을 배향한 서원으로 모태는 풍악서당인데 철종때 병산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한편 조선시대 초등교육은 서당에서 담당하였고 중등교육은 국립은 향교이고 사립은 서원이고 고등교육은 성균관에서 담당했다. 조선초기에는 향교에서 후기에는 서원중심으로 편성해 갔다. 서원의 기본배치는 성균관 향교와 비슷하다

     

    고창전투(930)

    전통문화 수도인 안동은 우리나라 도시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의 2.5배로 1521로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역사성에 기인하고 있다. 왕건이 건국한 고려와 견훤이 건국한 후백제는 패권을 두고 겨루었다. 견훤이 안동과 가까운 상주출신이라 안동도 후백제 세력과 가까웠다. 태조 왕건이 신라와의 연결 교두보인 안동을 차지하기 위해 진격해왔는데 난관에 봉착한다. 이때 왕건을 도와 승리한 김선평 등 위패를 모신 곳이 안동시청에서 동쪽으로 태사묘로 각각 안동김씨 안동권씨 시조들이다. 왕건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고창으로 불리는 이 고을을 동쪽을 편안하게 한 곳이라는 의미로 안동이란 이름을 친히 지어주었다.

     

    웅부공원
    경북도청

    또한 과거 경주와 함께 잘 나가던 안동부의 중심에 지금은 웅부공원이 들어섰다. 여기에는 800년의 느티나무가 있고 안동부사로 부임해 오면 먼저 이곳에 인사를 드리고 매년 정월에 제사를 올리기도 했고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잘나가던 안동도 경부선이 김천과 대구에 놓이므로 중요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최대 24만이던 인구도 지금은 16만명대로 감소했다. 하지만 2008년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경상북도청 이전 후보지로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이 선정되고 고속도로와 철도 직선 전철화 등으로 교통이 점차 편리해지면서 바이오산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단지를 유치하게 되었다. 하회마을에서 가까운 안동시 풍천면에 가면 새롭게 이전된 경북도청을 만날 수 있다. 다시 한번 왕성해질 미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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