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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의 신비의 섬 독도를 탐방해 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2. 9. 24. 04:11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따라서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 서쪽 지역보다 해가 더 빨리 뜨고 빨리 진다. 독도가 최동단에 위치해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및 89개의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면적 188로 국제 축구 경기장 규격의 2.5배 정도의 넓이이다. 독도는 제주도와 울릉도보다 형성시기가 앞선다. 독도는 지금으로부터 460만년전부터 250만년전 사이에 해저에서 분출한 용암이 굳어져 탄생했다. 탄생 당시에는 하나의 섬이었지만 동해의 바람과 파도의 오랜 침식 활동으로 지금의 여러섬으로 갖추게 되었다

     

    독도의 연평균 기온은 약 12도이고 가장 더운 달인 8월의 기온도 25도를 넘지 않아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 기온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난류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이다. 연평균 강수량은약 1300mm정도이고 겨울엔 폭설이 자주 내리지만 바위의 경사가 급하고 바람이 강해 눈이 쌓이지는 않는다. 독도는 주로 울릉도에서 가는데 사동항과 저동항 두곳이 있다. 걸리는 시간은 1시간 50분정도이고 독도에 머무는 시간을 포함해서 왕복 4시간이 소요된다

     

    독도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 336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보호법 제 33조에 근거하여 공개를 제한 했지만 2005년 정부 방침의 변경으로 제한지역 중 동도에 한해서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해제했다. 입도허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면서 독도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배에 탈수 인원이 47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1회 입도인원이 한정된다. 서도는 지역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입도가 제한되어 있다. 독도는 방파제가 없어 입도가 쉽지 않지만 선착장의 모습은 생각보다 웅장하고 늠름하다 한편 독도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촛대바위와 삼형제굴바위가 보이는 곳과 대한민국 동쪽 땅 끝 표석 앞이다.

     

    우리가 현재 부르는 독도라는 이름은 울릉도 주민이 부르던 독섬에서 비롯된 것으로 돌섬의 사투리이다. 독도라는 명칭이 우리나라 문서에 처음 기록된 것은 1906년이다. 하지만 독도를 부르는 이름은 매우 많았다. 고대 우산국에서는 우산도, 물개(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라는 뜻의 가지도, 섬이 세 개의 봉우리로 보인다는 뜻의 삼봉도, 돌섬에서 비롯된 석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렀다. 또한 외국에서는 리앙쿠르암(프랑스), 호넷 암(영국), 메넬라이-올리부차(러시아)라고 불렀는데 모두 독도를 발견한 선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독도에 처음 산 최종덕은 19811014일 주민등록을 등재하였다.. 이후 19879월 사망할 때까지 거주했다. 이후 사위인 조준기 씨의 일가족 모두가 독도로 주소를 옮기기도 했다. 199111월 김성도 김신열씨 부부가 독도주민숙소에서 어로활동에 종사하며 거주했는데 2018년 김성도씨가 죽었다. 이외에도 독도경비대, 등대 관리원 등이 교대로 상주하며 독도와 함께 하고 있다.. 한편 2014년 도로명 주소가 도입하여 동도는 신라장군 이사부길로 서도는 안용복길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독도는 입도하거나 선회 관람한 사람 중 독도명예주민증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이는 독도의 위상 강화에 보탬이 될 수 있고 애국심도 함양할 수 있다

     

    독도는 영토의 가치 이외에도 다양한 경제, 생태, 군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불타는 얼음이라는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석유와 천연가스 대안으로 중시하는데 실제 2007년 독도 주변 바다에서 채취에 성공하기로 했고 현재 국내 가스소비량의 30년분에 해당하는 약 6억톤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도 주변 해양심층수는 200m이하의 깊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태양 빛이 도달하지 않아 2도이하 수온을 유지하고 오염물질 유입이 없어 청정성이 뛰어나다. 또한 독도 연안과 대화퇴 어장에는 오징어, 꽁치, 방어, 전복, 소라 등의 다양한 수산물이 풍부하다. 그리고 해국, 섬괴불나무 등 60여종의 식물들과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의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해상교통로의 중심지 기능을 하며 해군작전의 요충지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리적,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살펴본다. 독도의 최초 기록은 고려시대 삼국사기에 이사부가 가짜 사자를 만들어 위협하여 우산국을 복속하였고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안용복은 일본을 오가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했다. 일본의 최초 기록은 은주시청합기(1667)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일본의 서북쪽 경계를 오키 섬으로 한다고 적혀 있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여기지 않았다.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고 지령을 내무성에 하달했다.

     

    일본은 1905년 이전에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단 한번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러일전쟁 중 시마네현 고시 제 40(1905. 2)를 통해 불법으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인 항의도 할 수 없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의 카이로 선언, 포츠담 회담을 통해 독도는 우리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제 677호를 발효하여 독도를 일본의 통치 범위에서 제외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대한민국의 영토로 한다는 명시가 없어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경상북도 의회는 2005년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선포를 기념하여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2010년 시민 사회단체들이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를 공포한 1025일을 독도수호의 날로 선포했따. 독도기념날은 아니지만 독도 수호의지를 담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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