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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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즐겨 먹었다던 백화사을 잡으러 다녔다는 땅꾼은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1. 24. 04:35
끝이 갈라진 나무 활과 구부러진 나무 막대를 가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약초를 캐다가 뱀을 만나면 큰 놈이건 작은 놈이건 나무활로 머리를 누른다. 뱀이 머리를 들고 입을 벌리면 구부러진 나무 막대로 조여서 뱀의 이를 다 뽑고 손으로 껍질을 벗겨 화살통 보관한다, 밥이 다 되면 소금을 뿌려서 구워다가 남김없이 먹는데 오래 지나면 중독되어 죽는 자가 이어진다 - 강희맹 - 연산군은 뱀을 매일 한 상자씩 바치라고 했다.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 이 명령을 내린 날 몸이 불편해서 아침 조회에 늦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약에 쓰려고 그런 듯하다. 아무 뱀이나 약이 되는 건 아니었다. 백화사라고 하는 독사가 주로 쓰였다. 사유환이라는 약이 있다. 백화사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든 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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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는 도깨비 아니 난동자 심지어 막란이라는 막내에서 왔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1. 10. 04:52
우리나라 속어로 회자수를 망나니라고 하니, 지극히 싫어하고 천시하는 말이다 큰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술 한잔 들이켜고 입으로 뿜어 칼날을 적신다. 사극을 통해 익숙해진 망나니의 이미지이다. 한자로는 회자수라고 한다. 포수와 궁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회자수는 원래 회자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군인을 말한다. 회자는 삼국지연의의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와 비슷하다. 회자수는 붉은 옷자락에 붉은 두건을 쓰고 이 무기를 들고서 대장을 호위한다. 실전용이 아니라 위엄을 과시하고 공포를 심어 주는 의장용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회자를 사형도구로 사용하는 바람에 회자수가 망나니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회자는 자루가 길어서 원심력을 이용해 세게 내리칠 수 있다. 사람의 목을 단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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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首母)인 신부 도우미이자 주례자로 주로 어떤 일과 보수를 받았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1. 1. 04:39
우리나라에서 혼인과 회갑 잔치에 쓰는 병풍, 탁자, 향촉 따위는 관청에서 빌리고, 그밖의 골동품은 상점에서 빌린다. 머리 장식, 가체, 비녀, 귀걸이, 가락지, 예복 등 꾸미는 물건은 장파에게 빌린다. 속칭 수모라고 한다 수모는 수식모(首飾母)의 준말이다. 우리말에는 머리 어멈이고 지금의 헤어디자이너다 한편 화장과 의상도 담당했으니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도 겸했고 혼례가 있으면 신부가 입을 옷과 장신구를 빌려주고 예식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웨딩플래너 역할도 맡았다. 수모는 조선시대 혼례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조선시대 한양은 동서남북중 5부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는데 수모는 구역별로 활동했다. 가례(왕실혼례)가 있으면 한양의 수모를 전부 대궐로 불러들였다. 행사에 참석하는 여성들의 머리 손질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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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염색은 부의 상징으로 염색직업인 염모는 염색비용으로 얼마를 받았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0. 21. 05:06
염색 가격이 옛날보다 세배나 올라 머리카락이 쭈볏할 정도이다. 한양에 있는 염색집은 으레 부자가 되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조정에서 조처해야 할 일이다 - 양성지 - 우리나라 사람은 백의민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삼국 시대부터 흰옷을 즐겨 입은 것은 사실이다. 평화를 사랑해서 흰옷을 입었다는 말은 틀린말이다. 서양에서 흰색은 평화의 상징이지만 동양에서 흰색은 전쟁의 상징이다. 또한 흰색이 상징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흰옷은 원래 상복이다. 조선시대에는 상복을 자주 입었다. 팔촌 이내 친족이 죽으면 상복을 입었고 왕실에 상이 있으면 전 백성이 상복을 입어야 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단벌이어서 경조사에도 입고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은 흰옷밖에 없다. 그래서 흰옷을 자주 입는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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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가 사치품인 화장품 판매원인 매분구라는 직업이 있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0. 18. 06:57
종이에 싼 흰 가루 한 봉지를 펼쳐 놓고 문 곁에서 말하기를 중국에서 왔다고 하네 늙은 아내는 병이 많아 머리도 못 감고 화장대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네 - 이색 조선시대 화장품은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기생들을 왕실로 불러들여 연희를 자주 즐겼던 연산군은 보염서를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의복과 화장품 공급을 전담하게 했다. 유희춘의 아내 최씨가 화장품을 팔아 집안에 남편의 집무실을 지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에는 풍속이 사치해지면서 생긴 병폐 중 하나로 예단과 화장품을 갖추지 못해 때를 놓쳐 혼인하지 못하는 일을 거론했다. 안정복이 지은 은 여자의 얼굴(국가)에 각종 이물질이 침입하자 화장도구와 화장품(군사)으로 물리치는 내용이다. 빙허각이씨는 규합총서에서 장대록이라는 제목으로 조선 여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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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일 과천에서 벌어지는 줄광대의 아주 특별한 여행 ‘판줄’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0. 2. 16:11
1300여년 맥을 이이오는 우리의 줄타기는 문헌에 승도, 주색, 답색희, 향희 등으로 나타난다. 줄타기가 언제부터 연행되었는지 정확한 시대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창우들의 가무백희가 보이고, 신라의 팔관회에도 창우들의 가무백희가 있었으니 그 속에 줄타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팔관회의 전통을 잇는 조선시대 나례에 줄타기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성현이 지은 구나시에(날아가는 제비와 같이 가볍게 줄 위에서 돌아간다)이라는 시귀에서 알 수 있다. 그 당시 줄타기는 팔관회나 구나와 같은 궁중축제에서 연희되었고 관아나 사가의 연향에서도 공연되었으며 민간의 대동제, 단오놀음, 파일놀음 같은 마을의 큰 축제에서도 창우의 가무백희와 함께 공연되었는데 이중에서도 줄타기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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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바느질하던 전문 업종인 침비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직업세계는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9. 29. 04:57
관청의 여종이나 기생에게 바느질을 시키면 안 된다. 부득이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면 침비(針婢)를 부르거나 침가(針家)에 가져가서 삯을 주고 맡겨라 - 정약용 관청 소속 여종과 기생은 본연의 임무가 있으므로 사적인 일을 시키면 안 된다. 바느질감이 있거든 침비나 침가에 맡겨야 한다. 침비는 침선비(針線婢)라며 바늘과 실을 다루는 여종이다. 침비는 본디 왕실의 의복을 전담하는 상의원 소속 노비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화려한 옷은 이들이 만든 것이다. 바느질뿐 아니라 재단, 재봉, 다리미질까지 도맡았다. 장인으로 대우하여 침선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부잣집은 으레 전속 침선비를 두어 의복의 제작과 관리를 맡겼다. 침선비를 따로 둘 형편이 못 되면 침가라고 하는 삯바느질집을 이용했다. 삯바느질은 가난한 양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