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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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의 어두운 그림자인 사기장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7. 20. 06:10
우리나라 도자기는 질박하고 견고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수준이 몹시 떨어진다. 중국 도자기는 또 일본 도자기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일본 도자기는 종이처럼 얇고 백옥처럼 희며 윤기가 흐르는 듯하다 - 이규경 사기장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흔히 도공이라고 하지만 일본식 표현이다. 조선은 사기장이라고 하였다 에 사기장의 자손은 다른 부역을 시키지 말고 대대로 가업을 전수한다라고 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수십 종류의 장인 가운데 법으로 세습을 강제한 경우는 사기장이 유일하다. 사기장은 고도의 기술이므로 대대로 익혀야 기술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또 하나 이유는 일이 너무 고되어 도망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날이 줄어드는 사기장은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조선시대 궁중의 주방 사옹원에는 380명의 사기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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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최종 병기로 활 만드는 사람을 궁인과 시인이라고 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7. 14. 05:50
군기시의 궁인과 시인을 중국 사신의 청지기로 삼았는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을 귀중하게 여기니 그들과 함께 지내면 틀림없이 활과 화살을 매매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 성종실록 11년(1480) -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이족이라 불렀다. 동이족의 이자를 대궁으로 파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유난히 명궁이 많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이름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양만춘은 안시성에서 당나라 태종의 한쪽 눈을 화살로 맞혔다. 날아가는 왼쪽 날개를 맞혔다는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도 유명하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 불리는 활 솜씨로 우리 땅을 유린하던 오랑캐들을 섬멸했다 이들이 사용한 활을 만든 이가 궁인이다. 활 만드는 궁인과 화살 만드는 시인은 다른 장인보다 높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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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연산군일기에서 나오는 거울 가는 장인으로 마경장이 있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6. 29. 04:25
13일에 마경장 열다섯 명을 대령토록 했는데 하지 않았다. 공조와 상의원의 해당 관원을 국문하라 - 연산군일기 10년(1504) - 1504년 연산군은 마경장을 대령하지 않았다며 불호령을 내렸다. 마경장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연산군은 조바심 내며 열다섯 명씩이나 찾았던 것일까 ? 조선후기까지 거울은 지금 흔히 보는 유리거울이 아니라 청동이나 백동으로 만든 금속 거울이었다. 금속 거울은 땀을 비롯한 습기에 취약했고 쉽게 녹슬었다. 연암 박지원은 죽은 누이를 기리며 쓴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에서 누이가 시집가던 날 빗을 떨구어 무릎을 베고 있던 자기 이마를 맞히자 성이 나 분에 다 먹을 뒤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고 회고한다. 꼬마 박지원이 침을 묻힌 거울은 청동이나 백동 거울이었을 법하다 금속 특성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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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 높이의 화분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조화인 준화를 만든다는 조선의 florist는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6. 16. 04:08
옛날 궁중 행사에서도 꽃 장식은 필수였다. 행사에 쓰인 물품과 비용을 기록한 의궤를 보면 한 차례 행사에 꽃 수천 송이를 썼다. 국화, 모란, 장미, 복분자, 연꽃 등 종류도 여러가디다. 큰 것은 3m에 달했다. 이 초대형 화한의 가격은 스무냥으로 쌀 한가마가 두석 냥으로 쌀 열가마 가격이다. 꽃 장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행사 비용의 10%를 넘었다. 비싼 이유는 옛날에는 생화 장식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처럼 사시사철 생화를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조화이고 비단과 철사, 종이, 밀랍 따위로 만들었다. 왕비와 궁녀의 머리를 장식하는 잠화, 장원 급제자의 사모에 꽂은 어사화, 궁중 행사 중 장식 모두 장인이 한땀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조화를 만드는 장인을 화장이라고 하였다. 꽃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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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악사로서 활동한 소리를 보는 맹인 관현맹(管絃盲)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6. 8. 04:33
옛날 임금들은 장님을 악사로 삼아 음악을 연주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들은 볼 수 없는 대신 음률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또 이 세상에는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조선시대의 맹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점을 치고 경전을 외우는 판수가 되거나 침과 뜸을 놓으며 생계를 이었다.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이었다. 맹인 연주자를 관현맹,, 고악, 고사 등으로도 불렀다 관현맹은 궁중에서 대비와 왕비 등을 위해 베푸는 내연을 비롯한 여러 행사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기생의 가무에 반주를 맡았다. 남녀가 직접 말을 주고받을 수도 없을 만큼 내외가 엄격했던 시절에 궁궐에 남자가 들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 악공만으로는 필요한 악기를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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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판다는 사당패는 버나, 살판, 어름, 덧보기, 덜미를 공연했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5. 23. 04:24
서울 이남에 무당 같으면서 무당이 아니고 광대 같으면서 광대가 아니고 비렁뱅이 같으면서 비렁뱅이가 아닌 자들이 떼 지어 다니면 음란한 짓을 한다 - 이옥 조선시대 유랑하며 공연을 선보여 먹고사는 무리를 사당패라 불렀다. 사당패의 기원은 才僧이다. 재승은 사찰에서 열리는 불교행사에서 각종 공연을 보여주는 승려로 불경간행, 법당 중수, 비석 건립 등에 쓰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절밖으로 나와 공연을 했다. 신라때 원효는 파계한 이후 재승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애희로 중생을 교화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우란분재와 같은 불교행사에서 재승을 비롯한 사당패가 여러 가지 연회를 베풀었다. 힘들게 살아가다가 억울하게 죽어 간 불쌍한 영혼을 위로하는 취지로 수륙재를 거행할 때 걸어 두는 감로탱에는 사당패의 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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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지에 동이는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하는데 조선의 가수인 가객의 변모는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5. 9. 02:21
눈을 찔러 장님 된 악사 사광이던가 / 동방의 가곡 스물 네 소리를 모두 통달했다네 가득 모여 백 전 되면 술에 취해서 가니 / 어찌 반드시 서평군을 부러워하랴 - 조수삼 -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한류 4.0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중음악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한류의 중심이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현재 세계에서 한류만큼 성공한 대중문화를 찾기 힘들다고 평을 내놓았다. 1700여년전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 노래를 즐겼다라고 한 기록이 나온다. 고대 사회부터 이어졌던 이러한 특성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전문화와 직업화의 길에 들어선다 가곡, 시조, 가사 따위를 노래로 부르는 조선시대의 전업 가수를 가객이라 한다. 주로 남자를 지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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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술사로 불가능을 공연하는 환술사는 어떤 공연을 하였는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5. 3. 03:20
주머니를 열고는 더듬어 보게 했으므로 손을 넣어 더듬었다. 그랬더니 동전 다섯 닢만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맨손으로 그 주머니를 열고 움켜 낸 동전이 쉰 닢에 가까웠다. 그 돈을 다시 거두어 주머니에 넣게 한 뒤 사람을 시켜 다시 더듬게 했더니 또 다섯 닢만 있었다 - 영조실록(1763) - 12세기 일본에서 출간된 신서고약도는 당나라 시절 유행한 공연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 신라 공연도 나온다. 항아리에 들어가 춤을 추는 입호무다. 탁자 두 개, 항아리도 두 개지만 무희는 한명이다. 무희는 이쪽 탁자에 놓인 항아리로 들어가 저쪽 탁자에 놓인 항아리로 나온다. 신라 입호무는 요즘 마술사가 선뵈는 공간 이동 마술의 원조다 조선에서는 마술을 환술, 마술 공연을 환희, 마술사를 환술사라 일컬었다. 환술사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