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화염방사기 그리스의 불를 만들었던 나프타에 대해

 

고대 로마 제국의 후계국가였던 중세 유럽의 동로마 제국은 기묘한 비밀 무기를 가지고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물리쳤다. 그것은 물에서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던 화염방사기인 이른바 그리스의 불이었다. 그리스의 불은 역청과 나프타를 원료로 만들어졌다.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로마 제국의 계승국가는 동로마 제국만 남았다. 동로마 제국은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소아시아와 시리아 등 로마 동쪽의 영토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하지만 633년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이 세계 정복에 나서자, 동로마는 불과 40년만에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대부분을 이슬람 제국한테 빼앗겼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674년에는 10만명의 이슬람 대군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러 몰려왔다. 바로 이때 동로마 제국의 비밀 병기인 그리스의 불로 인하여 콘스탄티노플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불이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시리아 헬리오폴리스 출신의 그리스인 학자인 칼리니코스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의 불에 대해 10세기의 작가인 마르쿠스 그라이쿠스는 순수한 황, 주석, 고무, 역청, 녹인 초석, 석유, 송진을 모아 끓인 다음 밧줄에 스며들게 해서 불을 붙인다. 이불은 소변과 식초와 모래로만 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스의 불은 펌프나 관을 이용하여 적에게 뿌리거나, 길고 좁은 통으로 목표물을 향해 발사할 수 있었다. 한번 목표물에 적중한 그리스의 불은 기름 같은 액체가 불에 타는 형태여서 금방 쉽게 타올랐다. 그 열기가 뜨거웠던지 심지어 물속에서도 계속 불이 타올랐고 전해진다. 그리스의 불은 오늘날 화염방사기와 비슷한 무기였던 셈이다. 674년 이슬람 군대의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격에서 동로마 제국을 지켜낸 일등 공신은 바로 이 그리스의 불이었다. 칼리니코스가 개발한 신무기를 배에 장착한 동로마 함대는 해전에서 이슬람 함대를 향해 불을 뿜어냈고 이슬람 함대는 순식간에 불에 타 침몰해 버렸던 것이다. 이슬람 군대는 679년 전투를 중단하고 철수했다.

 

이슬람 제국 뿐만 아니라 동로마 제국을 노리는 주변의 다른 적들과 싸움 때에도 그리스의 불은 매우 유용했다. 941년 약 1천여척의 함대로 구성된 러시아 대군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을 때 그리스의 불을 장착한 동로마 함대는 반격에 나서 러시아 대군에게 치명타를 주었다. 당시 정황을 묘사한 기록에 따르면, 아주 운이 좋아 달아난 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러시아 병사들은배에 탄 채로 그리스의 불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타 죽었고 선박 역시 불에 타 모두 가라앉았는데 그 광경이 마치 바다에 불이 붙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스의 불은 본 러시아인들은 동로마인들이 하늘의 번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크게 놀랐고 결국 동로마를 무력으로 정복하는 대신에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1108년 동로마 제국을 공격한 노르만 군대의 전투에도 그리스의 불은 투입되었다. 동로마 황제 알렉시우스 1세의 딸인 안나 콤네네 공주가 쓴 책이 알렉세이드에도 당시 정황을 묘사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그리스의 불이 등장한다. 소나무 같은 상록수에서 채집한 가연성 수지에 유황을 섞고 그것을 긴 관에 넣고 공기를 계속 주입하면서 그 끝을 적에게 겨누고 뿜어져 나오는 액체에 불을 붙이면 곧바로 불길이 회오리바람처럼 적의 얼굴로 날아간다. 잉글랜드와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했던 용맹한 노르만족도 표면에 닿는 모든 물체를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그리스의 불 앞에서는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노르만은 동로마 제국마저 손에 넣으려던 야심을 포기한 채 철수하고 말았다. 그래서 동로마 황제들은 절대 외국에 넘겨주지 말아야 할 세가지로 황제의 의복과 황제의 공주와 그리스의 불을 꼽았다.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무려 1058년을 존속했다. 이토록 오랫동안 지탱한 것은 그리스의 불 같은 막강한 무기로 인해 주변의 적들을 잘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불 즉 역청과 나프타말로 동로마 제국 번영에 큰 역할을 한 일등 공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