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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에 버금가게 중요하게 여겼던 조기가 1970년대에 사라졌다는데
    아들을 위한 인문학/어류 2022. 11. 10. 03:54

    자산어보에 나오는 추수어 즉 조기는 제주도 남쪽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떼를 지어 3월 중하순에 북상을 해서 서남해 섬들을 거쳐 45일 무렵 법성포 앞 칠산바다와 5월 중하순 해주 바다에 이른다. 조기가 지날 때마다 섬마을 산골에는 진달래가 피고, 마을 어귀에 심어놓은 멀구슬나무의 보랏빛 꽃들이 만발하다 조기는 동해의 명태, 남해의 멸치와 함께 서해를 대표하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우리나라 서해안, 동중국해, 대만, 일본 남부에 분포한다. 그 종류가 180여종에 이르며 우리나라 연해에서는 참조기, 보구치, 수조기, 부세, 황석어 등 10여종이 서식한다. 이중 참조기를 염장해 말린 것을 굴비라고 한다

     

    참조기는 몸이 두툼하고 길이가 짧으며, 몸통 가운데 옆줄이 선명하다. 배는 황금색이며 꼬리는 부채꼴이다 조기를 닮은 부세는 더 큰 생선으로 시장에서 가짜 조기로 푸대접을 받았지만 황금색을 띤 생선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면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또 굴비 백반에 올라오는 굴비는 대부분 부세 즉 중국산 부세로 만든 것이다. 옛 문헌은 조기를 석수어로 표기했다. 이 모두 한자어이다. 조기는 중국의 종이인데 음을 빠르게 발음이 되다 보니 조기가 되었다고 했다. 동이의 침략을 받은 오나라 왕이 군량미가 떨어지자 황금빛 물고기가 몰려왔는데 이를 먹고 물리쳤다고 하였다. 그 이름이 생각이 안 났지만 물고리 머리에 돌이 있었던 것이 기억해 석수어라고 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석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굴비에 대해서는 고려 인종 때 반역을 모의했다가 전남 영광으로 유배된 이자겸은 굴비를 먹어보고 맛이 좋아 왕에게 진상하면서 뜻을 굽히지 않겠다며 굴비라고 써서 보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반면 조기를 엮어 염장을 한 후 말리면 그 모양이 굽는다. 한편 세종실록지리지 나주목 영광군에 석수어는 군의 서쪽 파시평에서 난다. , 여름 사이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관청에서 그 세금을 받아서 국용에 이바지한다고 했다. 파시평은 칠산 바다를 말한다. 또 황해주 해주목에도 조기의 주산지로 밝혔다. 조선시대 조기는 제수용품, 진상품, 하사품, 약재, 장류, 조세 물품 등 다양한 쓰임새로 나타난다. 조선 초기부터 국가의 중요한 재원으로 농사를 짓는 땅의 세금이 쌀이라면 바다의 중요한 재원은 조기였다.

     

    임경업장군(조기의 신)

    연평도에는 조기의 신으로 불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민사가 있다. 임경업은 병자호란 때 활약했던 장군이다. 조선과 청나라에서 버림받고 명나라로 망명하던 중 연평도에 들러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안목어장에 가시나무를 꽂아 조기를 잡아 병사들의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연평도 어민들은 임경업 장군에게서 조기잡이 어살법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은 안목어장에는 주민 10여명이 주목망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3대 조기 파시로 꼽히는 흑산도, 위도, 연평도일 것이다. 그러나 서해가 조기가 사라진 것은 1970년대로 보이고 그중에서도 흑산도는 홍어, 연평도인 꽃개가 그나마 지역을 대표하지만 어장의 특색이 없는 위도가 타격이 컸다. 조기잡이 향수는 정월에 원당제와 갯제를 포함한 위도 띠뱃놀이로 달래고 있다. 조기잡이는 어법으로 낚시, 어살, 주목망, 중선(어군 길목에 닻을 놓고 배를 고정시킨 후 좌우현에 자루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배), 닻배, 안간망 등이 있다

     

    집안 제사는 물론이고 마을 제사에도 빠뜨리지 않았다. 풍어굿인 서해안배연신굿 사설에 술술 남풍에 어이여차, 궂은 비 오는데 어야디애, 천금 같은 조기를 퍼 싣자 어야디야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냥 조기가 아니라 천금 같은 조기다. 칠산바다와 연평바다의 어로요에도 돈 실러 가잔다는 표현이 나온다. 조기는 청명과 입하 사이인 춘삼월 중순 곡우에 잡힌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조기잡이는 단순한 어업이 아니라 서해안이 어촌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해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한편 입맛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봄이 되니 막 올라온 고사리순에 생조기를 올리고 자작하게 조린 조기조림이 그립다. 조기 사촌 황석어를 올려서 조려도 좋고 마른 부세를 쩌서 먹어도 좋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조기를 통째로 넣기도 한다. 그리고 법성포의 통보리 굴비는 겉보리를 넣어 숙성시키는데 보리가 조기를 건조시키면서 기름기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법성포는 봄과 여름에 낮에는 습도가 적고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갯벌에 발달해 인근 염사염과 백수읍은 소금으로 유명하다.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사라지자 가거도나 추자도 일대에서 잡은 조기로 굴비를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원양어선들이 잡아오는 조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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