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1969년 우주시대의 막을 올리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까지 진행과정은
    아들을 위한 인문학/과학 2021. 9. 17. 03:07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독수리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바다, 독수리는 착륙하였다. 1969716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독수리가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을 때 닐 암스트롱 선장은 휴스턴의 비행 관제 센터에 이렇게 보고하였다. 마침내 인류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 처음으로 발을 밟게 된 것이다

     

    소련의 가가린의 우주 최초 비행

    돌이켜 보면 그것은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소련의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지 1개월 후인 19615,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인간을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지구에 귀환하게 하겠다. 미국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며 의회에서 연설한 바 있다. 그 당시 인공위성, 달 탐측기, 유인 위성선 등 모든 분야에서 소련에게 선수를 빼앗긴 미국에서는 세계 제일이라는 자부심에서라도 인간의 달 착륙만은 결코 소련에게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사의 아폴로 계획

    그 전해인 1960년 미국 우주항공국은 인간의 달 여행 계획을 아폴로 계획이라 이름지었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빛의 신의 이름으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는 쌍둥이였기 때문에 달 여행 계획에 그 이름이 채용된 것이다. 나사는 1962년 아폴로 계획을 나룻배 방식으로 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방식은 우선 우주선을 새턴 로켓으로 달을 돌고 있는 손자위성 궤도에 쏘아 올린 후, 거기에서 우주선에 준비된 나룻배를 사용하여 달을 왕복하는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에는 3명이 승선하고, 그중 2명이 달에 착륙하기로 하였다. 이 계획을 위해 발사용 로켓인 새턴 5호 로켓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그 외에도 치밀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최초의 달 탐사선 루나 1호

    1인이 승선하는 위성선 머큐리 계획이 끝나자 2인 승인 제미니 계획이 시작되었고 랑데부와 도킹 그리고 우주 체험 등의 반복된 훈련이 시행되었다 랑데부와 도킹은 달의 나룻배에 뺄 수 없는 필요한 기술이었다. 무인 탐측기에 의한 달의 조사도 시작되었다. 달에 접근하여 명중하기 직전까지 클로즈업 사진을 촬영하는 레인저 계획 실행 후에 5개의 루바 오비터 탐측기를 달의 손자위성으로 하고 5개의 서베이어 탐측기를 달에 착륙시켰다. 루나 오비터는 달을 돌면서 사진을 촬영, 달의 지도를 작성해 아폴로의 착륙지점을 찾는 역할을 하였다, 서베이어는 달의 표면을 탐색하는 동시에 그 자체가 달 착륙 로켓의 연습이기도 하였다

     

    아폴로 8호

    이와 같은 준비 후에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에 승선한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공약 기한이 다 된 196810월이었다. 이때의 아폴로 7호는 우주를 돌기만 했을 뿐이었지만, 그 후의 아폴로 8호를 단숨에 달까지 왕복비행하게 하였다. 보먼 등 3명은 달에 착륙하지는 못했지만 38km 거리를 두고 달을 열 번 돈 후 지구로 귀환한 것이었다. 아폴로 8호가 달을 돌고 지상 귀환에 성공한 후 미국은 이어 8호에는 싣지 않았던 달 착륙선을 테스트하였다. 그리고 10호에서는 달까지 날아가서 모선에서 떨어진 달 착륙선이 달표면 15km 지점까지 접근하였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고 나서 6시간 가량 지난 후 암스트롱은 달 착륙선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달 표면에 우뚝 섰다. 한 인간에서 있어서 이것은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큰 비약이다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서는 순간 이렇게 말하였다. 뒤이어 올드린도 달 표면으로 내려갔다. 두사람은 지진계 등 관측기를 설치하고 달의 돌과 모래 등을 채취하기도 하였다. 달 표면은 가루와 같은 모래로 덮혀 있었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두 사람이 걷는 모습은 마치 천천히 춤을 추는 것과 같았다. 중력이 작기 때문에 떠오른 몸뚱이가 쉽게 달 표면에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2시간 남짓 활동을 끝내고 두사람은 달 착륙선 안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에 상승 로켓을 쏘아서 달 표면을 떠나 달을 돌고 있는 모선과 도킹하였다. 모선에 승선한 그들은 달 착륙선을 버리고 지구를 향한 귀환길에 올랐다

     

    아폴로 17호 달 탐사

    미국은 그 후에도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여 17호까지 6회에 걸쳐 달 착륙에 성공했고 12명의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을 걸었다. 그중 13호만은 우주선의 로켓이 고장을 일으켜 달 착륙을 단념하고 되돌아왔다. 15호 때부터는 달 표면용 자동차를 싣고 가서 그 차로 운전하며 달의 풍경을 텔레비전으로 비쳐주었다. 각종 관측 장치가 달에 설치되었고 합계 400kg에 이르는 달의 돌과 모래가 지구에 운반되었다. 이 아폴로 계획이 진행되던 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령에 빠지고 말았다. 거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달 비행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갔기 때문에 처음에 20호까지 예정되었던 달 비행은 17호까지만 마감하고 그 이후의 우주 개발은 보다 실용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주정거장 스카이 랩

    미국이 달 표면에 사람을 보내고 있을 때 소련은 그 나름대로 달 탐사를 전행시키고 있었다. 달은 자전과 공전의 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에는 언제나 같은 표면만 보여주고 있다. 달의 이면은 어떤 모습일까에 관해 인류는 오랜 동안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면을 처음으로 사진 촬영하여 인류에서 보여 준 것은 소련의 달 탐측기였다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다음해인 19709월 무인 우주선 루나 16호는 달의 손자위성이 된후 풍요의 바다에 연착륙하여 드릴로 약 100kg의 돌과 흙을 채집하고 지상에서의 지령에 따라 달 표면을 떠나서 지구에 귀환한 것이다. 이를 두고 소련은 유인비행에 비하여 1/10의 비용으로 달의 돌을 입수하였다고 자랑하였다. 아폴로 계획을 중단한 미국은 즉시 우주 정거장 계획에 착수하여 19735월에 스카이 랩을 쏘아 올렸다. 스카이 랩은 달에 아폴로를 쏘아 올리는 새턴 5형 로켓의 3단째를 개조한 것으로서 3명의 우주 비행사는 샤워장치까지 되어있는 그안에서 생활하였다. 마지막 실험 때는 3명의 우주비행사가 스카이 랩 안에서 84일 동안이나 머물렀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