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금서가 된 세계 최고의 여행기인 열하일기
    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1. 19. 03:37

    청 건륭제 생일에 맞추어 6개월간 박지원의 사절단이 북경에 갔다가 황제가 피서지로 열하에 가 있어 4일간 강을 건너 알현하며 보고들은 사실을 기록한 여행기가 열하일기이다. 박지원은 한때 우울증이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전에 나가 여러 사람과 대화하여 친화력을 키우고 유모감각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1780년 사절단에 포함돼 북경에 가게 되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의주에서 장사꾼을 만났는데 청에서 싼 물건이 조선에 비싸게 거래되어 그들의 상술에 비난을 하였고 몽고인을 보고 험상궂어 인간이 아니라고 했으며 심양에 도착하여 도시가 화려하고 수레는 보화가 가득하고 화려한 술집이 있다고 경탄하였다.청은 수레와 도로가 발달되어 있어 조선도 이를 수용하여 재화가 자유 유통하여 값싸게 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그때 조선에 수레는 둥글지 못하고 산이 많아 이를 수용하지 못하였다. 또한 제일 경탄스러운 것은 기와조각과 똥을 무용한 것으로 여기던 것을 청에서는 기와조각은 무늬로 사용하고 똥은 거름으로 사용하는 청의 실용성에 놀란 것이다.사절단은 여행중 큰소리로 떠들고 물건을 던지기 일수였다고 하고 한족인 명을 숭상하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몽고족 등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하였다고 한다. 북경에 도착하자 유리창, 체계가 잡힌 도시와 규격화한 벽돌로 석회를 발라 말려서 갈라지지 않고 견고한 구조가 인상적이며 박지원은 청의 오랑캐라도 백성에 필요한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청나라 사람이 청심환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고 여러 지식인과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로 토론도 했다는 열하일기는 천박하다는 이유로 조선에서 금서로 읽혀지지 못하게 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